2009년 떠난 노무현 유서와 닮은꼴
'남 탓' 않고 미래만 생각한 이유는

노회찬 의원(이하 존칭 생략)이 남긴 유서를 읽다가 왠지 모를 기시감이 들었다. 그랬다. 그의 유서는 2009년 똑같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노무현의 그것과 여러모로 닮은꼴이었다.

두 사람은 결코 '남 탓'을 하지 않았다. 노회찬은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고 노무현도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고 썼다.

검찰(특검)의 무리한 수사나 현실 법·제도 등에 아쉬움을 표할 수 있었음에도 둘은 그러지 않았다. 언젠가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운명을 원망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름다운 정신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자기희생에 속한다"고 했는데 이는 물론 노회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거기에 패배주의는 없다."

둘은 또 '그 와중에도' 남은 사람들의 미래만을 생각했다. 노회찬은 "어렵게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했고 노무현도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며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자신의 처지를 두고 아무 원망도 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두 사람은 최고의 대중연설가이자 논객, 그리고 낭만파 정치인답게 참 글을 잘 쓴다. 처절한 결단의 순간에도 오자나 비문은커녕 군더더기·동어반복 하나 없는 아주 깔끔하고 호소력 짙은 미문을 남겼다.

이는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이 아니면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노회찬은 "사랑하는 당원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고 쓴 거고 노무현도 "너무 슬퍼하지 마라. 미안해하지 마라"고 한 거다. 심지어 노무현은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는 시적 표현으로 남은 자들을 다독이기까지 했다.

가장 심금을 울린 대목은 물론 유서 마지막, "죄송합니다.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십시오"(노회찬)와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노무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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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끝까지 자기 자신에게 혹독했다. 남은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하며 과도하게 절대화·신성화하는 것을 그렇게 스스로 경계했다. 분노와 원한에 젖어 노회찬·노무현 이름 석 자만 오래오래 붙들고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그렇게 걱정했다.

어쩌면 그래서일지 모르겠다. 노무현이 몸을 던졌을 때도 그랬지만 노회찬이 떠난 지금도 난 어떻게든 감상적이고 싶지 않다. 더욱더 냉정하고 단호하고 싶다. 두 사람은 물론 나 자신을 포함한 남은 이들의 공과 모두를 더욱 또렷이 보고 글로 새기고 싶다.

그것이 두 사람의 유지를 진정으로 받드는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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