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도 생계 위해 땀흘리는 노동자
밥 한끼 든든히 챙기고 여름 버텼으면

낮 기온이 40도가 넘는 심한 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아침 아홉 시만 되어도 폭염 경보가 내려 밭에서 일하지 말라는 마을 방송이 나온다. 점점 더 뜨거워지는 날씨 때문에 밭에 가는 시간이 빨라지고 있다. 하늘이 어스름하게 밝아지기 시작하면 부스스 일어나 밭에 갈 준비를 한다. 호미와 낫과 밀짚모자 그리고 새참거리와 얼음물을 챙긴다.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일을 하려고 아침부터 발걸음이 분주하다.

아침 일곱 시만 넘어도 더워지기 시작한다. 그렇다 보니 밭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다. 온몸에 열이 푹푹 나서 시계를 보면 여덟 시가 되어 있다. 덥기는 하지만 여덟 시에 일을 그만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무 그늘에 앉아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일을 한다. 턱을 타고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턱턱 막힌다 싶으면 아홉 시가 넘어 있다. 시계를 볼 필요도 없이 점점 뜨겁게 달구어지는 몸이 시간을 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열 시까지 밭에서 버티고 온 날이면 하루종일 뿌리 뽑힌 풀처럼 기운이 없다.

집에 돌아오면 달구어진 몸을 식히려고 얼른 찬물로 씻는다. 몸에서 푹푹 나오는 열기에 차가운 물이 저절로 데워진다. 씻고 나와서 머리를 말리려고 선풍기 앞에 앉으면 몸도 마음도 멍해진다. 그대로 스르르 누워서 한숨 자고 일어나면 그제야 정신이 든다.

내가 아홉 시가 넘어서 밭에 앉아 있으면 마을 어른들이 "아이고, 더븐데 인자 일 그만하고 들어가라. 그라다 골병든대이. 난중에 시원해지면은 다시 나와가 일 하그라" 하신다. 땡볕에 몸을 움직이며 농사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서로를 돌아봐 주는 이웃이 있고, 자기 몸에 맞추어 일하는 시간을 정할 수 있어서 농부는 그나마 폭염이 견딜만하다.

안타깝게도 이 뜨거운 뙤약볕을 온종일 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시간쯤 자고 일어나서 점심밥을 먹는데 문득 아직도 바깥에 남아 있을 사람들이 떠오른다. 우체부, 환경미화원, 택배 기사, 공사장 인부, 시장 상인, 이삿짐센터 일꾼, 외국인 노동자….

'그분들은 이 무더운 여름날을 어떻게 보내고 계실까? 몸이 지치면 입맛도 없을 텐데 점심밥은 드셨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밥 먹던 젓가락이 깨지락깨지락거린다. 가장 뜨거운 두세 시쯤이라도 시원한 곳에서 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노동자들은 이런 엄청난 무더위에도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해야만 한다. 그분들을 위한 대책이 하루빨리 필요하다. 더 소중한 것을 잃기 전에 말이다. 일이 아무리 급하고 중요하다 해도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게 어디 있을까? 농부가 되어 땀 흘려 일을 해 보니 몸으로 일하는 사람이 겪는 어려움이 보인다.

선풍기 앞에 앉아 입맛이 없다며 툴툴거리다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땀방울로 세상을 채우는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밥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밀어 넣었다. 문득 서정홍 농부 시인님이 쓴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라는 시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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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숟가락/ 목으로 넘기지 못하고/ 사흘 밤낮을/ 꼼짝 못하고 끙끙 앓고는// 그제야 알았습니다./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여태/ 살아왔다는 것을."(시집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보리)

입맛이 없어도 둘러앉아 함께 밥 먹을 식구들이 있어서 밥 한 숟가락을 뜬다. 밥 한 끼 챙겨 먹고 지친 몸에 힘을 얻는다. 그분들에게도 밥 나누어 먹을 식구가 있기를. 그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이 찜통 같은 여름날을 무사히 보내시기를 기도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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