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 D-30
'러닝타깃 혼합' 정원채 선수, 해당 종목 퇴출-부활 '시련'
병원 근무하며 틈틈이 훈련, 꿈의 무대서 "시상대 서고파"

"세계사격선수권대회요?"

거침없던 그는 이 질문을 받자 멈칫했다. '120개국 4000여 명이 참여하는 세계대회'라는 중압감이 컸을까. 머리를 한 번 긁적이고 나서야 그는 입을 뗐다.

"한 발 한 발 신중히 쏘고 나서 성과를 얻는 사격은 더디지만 목표를 이뤄간 지난날 제 삶과 닮았었죠. 이번 대회는 20년 동안 이어온 사격 인생의 클라이맥스가 아닐까 해요."

이달 31일부터 9월 15일까지 열리는 2018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 '러닝타깃 50m 혼합' 종목에 대한민국 대표로 출전하는 정원채(35) 선수는 이 무대에 서기까지 참 먼 길을 돌아왔다.

소속 팀 없이 개인 자격으로 대회를 치른 지 수년째. 스스로 "대회에 출전하는 국내 선수 중 투잡인 사람은 내가 유일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이번 대회에서 원채 씨가 "모든 걸 쏟아붓겠다"고 한 이유도 이와 맞닿는다. 사격 선수에게 이번 대회는 꿈이자 인생 최대 축제다.

창원경상대병원에서 일하는 사격선수 정원채. 국내 선수 중 아주 드물게 '투잡'인 그는 이번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현재 원채 씨는 창원경상대학교병원 약제부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도 몇 해 전에는 전업 선수였다.

"사격은 중학교 때 시작했어요. 공기소총 종목으로 입문했다가 고3 때 러닝타깃으로 바꿨고요. 대학교(경남대)에 진학하고 군 제대를 할 때까지 크고 작은 대회에서 우승도 많이 했어요. 전역 후에는 곧바로 창원시청 실업팀에 들어가는 행운도 누렸죠. 시청을 나오고 나서는 경남도체육회 지원을 받으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고요. 그러다 2011년 러닝타깃이 전국체전에서 퇴출당하는 일이 생겼어요. 자연히 지원도 끊겼죠."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했던 원채 씨는 한국폴리텍대학 입학을 택했다. 전자전기 기술을 배워 새 삶을 꾸리겠다는 각오였다. 그러나 평생 이어온 사격을 끊을 순 없었다.

"동료가 종목을 살려보겠다며 애쓰는 걸 봤어요. 시범 종목일지라도 사격장에 서는 걸 마다치 않았죠. 많이 반성했고 다시 총을 잡았지요."

이렇다 할 수입이 없었던 원채 씨는 모아 뒀던 돈을 쓰고 보험까지 해지하며 대회를 치렀다. 창원 내 한 기업에서 일을 시작하고 나서도 원채 씨 투잡은 계속됐다. 3년쯤 지났을까,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2014년 전국체전에서 러닝타깃이 부활했어요. 그즈음 개인적으론 두 개 실업팀에서 입단 제의도 있었고요. 고민 끝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격에만 매달렸죠. 그 결과 이듬해 전국체전 러닝타깃 10m 부문에서 3위에 올랐죠. 하지만 기대했던 실업팀 입단은 무산됐어요. 졸지에 백수가 된 거죠."

다시 반복이었다. 먹고살 길을 찾아 취업문을 두드렸다. 다행히 마냥 좌절만 있진 않았다. 전국체전 정식 종목으로 부활하면서 경남도체육회 지원이 재개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창원경상대병원에서 일할 기회도 잡았다.

"지난 2년 동안 많게는 한 해 7개 대회에 나섰어요. 오후 4시 일을 마친 뒤 인천으로 차를 몰아 대회에 나서기도 했죠. 도체육회나 박형빈 병원장님, 곽은정 부장님 등 병원 측 배려에 보답하고 싶었어요. 지난해 전국체전 러닝타깃 10m 일반부에서 우승하며 마음의 빚을 조금 덜었죠."

승운은 올해도 이어졌다. 원채 씨는 세 차례의 선발전에서 좋은 기록을 거두며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 출전 자격을 따냈다. 꿈의 무대에 서게 됐지만 원채 씨 눈은 개인보다는 팀을 향해 있다.

"팀에 도움이 되는 경기를 펼치고 싶어요. 저만 잘 맞히면 충분히 입상권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이 자리에 오기까지 참 먼 길을 돌아왔잖아요. 후회 없는 경기로, 받은 사랑에 보답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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