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추위가 스테이크라면 더위는 피자다. 익힘의 정도가 다를 뿐 스테이크는 그저 스테이크인 것처럼 추위 역시 그저 더하고 덜하고의 차이는 있지만 뭔가 느낌이 담백하다. 반면 더위는 좀 다르다. 올리는 토핑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의 피자가 되듯 더위 역시 다양한 조건에 따라 그 성질이 매우 달라진다. 바삭바삭하게 메마른 뜨거운 더위가 있고, 습도가 높아 끈적거려서 실제 기온보다 더 높게 느껴지는 더위가 있는가 하면, 한증막처럼 푹푹 쪄대는 더위도 있다. 부채가 필요한 더위와 그늘이 필요한 더위 역시 채소샐러드피자와 불고기피자만큼이나 다르다.

위에서 말한 더위들이 다양한 이유는 조금씩 다른 조건들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조건들이 모두 외부적인 요인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나는 오늘 위에서 말한 더위와는 다른 더위를 이야기하고 싶다. 오늘 이야기가 흥미로울 수 있는 것은 이 더위를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할 사람들이 인류의 절반 이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캐비아의 맛을 아무리 설명해도 먹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듯, 이 더위 역시 아무리 설명한다 해도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겠으나 그런 것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더위는 추운 겨울에도 느낄 수 있고, 찬물에 샤워를 하면서도 느낄 수 있다. 마치 명치 아래쪽에 주먹만 한 마그마를 품은 듯 문득문득 천불이 나는 그런 더위다. 가끔 그 마그마가 끓기 시작하면 눈알 뒤쪽, 손바닥, 발바닥, 콧구멍 안쪽, 귀 고막 언저리, 정수리까지 뜨거워짐을 느낀다. 얼음을 깨먹어도, 찬물을 한 사발 들이켜도, 이 더위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것은 질병에 걸려서 몸에 열이 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몸에 열이 나면 피부를 통해 열감을 느낄 수 있을뿐더러 오히려 열이 나면 오한이 들고 춥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더위는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열로서 겉으로는 전혀 표가 나지 않는다. 내가 이 더위를 처음 느끼고 나서 친한 언니에게 이 이야기했더니, 언니는 두어 달 그러는 사람도 있고 예닐곱 달을 그러는 사람도 있다며 자신은 그때 앉은자리에서 각얼음을 20~30개씩 깨물어 먹었다고 했다. 나는 다행히 얼음은 그리 많이 먹진 않았지만 전에는 찬 음식을 먹으면 꼭 탈이 나서 전혀 먹지 않던 팥빙수나 냉면을 수시로 먹었다.

그 더위가 시작되고 나서는 막대가 꽂힌 단단하고 더 차가운 빙과류를 거의 매일 먹었다. 하지만 더위는 쉬이 가시지 않았다. 시원한 맥주나 얼음 동동 띄운 식혜를 한 사발 마시고 싶기도 하다가, 욕조에 얼음을 가득 채워 그 속에 들어가 앉아있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 무엇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저 시간이 해결해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 더위가 무척 낯설고 힘들었었다. 나는 서너 달 그러다 말았지만 아들 낳은 지인 중에는 열 달 내내 그랬다는 분도 있었다. 그렇다. 이미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이 더위의 원인은 '아이'이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임신 후 호르몬 변화에 의한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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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갔던 딸아이가 "엄마, 밖에 엄청 더워" 하며 들어온다. 이마에 붙은 땀에 젖은 머리칼을 뒤로 넘겨주며 "그래, 정말 더운 날씨네"라고 말하며 아이의 까만 눈을 바라본다. 계절이나 외부적 요인과 관계없이 오로지 나만이 '마음껏' 느낄 수 있었던 더위, 그것은 또 다른 방식의 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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