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현장서 한 끼 식사로 손색없던 음식
동물학대 논란 피하고 영양가 높아 추천

1992년 겨울, 러시아 동시베리아의 하바롭스크를 처음 여행하면서 경험한 일들 중에는 지금 내 생활에서도 실제로 쓰이고 있는 것이 몇 있다. 하루에 꼭 한 번씩 두부를 먹는 것과 북한 정치 체제에 대한 걱정, 그리고 해외에 나가서 노동력을 팔아 돈벌이를 하는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생각이다.

1990년대 중반 동시베리아에서 벌목공으로 일하던 북한 노동자들의 실상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이른바 일제강점기에 북만주의 '김일성부대'에서 복무했던 사람들과 긴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은 내가 북한 사회와 체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중에서 두부 이야기는 매우 놀랍고도 전설적이었다.

두부 이야기를 증언한 두 분 할머니는 1992년 당시 78세였다. 한 할머니는 김일성부대의 간호사 겸 식사를 마련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항일전투가 길어지면서 김일성부대는 점점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고, 북만주에서 차츰 러시아의 하바롭스크 방향으로 밀렸다. 겨울인 데다 전투 상황이 예측할 수 없는 날들이다 보니 하루 한 끼니도 먹기 어려웠다.

특히 불을 피워서 음식을 장만하는 것은 적에게 연기를 보일 수 있어서 위험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콩을 마련해 두부를 많이 만든 다음 미리 약속한 몇몇 비밀 장소에다 땅을 파고 묻어두는 작전이었다. 겨울이라 땅에 파묻은 두부는 꽁꽁 얼어서 상하지 않았다. 전투 중 잠시 틈이 나면 약속 장소에 가서 돌멩이를 들추고 두부를 파내서 먹었다. 열을 조금 가해 언 두부가 녹으면 좋은 식사가 되었다. 그렇게 3년여 동안을 두부만 먹으면서 전쟁터를 누볐다.

고구려 기록에는 고구려의 남자들이 중국과의 전쟁으로 수백 년 동안을 고군분투한 일들이 남아있다. 수적으로 비교할 수 없이 절대 부족한 고구려의 남자들이지만 열 배 이상 많은 중국 군인들과 싸워서 나라를 지키고 고향의 식구들을 지켜내자면 비상한 각오와 방법이 있어야 했다. 말 위에서 먹고, 자고, 싸우는 생존방식을 택했다. 기습 공격을 해야만 수적으로 월등한 중국군대를 이길 수 있었기 때문에 발을 땅에 딛지 않고 말을 달렸다. 전투도 먹어야 하기 때문에 고안해 낸 것이 삶은 콩을 자루에 넣고 말 안장에 매달고 다니다가 잠시 틈이 생기면 콩을 한 움큼 집어내서 씹으면서 전투를 치렀다. 이 같은 고구려 남자들의 전투 식량이 두부의 전설이 된 것인데, 김일성부대의 여성 전사들이 북만주 눈보라 치는 전쟁터에서 두부로 병사들의 전투 식량으로 삼았던 지혜가 눈물 나게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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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식물성 단백질이며 사람의 몸이 흡수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하고 폭넓은 영양을 지닌 역사 음식이다. 유전자 조작으로 위험 요인을 지닌 수입 콩을 버리고 우리나라 농토에서 키운 콩으로 두부를 제대로 만들어 먹는 일은 살생이라는 동물학대와 무자비한 참사를 그치고 평화와 차별 없는 행복한 삶을 지어가는 여정이 되리라 여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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