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힘]기록관리의 사회적 가치
공공기관 기록 생산·관리, 투명한 정보공개의 출발점
참여민주주의 실현 직결돼, 경남도 기록화 사업도 의미
미래세대 위한 오늘날 자산, 공과 남겨 돌아보고 새겨야

〈대한민국이 묻는다〉라는 책을 보면 국민의 불행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답한 말이 있다. "사람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돈, 물질, 성공, 사회적 지위, 출세 이런 것들을 더 중요한 가치로 숭배하게 되었다. 마하트마 간디는 사회를 망치는 일곱가지 죄를 말했다.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성 없는 상거래, 인간성 없는 학문, 희생 없는 신앙…(중략) 간디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와 김경수 도정이 출범한 이후 지속적으로 말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를 잘 설명해주는 말이 아닐까 싶다.

나는 그 사회적 가치라는 것이 궁금해졌다. 개인적으로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는 주제를 기록관리의 방향성으로 생각하는 지금,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를 제시해주는 큰 화두가 되고 있다.

사회적 가치란 사회·경제·환경·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다. 이는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 중 사회의 재생과 건강한 발전을 위한 인권, 노동권, 안전, 사회적 약자 배려, 민주적 의사결정과 참여의 실현 등 공동체와 사회 전체에 편익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3대 전략 7대 핵심과제 10대 추진계획을 세웠고 경상남도는 7대 핵심과제 50개 사업을 수립해 사회적 가치 중심의 참여도정으로 도민 제일주의 도정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을 이룩한 나라다. 그러나 고용, 양극화, 결혼·취업·출산 등 개인적인 불안으로부터 묻지마 살인, 테러, 재난 등 사회적인 불안까지, 지금 우리는 '불안의 시대'를 겪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돈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인생, 경제성장만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며 살았다.

그러나 자살률, 노인층 빈곤율, 저출산 등에서 최고의 성적표와 국민 삶의 질, 정부 신뢰도, 부패인식지수 등 공동체 삶에 대한 지표에서는 초라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2013년 9월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프레스 오픈에서 이영혜 총감독이 '햇빛 영화관'을 소개하는 모습. 전기가 없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햇빛 영화관'은 반나절만 충전하면 동영상을 프로젝트로 상영할 수 있다. /연합뉴스

◇일방 경제가치 추구 폐해

경제적 가치만을 추구한 결과는 그 한계를 드러냈다.

나는 요즘 아침마다 도청 앞에서 시위하는 성동조선해양 노동자들을 본다. 그분들을 볼 때마다 내가 하는 일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라는 회의감을 느끼곤 했다. '생존을 위한 투쟁' 앞에 나의 일은 너무 배부른 소리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기록관리를 연구하고 일생의 업으로 그것을 가져가고 있지만 "기록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을 (당연하지만) 가지고 있다.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일제 강점기, 6·25 등 어려운 시절 추운 겨울을 보내기 위해 중요한 자료(기록)를 태웠다는 사실들을 이해한다.

기록을 지키려고 고난을 자초한 우리 조상들(안의, 손홍록 등) 앞에서는 경건해지지만 사람의 생명에 우선하는 기록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우연히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햇빛 영화관, 관심을 켜다'라는 주제로 기여운 삼성전자 선임연구원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내용은 기 연구원이 우연히 사내 강연에서 아프리카 말리위에 사는 마틴이라는 소년이 밤에 영화를 볼 수 있는 영화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듣고 아프리카에 영화관을 만들어줬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최빈국인 아프리카 말라위에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단순히 음식과 물, 교육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미디어의 영향이 크겠지만 아프리카 말라위에 가지고 있는 나의 편견이 얼마나 잘 못된 것인지를 교훈하게 되었다. 또한 이 강의는 기록관리의 무의미함에 잠시 낙망했던 내게 기록관리의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단순히 경제적 가치에 매몰된다면 기록관리는 의미를 잃을지는 모르지만 '공동체의 삶'이라는 주제로 이것에 접근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사회적 가치'의 측면에서 본다면 기록관리는 여러 분야에 걸쳐 그 의미가 뚜렷해진다. 그 의미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민적 권리로서 민주적 의사결정과 참여의 실현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공공기관의 업무, '정보공개'의 출발점이 바로 기록관리다.

공개를 위해서는 양질의 기록이 생산·관리되어야 한다. 예컨대 주민의 삶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회의의 경우 회의록을 의무적으로 생산·강제해야 한다. 그중 회의의 중요성으로 발언내용이 모두 남겨져야 할 경우 속기록 등의 생산이 의무화되도록 관리하여야 한다. 또한 생산하고 있지만 등록하지 않음으로써 공개 자체가 불가능한 기록물을 공공의 기록물로 관리하도록 지도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도민에게 필요한 기록을 선별하여 도정의 이야기를 재미있고 알기 쉽게 알려줘야 하며, 도정 기록을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보유 기록물 공개 재분류를 통해 공공업무의 적극적인 공개를 유도하여야 한다.

둘째 품격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문화자원의 제공이다.

아프리카에 있는 소년이 원했던 '영화관'처럼 기록은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화적 혜택들을 공평하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사에 대한 고찰, 그 고찰에 대한 쉬운 해석, 시대를 살아가는 과제와 과거로부터 얻은 반성과 교훈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게 기록을 관리·이용하여야 한다.

예컨대 우리의 현재를 남겨 미래세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경상남도의 기록화 사업은 지역민으로서 품격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문화자원 제공의 첫 출발점이 될 것이다.

◇기록은 문화자원

기록은 시대의 문화자원으로 그것의 효과적인 배분에 공동체를 위한 가치가 우선 고려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록관리가 사회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기록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현 권력의 견제와 남겨진 기록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가치를 창출하게 하는 미래세대에 대한 오늘날의 자산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 김경수 도정 그리고 이번 주 내내 내 마음을 먹먹하게 한, 마지막까지 노동자들의 벗이었던 고(故) 노회찬 의원의 공과는 기록으로 남겨져 사회적 가치 실현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자 종점이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당시 대선 예비후보가 2007년 9월 9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대선후보 수도권 선출대회에서 후보자 연설을 하고 있다. 고 노회찬 의원 공과는 기록으로 남겨져 사회적 가치 실현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자 종점이 될 것이다. /연합뉴스

앞서 말한 문재인 정부, 김경수 도정의 의지가 아니더라도 기록관리는 사회적 가치를 논하지 않고는 그 존재이유를 밝히기 어렵다. 그러나 기록관리는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무감각함에 대해 비판할 생각은 없다.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정성스럽게 수행하다 보면 개인적으로든 공적으로든 주어지는 감동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록관리는 사회적 가치 실현에 기본이 되는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시민기자 전가희(기록연구사)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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