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몸을 던지기 전 '이명준'이 배 난간에서 고뇌하는 장면을 반복해서 수없이 읽어야 했다. 20년도 훨씬 전, 수능시험 문제지만 펼치면 나오는 소설 <광장>의 한 대목이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 여물지 않았던 시기였는지 몰라도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 일도양단하는 간명함의 세계에 이끌리는 시기였고 양비론에 대한 거부반응이 강한 때이기도 했다. <광장>의 '이명준'은 내가 나아갈 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대학 입학 후 우연히 손에 쥐게 됐던 <화두>가 머릿속을 흔들었다.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는 의식·무의식의 세계에 집요하게 육박하는 사유의 힘 앞에서 한없는 존재의 왜소함을 느껴야 했다.

<화두>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시 <화두>에서 얻은 어렴풋한 느낌은 알게 모르게 이후 독서와 생각의 행로를 이끌어온 듯하다. 내가 존재의 왜소함을 느낄 당시는 '진보정당추진위원회'라는 단체 이름을 얼핏얼핏 들을 때였고, <매일노동뉴스>라는 매체를 먼발치에서 힐끔거리던 시기이기도 했다.

국민승리21,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정의당 등으로 복잡하게 뭉치고 갈리면서 이어졌던 1990년 이후 한국 진보정당의 역사를 훤하게 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주장은 나를 매료시켰다. <광장>과 <화두>로 대표되는 작가 최인훈 선생은 1936년 함북에서 태어났고, 노동운동에 투신해 진보정당 활동에 전 생애를 바친 노회찬 국회의원은 1956년생 부산 출신이다.

공교롭게도 딱 20년 차이가 나는 두 분이 지난 23일 세상을 등졌다. 아직도 교조적인 조직문화 잔재가 남아 있는 시·공간에서 대중과 끊임없이 소통하려 했던 혁명가와, 좌우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고뇌했던 예술가의 죽음을 일컬어 누군가는 "한 시대가 저물었다"고 선언했다. 잠시나마 두 거인의 어깨 위에서 이 세상을 볼 수 있었던 걸 다행이라 생각하며, 이제 스스로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할 터인데 막막함은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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