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에 감춰진 가정폭력
스릴러 영화 속 주인공처럼
하루하루 견딜 아이를 담다

아이의 굳은 표정이 클로즈업될 때마다 긴장이 고조된다. 곧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마음을 졸인다. 결국 영화는 관객이 궁금하던 바를 한꺼번에 터뜨린다. 하지만 개운치 않다. 아직 끝나지 않았을 것 같기 때문이다.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감독 자비에 르그랑·프랑스)는 부부의 이혼소송 장면으로 시작한다. 판사는 이들의 아들 줄리앙(배우 토마 지오리아)이 쓴 진술서를 빠르게 읽어내려간다.

줄리앙은 엄마가 '그 사람'과 이혼해 기쁘며 엄마와 누나를 혼자 둘 수 없어 자신은 '그 사람'과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줄리앙은 아빠 앙투안(배우 드니 메노셰)을 그 사람이라고 부른다.

엄마 미리암(배우 레아 드루케)은 창백하고 아빠 앙투안은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판사가 진술서를 읽어내려가며 부부의 얼굴을 살피듯 관객도 줄리앙의 진술이 어느 정도 맞는지, 거짓말인지를 미리암과 앙투안의 표정으로 짐작한다.

주인공 줄리앙은 늘 굳은 표정을 하고 있다. /스틸컷

판결 이후 앙투안은 줄리앙을 주말에 만난다. 그는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키스를 한다. 줄리앙은 배낭과 짐가방을 들고 아빠 차에 올라타 할아버지 댁으로 향한다.

줄리앙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굳은 표정에 긴장이 서려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줄리앙은 아빠를 만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영화 분위기는 좀처럼 편안하지 않다.

오히려 긴장감과 공포가 점점 쌓인다. 이는 일상적인 소음으로 배가된다. 앙투안이 자동차 안전띠를 두르지 않았을 때 울리는 경보음과 휴대전화 소리가 예민하게 들린다.

줄리앙은 거짓말을 한다. 그의 누나 조세핀(배우 마틸드 오느뵈) 생일파티에 가고 싶어 아빠와 만나는 주말을 바꾸고 싶다. 줄리앙의 말을 들은 앙투안은 미리암을 만나 직접 얘기하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줄리앙은 앙투안에게 엄마가 집에 없다고 말하고 미리암에게는 아빠가 주말을 바꿔주지 않았다고 한다.

'줄리앙이 왜 거짓말을 할까?', '줄리앙은 정말 선한 아이일까?'라는 궁금증이 커지지만 쉽게 알 수 없다.

조세핀 생일파티 날, 미리암은 줄리앙이 외조부모와 신나게 노는 모습에 안심하지만 안절부절못한다. 자신의 생일을 맞아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조세핀도 저 멀리 출입문을 의식하고 있다.

이날 앙투안이 생일파티장에 찾아왔다. 조세핀의 선물을 주려고 왔다는 그는 미리암에게 자신이 달라졌다고 말하며 손을 내민다. 그러기도 잠시, 앙투안은 돌변한다. 그녀의 목을 덥석 잡으며 모욕적인 말을 쏟아낸 채 사라진다.

아이는 앙투안을 아빠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라고 부른다. /스틸컷

생일파티가 끝나고 무대는 불이 꺼진다. 모두 돌아가고, 오늘 밤 집에는 미리암과 줄리앙 둘뿐이다.

어두운 방, 아파트 초인종 소리가 요란하다. 둘은 부둥켜안으며 귀를 막는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이어서 발로 문을 차고 두드린다. 그리고 '타당' 총소리다.

둘은 그가 누구인지 안다. 바로 앙투안.

관객은 그제야 가정폭력의 민낯을 본다. 총을 든 앙투안이 방문을 열며 둘을 찾아다닌다. 미리암과 줄리앙은 욕조에 몸을 숨기고, 앙투안은 경찰에게 붙잡힌다.

상황은 종료됐다. 경찰은 욕실 문을 열고 나오라고 말한다. 그런데 미리암과 줄리앙이 욕실 문을 열면 또 다른 무언가가 나타날 것 같다.

상상력을 동원한 불안을 내내 안겼던 영화는 공포를 쉽게 없애지 못한다. 총알이 뚫고 간 아파트 현관문이 닫히며 영화는 끝이 나지만 여전히 간담이 서늘하다.

부연 설명 없이 배우들의 표정과 짧은 대화만으로 모든 상황을 유추해야 하는 관객은 영화 끝자락에서야 마주한 사실에 놀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실적이라 무섭다.

특별한 사건이 없는 평범한 일상에서 앙투안은 총을 들었다.

영화는 처음부터 줄리앙을 통해 앙투안이 엄마와 누나를 괴롭히며 같이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부부의 양육권 다툼에서 아이는 잊히듯 줄리앙의 진술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이는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린다는 판결이, 양쪽의 입장을 충분히 듣고 심사숙고했다는 판사의 선택이 얼마나 일방적인지 보여준다. 관객 또한 줄리앙을 경계하며 영화를 보게 되는데, 감독의 연출력이 빛난다.

자비에 르그랑 감독은 "현대사회에서 가정폭력은 비극 중 하나다. 아이의 행복이 부모의 권리를 앞서지 못하는 현실을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지난해 열린 제74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에 해당하는 은사자상과 신인감독상에 해당하는 미래의 사자상을 받았다. 

김해문화의전당·창원 리좀 <아직 끝나지…> 상영 일정 

<아직 끝나지 않았다>(감독 자비에 르그랑, 프랑스)는 지난 6월에 개봉했지만 도내 영화관에서 쉽게 만날 수 없었다.

오는 28일 오후 4시 30분 김해문화의전당 영상미디어센터에서 볼 수 있다.

김해문화의전당 영상미디어센터는 ‘씨네마루 유료영화상영’을 시청각실에서 진행하며 영화관에서 접하기 어려운 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영상미디어센터는 96석 규모 상영관에서 해설이 있는 수요영화의 밤, 토요가족시네마 등을 펼치며 무료영화상영회도 하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입장료는 성인 5000원, 청소년 4000원이다.

창원 씨네아트 리좀에서는 오는 8월 1일 오후 4시 30분에 <아직 끝나지 않았다>를 만날 수 있다. 리좀에서의 마지막 상영이다.

씨네아트 리좀은 도내 유일 독립예술영화관으로 리좀에서만 볼 수 있는 걸작이 많다.

26일 영화 <한나>(감독 안드레아 팔라오로, 이탈리아 외), <어느 가족>(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일본)이 도내에서 유일하게 개봉하고, 멀티플렉스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햄스테드>, <너와 극장에서>, <나와 봄날의 약속> 등이 마지막 상영을 앞두고 있다.

자세한 상영시간표는 누리집(http://accrhizome.com)에서 확인하면 된다. 입장료는 성인 7000원, 청소년 6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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