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지구는 선한 사람들을 버리시는가,

어찌하여 선한 사람들은 서둘러 지구를 떠나시는가?

그제도 염천에 매미 울음마저 끊긴 가운데

날아든 비보는 전광석화처럼 날카롭고 빠르고 서늘했지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다가 이내 상념은

누군가에로 향하는 원망이다가 야속함이다가

또 누군가에게는 서운함이다가 분함이다가

결국은 당신을 지키지 못한 깊은 자책감과

자괴감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지요.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너희들은 앞으로 나아가라고

또박또박 적으셨지만, 눈길 주면 하냥 그 자리에 있는

형님 같던, 오빠 같던, 또는 이웃집 아저씨 같던

당신이 갑자기 사라지고 없는 지금

아우 같은, 누이 같은, 또는 동네 골목길 철부지 같은

우리도 망연자실 제자리에 뚝, 멈춰서고 말았는데요.

이천년 초입이었던가요?

당신의 그 촌철살인대로 이제나 저제나 확 갈아엎은

불판에 잘 구운 삼겹살 같이 소주 한 잔 하려나 했더니

무엇이 그리 급하여 서둘러 떠나시고 말았나요.

당신은 진보정치의 상징이 아니라 현실이었던 것을

여전히 참담하고 막막한 이 현실을 어찌 감당하라고요.

불의한 사람은 자신을 향한 잣대와

타인을 향한 잣대가 다르기 일쑤이지만

자신을 재는 자와 타인을 재는 자의 눈금이 한결같았던,

어쩌면 자신에게 더 엄격했던 당신에겐

물론 티끌만한 허물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겠지요.

시시각각 조여 오는 검은 손길과 음흉한 눈빛에

모멸감과 수치심으로 치가 떨리기도 하셨겠지요.

개인의 안위보다 조직의 장래가 더 염려되셨겠지요.

무릇 시인이란 세계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

더불어 아파하고 분노하고 때로는 기뻐 춤추는 존재이거늘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을 수단시하지 않고 사람이 목적이었던

너나없이, 갑도 없고 을도 없이 오직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당신이야말로 위대한 시인이었지요.

당신은 한 치 쇳조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웅숭깊은 단 한 마디로 사람을 움직이고

인을 이루는 촌철성인이기도 하셨으니

세속의 한낱 미천한 시인이 무슨 글월을 더 읊으리오.

당신이 떠나고서야 정작 부끄러운 것은 나 자신인 것을

당신은 여전히 천연스럽게 웃고 있지만

참기 힘든 분노도 서러운 울음도 살아남은 자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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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깨끗한 세상, 더 공정한 세상, 더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당신의 결단과 선택을 머리로는 애써 이해하지만

가슴은 쉬 진정이 안 되어 거듭 되뇌게 되나니

아, 어찌하여 지구는 선한 사람들을 이리 버리시는가,

어쩌면 선한 사람들은 이리도 서둘러 지구를 떠나시는가? / 시인 오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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