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민심 달래는 최후의 수단으로 활용
정치권, 민초의 현실적 고통부터 감싸야

요새 참 덥다. 하루 지나면 어제 기록을 경신하는 폭염 수치를 보고 있노라면 답답한 마음부터 앞선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 나아지려니 하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물 건너가고, 이 폭염을 식혀줄 구세주로 아이러니하게도 태풍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기껏 기다렸던 태풍 암필은 중국으로 방향을 틀어버렸고, 오히려 습한 수증기만 잔뜩 안겨 주었다. 불쾌지수 상승에 기여만 하셨다.

에어컨 없이는 일을 할 수도 잠을 잘 수도 없다. 하지만 또 누진세는 무섭다. 그래서 창문을 열어서 선풍기 바람으로 버텨볼까도 싶은데 미세먼지까지 기승을 부리니 창문을 열 수도 없고, 이건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싶다. 정부는 폭염도 자연재해에 포함시킬지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제 더위도 자연재해구나, 이러다가 사는 것 자체가 재해가 되는 날이 올 것 같다.

비만 온다면 이 뜨겁게 달궈진 대지를 식혀 줄 테고, 자욱한 미세먼지를 씻겨주지 않을까. 하지만 기상청의 일주일 치 일기예보를 보면 비 소식은 고사하고 앞으로도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란다. '이거 뭐 기우제라도 지내야 하는 것 아냐'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기우제라…, 기우제는 우리 인류가 수렵 생활을 끝내고 농경 생활을 시작하면서 당시 기술로는 물을 담아둘 관개시설의 한계로 인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제사이다. 그 시절 기우제는 비가 오지 않으면 농작물이 타들어 가고, 결국 먹을 게 없어 사회소요가 생기기 때문에 지배층에서 꺼내는 최후의 카드였다. 물론 그 카드가 효용을 발휘하는지 여부는 기우제를 지내는 인간들과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지만 말이다. 현재 우리는 기술 발전으로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도 필요에 따라 담아둔 물을 사용할 수 있고, 하늘에 비 오게 해달라고 제사를 지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아무리 가물더라도 기우제 같은 것은 지내지 않는다.

기우제는 하늘에 비를 내려달라고 비는 행위라 그 대상에게 무언가를 바쳐야 했다. 아주 고대에는 살아있는 인간을 제물로 바쳤다고도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즉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그 시절 사람들도 알고 있었나 보다. 물론 그 희생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기우제를 지내는데도 비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계속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수밖에 없다. 피지배층 인내의 한계가 빠른지 아니면 비가 오는 게 빠른지 일종의 치킨게임이다. 지배층으로서도 가장 위험한 최후의 카드를 꺼내는 만큼 그 카드가 안 먹혔을 시에는 민심의 이반과 더 나아가 정권의 붕괴까지 걱정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왜 당시 지배층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기우제를 지낼 수밖에 없었을까. 역사적으로 민중은 지배층이 폭정을 휘둘러도 극심한 차별대우를 받더라도 잘 참아왔다. 하지만 당장 먹을 것이 없으면, 그래서 내 자식의 배가 주리고, 내 배가 주리면 그건 참지 못했다. 민중은 여러 번 생각해도 답이 잘 나오지 않는 관념적인, 추상적인 피해에는 둔감할진 몰라도 당장 배고프고, 덥고, 숨쉬기 힘든 것에는 예민하다.

문일환.jpg

배는 그다지 고프지 않지만, 오늘도 참 덥다. 내일도 참 덥겠지. 미세먼지도 한가득이겠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문제보다도, 손에 잘 잡히지 않는 내일의 문제보다도, 바로 오늘이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높은 곳에서 정치하시는 분들은 이런 것을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