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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내 동생 이야기

예술 이야기 공유하고 서로 가치 알아봐주는 사이…비슷한 길 걸으며 행복 꿈꿔

시민기자 황원식 webmaster@idomin.com 2018년 07월 25일 수요일

대구에 사는 내 동생은 한 달에 한두 번 고향인 창원으로 내려온다. 나는 동생을 보자마자 "요즈음엔 뭐가 재미있는데?" 하고 묻는다. 이건 다양한 의미를 포함한다. 영화, 음악, 스포츠와 같은 문화적인 것들 혹은 정치, 사회적으로 흥미로운 것들이 있으면 얼마든지 이야기의 소재가 될 수 있다. 동생은 영상이나 기사를 첨부하면서 열심히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영화를 좋아해서 집에 오면 꼭 한 편씩 같이 본다. 나는 내 동생이 보여주는 유럽 영화들과 우리나라 저예산 영화들이 너무 재미있다. 국내의 독립영화들도 동생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동생은 왜 후기인상파의 미술이 가치가 있는지, 왜 조영남이나 낸시랭 같은 아티스트들에게 안티가 있는지, 사람들이 앤디 워홀이나 백남준을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는 사실 이런 부분을 잘 모르지만 동생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통해서 정보를 흡입하는데 마치 사막에 풍성한 나무들이 자라나는 느낌이 든다.

동생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아팠던 마음이 치유가 되는 것 같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예술 자체가 주는 힐링 효과가 분명히 있다. 마지막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도 동생은 컴퓨터로 나에게 유럽영화(제목은 〈시작은 키스〉였다)를 보여주었다. 동생 덕에 나는 남에게 뒤지지 않는 문화적 소양을 가지게 되었다. 동생에게 들은 예술적인 이야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할 때면 내가 멋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문화를 향유함으로써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자신의 위치가 비록 미천하더라도, 내가 알고 있는 이런 감각과 지식이 나를 귀하게 만들어주었다.

동생은 대구에서 미대를 졸업하고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자유를 찾아 회사를 그만두었다. 지금은 개인 전시회, 영화 제작, 벽화 사업 등등 다양한 일을 한다. 해외로 여행도 자주 다닌다. 최근에는 영화도 찍어서 대구단편영화제에서 상도 받았다. 벽화 그리는 일로 돈을 번다. 10년 가까이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도 했다. 제수씨도 영화감독이다. 동생은 나에게 예술가의 길을 미리 보여주었다. 그 길은 공무원이나 회사원처럼 안정적이진 않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괜찮다고 하였다. 예술가는 나이가 들수록 가치가 더 올라가고 정년도 없다.

동생은 내가 쓴 글을 보고 재능이 있다고 하였다. 언젠가는 작가로서 잘 될 거라고 했다. 주변에 그 누구도 내가 글을 쓰거나, 사업을 하는 것에 대해서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동생은 달랐다. 나도 나를 확신하지 못했을 때 동생이 나를 알아봐주었다. 누군가 나를 인정해준다는 것은 구원이다. 경제적으로 힘들 때 카드값을 보태준 적도 많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노트북도 동생이 사줬다. 이 노트북은 인터넷도 빠르고 터치도 된다. 지금은 노트북으로 침대 위에서도 글을 쓰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가 벤치가 보이면 앉아서 글을 쓰기도 한다. 동생 덕분에 더 빨리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부모님의 내 일에 대한 반대도 동생이 막아주고 있다. 내 동생이 내가 앞으로 잘된다고 했으니깐 엄마도 나에게 크게 뭐라고 하지 않으신다. 내가 지금도 프리랜서로 지낼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 동생이다. 세상에 이런 동생이 또 있을까?

동생을 보며 나도 성장을 한다. 동생이 미술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말이었다. 미대를 목표로 공부하던 친구들보다 이미 많이 늦게 시작한 편이라 가족들이 말렸지만 결국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하지만 짧은 시간 많은 발전을 하였고 결국 목표로 하던 대학으로 진학하였다. 동생이 몇 개월 만에 카이사르의 석고를 모델로 데생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 당시 신기해서 내가 물었다. "너 어떻게 그렇게 실력이 빨리 느냐?" 그러자 내 동생이 한마디 했다. "내가 꽉 잡고 있던 것을 놓아 버리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 실력이 느는 것 같아." 이 말은 인상 깊었다. 이건 아마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것, 혹은 고집, 방식, 나아가 자존심까지도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동생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했다.

어쩌면 이런 예술가의 삶을 사는 동생이 어떤 직업의 사람들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동생의 삶은 어딘가 세련되고, 자유로워보였다. 세상엔 이렇게 재미있는 일들이 많은데 왜 우리는 그것을 모르는 걸까? 나도 동생과 비슷한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시민기자 황원식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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