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맛은 더하고 질긴 육질은 연하게
스페인산 흑돼지 품종 중 하나
대형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어
목살 구워보니 부드럽고 담백
고소함 선호한다면 먹어볼 만

음식에도 유행이 있다고? 음식을 다루는 미디어 콘텐츠가 눈길을 사로잡는 요즘이다. 미식 재료에 대한 관심도 크다. 세계화에 따른 다양한 음식문화 유입으로 음식을 소비하는 양식 또한 점차 변화하고 있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 하나. 소문을 타고 유행하는 그 음식, 정말 맛있을까? 기자가 직접 유행하는 음식을 찾아 맛을 보면서 찬찬히 유행 현상을 뜯어본다. 본격 음식 탐구생활 되겠다.

카메라를 들고 회사를 나섰다. 가까운 전통시장 정육점을 샅샅이 뒤졌다. "혹시 이베리코 돼지 있나요?"

최근 온라인에서 소문을 타는 음식 중에 이베리코 돼지가 눈에 띈다. 이베리코 돼지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식당도 하나둘 문을 여는 모양새다. 음식을 먹으며 소통하는 온라인 '먹방(먹는 방송)'에서도 쉽게 이베리코 돼지를 접하는 요즘이다.

▽ 집에서 구운 이베리코 돼지 목살

이베리코 돼지는 세계적인 진미 중 하나로 꼽히는 하몬의 원재료로 유명한 스페인산 흑돼지로, 도토리 등을 먹여 키운다. '이베리코'는 돼지 품종의 이름이자, 이베리코 돼지가 자라는 지역명이기도 하다.

돼지고기보다 쇠고기를 선호하는 입맛인지라 처음에는 대충 넘겨봤다. 자주 보면 정든다고 했던가. 방송에서도, 인터넷에서도 이베리코 돼지를 자꾸만 언급하니까 그 맛이 궁금해졌다. "그래, 속는 셈치고 한 번 먹어보자."

이베리코 돼지에 관한 정보는 사전에 차단했다. 무작정 길을 나섰다. 전통시장 정육점에 있을까 싶어 네 군데 정도 훑었다. 돌아온 대답은 "이베리코 돼지는 취급하지 않는다"는 말.

일반 정육점에서는 유통기한을 이유로 취급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 정육점 사장은 "국내로 들어오는 데 드는 기간을 빼면 정육점에서 보관하며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이 짧다"며 "찾는 소비자가 많지 않은 까닭에 굳이 이베리코 돼지를 취급할 장점이 없다"고 설명했다.

대형마트로 발길을 돌렸다. 3대 대형마트 가운데 두 곳 냉동육 코너에서 이베리코 돼지를 쉽게 찾았다. 국내에 들어오는 이베리코 돼지는 대부분 냉동이다.

이마트는 지난 4월께 이베리코 돼지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롯데마트는 이보다 더 발 빠르게 이베리코 돼지를 들였다. 지난해 11월께부터다. 한 발 더 나아가 롯데마트는 스페인 이베리코 회사인 칼데론 라모스를 파트너사로 삼아 직접 공급을 받는다.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이베리코는 소포장이다. 1인 가구 증가, 조리 편리성을 이유로 든다. 그래서 300~400g에 1만 원 이하 가격으로 판매한다.

이베리코 돼지 목살 인상적인 마블링.

부위는 삼겹살, 항정살, 갈빗살, 목살 등 다양하다. 여러 선택지 가운데 처음 먹을 이베리코 돼지 부위로 목살을 골랐다. 구이용 400g 용량.

이베리코 목살은 겉보기에 돼지고기보다 쇠고기 모양새에 가까웠다. 서리가 내린 듯한 마블링(고기 지방 분포)이 인상적이었다.

해동을 하고 포장을 뜯었다. 굽기 전에 생고기 향을 맡아봤다. 우유 냄새에 가까운 향이 났다. 모양새는 어디서 많이 봤다 했는데, 스페인 전통 음식 '하몬(Jamon)'이나 '로모(Lomo)'를 연상케 했다.

하몬은 소금에 절여 건조한 돼지 다리로 만든 햄이다. 로모는 안심을 쓴다. 이들 햄의 최상품은 '하몬 이베리코 데 베요타' '로모 이베리코 데 베요타'라고 부른다. 하몬 이베리코는 하몬에 쓰는 돼지 품종이 이베리코 돼지일 때 쓸 수 있다.

이베리코 돼지가 국내에 알려지게 된 계기도 하몬이다. 고급 음식점 등에서 하몬을 내면서 자연스레 이베리코 돼지도 언급됐다. 그러다 2016년께부터 이베리코 돼지 자체에 관심이 쏠렸다.

그 흐름을 타고 국내에도 고품질 프리미엄 마케팅을 앞세워 이베리코 돼지를 전문적으로 유통하는 업체가 생겨났다. 현재 스페인 돼지고기 수입량은 국내 돼지고기 수입량 가운데 세 번째로 많다.

대형마트에서 소포장 판매하고 있다.

여기서 이베리코 돼지를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우선 이베리코 품종 돼지는 스페인 이베리코 반도에 있는 데헤사에서 난다.

보통 국내에는 이베리코 돼지를 도토리만 먹여서 키웠다고 알려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우선 이베리코 돼지 등급에서 최상위인 베요타 명칭이 붙으려면 순종 이베리코 돼지여야 한다.

이베리코 돼지를 키우는 지역의 도토리 철은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이때가 집중적으로 돼지를 살찌우는 시기다. 이 시기 순종 이베리코 돼지를 도토리나무가 있는 데다 풀어놓는다. 자유롭게 다니며 도토리를 주워 먹은 돼지는 살이 찌고 근육량도 높아지면서 특유의 맛을 낸다. 이것이 이베리코 베요타인데, 스페인 도토리는 단맛이 나서 이 맛이 돼지고기에서도 난다는 것.

도토리와 사료를 섞어 먹인 돼지는 세보데캄포, 축사에서 사료를 먹여 키운 돼지는 세보로 등급이 달라진다.

이제 조리를 할 차례. 이베리코 돼지는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올리브유를 발라 구웠다. 바짝 익히지 않고 식성에 따라 굽기를 달리해서 먹어도 된다. 미디엄과 웰던 중간 굽기인 미디엄 웰로 조리했다.

다 구운 이베리코 돼지는 조리 전보다는 훨씬 돼지에 가까운(?) 모양새였다. 이제 한 입 먹어볼 차례다. 이베리코 돼지 목살은 퍽퍽하지 않고 육질이 부드러웠다. 육즙도 적당했고, 담백하다.

사실 국내에서 이베리코 돼지가 대중적 소비 열풍을 이끌 정도는 아니다. 수입 소고기도 가격이 나름 저렴해 굳이 이베리코 돼지를 찾을 까닭은 없는 듯하다. 다만 "고소한 맛을 찾는 사람에게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한 정육점 사장의 말처럼, 다양한 선택지 가운데 하나 정도로 여기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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