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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이름만 봐도 그곳 부처 알 수 있다

[LH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을 보는 눈] (1) 금당과 대웅전, 불교 전각
불교 전래 초기엔 '금당'명칭 써
교리발전 뒤 번역된 '대웅전'정착
건물 위계 순서 '전 〉 당 〉 합 〉 각'
전각명, 모신 주존에 따라 달라져
△관세음보살 → 관음전 △지장보살 → 지장전
△아미타불 → 무량수전·아미타전

최형균(LH 총무고객처) webmaster@idomin.com 2018년 07월 24일 화요일

이 기획은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다가가기는 쉽지 않은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조금 더 깊이 있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연재를 통해 순간적 흥미 위주의 단편적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기본개념에 대한 이해를 넓히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전거를 배울 때, 처음에는 발을 떼기도 무섭고 불안하지만 약간만 도와주면 중심을 잡고 곧 앞으로 나가듯이 자연스럽게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는 눈을 기르는 것! 바로 그게 이 기획의 목표이다.

마침 이 글을 작성하는 중에 우리나라 7개 산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일이 있었다. 시작할 때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등재를 축하해주는 기획이 될 수 있어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진 듯하다.

"금당 밖으로 나오던 담징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느 틈엔지 법륭사 주지가 서 있었던 까닭이었다. 생불이라 우러름을 받는 그였다. 담징은 자기도 의식하지 못한 채 합장을 했다. …"

1980년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던 소설 <금당벽화>의 일부분이다. 고구려 스님 담징이 일본 호류지(法隆寺) 금당벽화를 그리는 이야기인데 여기서 금당(金堂)은 무엇일까? 정확하게 이 질문을 필자는 고등학교 국어선생님께 했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너무도 당연히 대웅전이라고 대답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개운하지 않았다. 무언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덮었지만 주입과 암기가 미덕인 고3 생활에서 더 이상 캐지 않고 넘어갔고 이 문제의 답은 대학 전공을 하면서 깨달았다. 금당하고 대웅전(大雄殿)은 같은 곳인가? 그렇지 않다면 금당과 대웅전은 무엇인가? 오늘은 이 질문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유형 문화유적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불교 전각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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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해인사 대적광전 현판, 무량사 극락전 현판, 미황사 대웅전./최형균

불교는 특정한 신을 믿는 종교가 아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사람들은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고,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런 세계관에서 보면 옛날에도,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수많은 부처가 있었고, 있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불교적 세계관을 직접 이 세상에서 정리하고 증명해 보인 석가모니 부처가 있고, 사후에 조금 더 좋은 곳(極樂)에 태어나길 빌었던 아미타여래(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의 바로 그 분이다)도 있고, 관세음보살도 있다. 또 이 세상의 개벽을 이끄실 미륵불, 누구나 단정한 몸을 얻고 모든 병을 소멸되게 하길 서원한 약사여래 등이 계신다.

그리고 절에서는 주로 이렇게 많은 부처 중 한 분을 주존(主尊)으로 모시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경주 불국사는 청운교-백운교-자하문으로 들어가는 권역과 연화교-칠보교-안양문으로 들어가는 권역이 완전히 구분되어 있고 당연히 모시는 부처님도 두 분이다. 또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는 여러 부처님이 한 건물에 계시기도 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한 분이 한 건물에, 그리고 한 절의 메인 부처님은 한 분! 이게 기본적인 우리나라 절의 구성이다. 그리고 절집의 이름은 거기에 모셔진 부처님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면 금당은 어떤 부처를 모신 건물일까? 금당은 불교 전래 초기에 아직 불교가 지금의 수준으로 정착되지 못한 시기의 명칭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후대의 절집 이름보다 격이 낮다. 동양권에서 집의 명칭은 맨 마지막 음절이 격을 좌우한다. 대웅전, 관음전 이런 것들은 다 전(殿)이고, 금당은 당(堂)이다. 지금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안동 봉정사에는 극락전이 있고, 부석사에는 무량수전이 있다. 다양한 건물들이 확실한 위계를 가지고 있는 경복궁을 보자. 경복궁의 중심은 근정전(勤政殿), 왕의 거처는 강녕전(康寧殿), 왕비의 거처는 교태전(交泰殿)이다. 이에 비해 세자의 거처는 희정당(熙政堂)이다. 이게 무슨 차이냐 하면 아무 건물에다 전(殿)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는 말이다. 건물의 위계는 전(殿)이 가장 높고 당(堂)-합(閤)-각(閣) 순으로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다. 왕을 전하(殿下)라고 부른 이유도, 전(殿) 아래(下)에서 봐야 하는 인물이 임금이기 때문이다. 만약 조선시대 어떤 세도가가 자기 집 사랑채에 현판을 걸고 경남전(慶南殿)이라 써붙였다면? 능지처참감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처를 모셨지만 당이라고 부른 건물은 아직 불교가 제대로 사회적으로 지금만큼의 지위를 얻기 이전에 나타났을 것이다.

그리고 금당이라고 부르는 사연은 이렇다. 역시 불교 전래 초기 이야기다. 이 무렵 불교의 모습은 지금처럼 복잡한 불교세계가 아니었고, 접할 수 있는 불상의 모습도 사람들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조그만 금이나 금동불이었을 것이다. 가서 보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은 하지 말자. 중국과 인도 사이에는 목숨을 걸고 건너야 할 사막과 고원이 가득했다. 오죽하면 서유기가 나왔겠는가? 그래서 이렇게 개인이 들고 온 작은 불상들을 크게 만들어서 전각에 모셨을 것이고, 당연히 금색으로 빛나는 상이 모셔진 집, 금당(金堂)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모셔진 분이 누구인지 구분할 상황도 아니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조금 더 발전된 교리에 눈떠감에 따라 여러 부처님들에 대한 구분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인도의 불교 용어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한자로 번역이 이루어졌는데 석가모니 부처의 경우는 산스크리트어 '샤캬무니'를 소리 나는 대로 한자로 옮겨서 석가모니(釋迦牟尼), 아주 위대한 존재, 대웅(大雄) 등으로 번역되었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를 모신 전각의 이름이 대웅전(大雄殿)이다.

이름만 들어도 기둥에 기대서야 할 것 같은 무량수전(無量壽殿)에는 어떤 부처가 계실까? 아미타불을 범어로는 아미따바(Amitabha·끝없는 광명), 아미따유스(Amitayus·끝없는 수명)라고 한다. 이걸 한자로 의역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 무량수불(無量壽佛)이 되며,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아미따'만을 한자로 음역한 호칭이다. 그러니 무량수전은 아미타불을 모신 집이 된다. 아미타전(阿彌陀殿), 미타전(彌陀殿)도 마찬가지다. 또 아미타여래는 서방 극락정토(極樂淨土)를 관장하고 계시기에 극락전(極樂殿)이 되기도 한다.

이런 원칙에 반전은 거의 없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모신 공간은 관음전(觀音殿)이 되고, <신과 함께>라는 웹툰과 영화로 유명해진 지장보살을 모신 곳은 지장전(地藏殿)이 된다.

그러면 다시 정한숙의 금당벽화의 한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벌겋게 물든 동녘하늘의 아침 기운이 울창한 수목들을 물들이고 있었다. 목탁소리도 끊어졌다. 불상 앞으로 돌아온 담징은 떨어트렸던 염주를 주워들고 다시 합장배례를 했다. 아침이슬이 풀잎을 굴러 뿌리로 흐르듯 염주 한알 한알이 그의 엄지손가락을 타고 마음속으로 굴러들어갔다."

담징이 고뇌 끝에 금당벽화를 완성할 다짐을 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담징이 만난 불상이 석가모니불이었다면 그 절집의 이름은 무엇일까? /최형균(LH 총무고객처)

LH에 근무하고 있는 필자(사진)는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러큐스(Syracuse) 대학교에서 행정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평소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여러 유적들을 답사하고 배운 것들을 나누기 위해 노력하던 중, LH의 진주시대를 맞아 남도로 본격적인 발걸음을 넓혀가고 있다.

※이 기획은 LH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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