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가해자 조롱은 또 다른 인권침해
과도한 폭력성에 본질 볼 수 없을 지경

혜화역 시위를 두고 이런저런 논쟁이 뜨겁다. 이 시위는 홍익대 미술 수업에서 남성 동료 모델의 사진을 찍고 퍼뜨린 혐의로 20대 여성이 구속된 것과 관련해 경찰의 편파 수사를 규탄하며 시작되었다. 3차에 이르는 이 시위에 많은 여성이 참여한 것은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던 몰카에 대한 여성의 불안과 공포가 표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 시위는 여성의 일상적 폭력을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 제기가 한편 공감되면서도 한편 불편하다. 첫 번째 불편함은 홍대 몰카 사건에 대한 인식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여성들은 일상적인 몰카의 위협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남성 가해자는 처벌이 매우 미약했던 것도 사실이다. 반면, 홍대 몰카 사건의 경우 매우 신속하게 사건이 처리되었고 구속이라는 이례적인 처벌이 가해졌다. 그러나 그것을 편파 수사라고 말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몰카의 대상이 여성이었을 경우에만 범죄가 아니다. 그 대상이 남성이고 가해자가 여성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심각한 범죄이다. 이번 사건이 신속하고 엄중하게 처리되었다면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사건이 처리되기를 요구해야 하는 것이지 피해자를 조롱하고 경멸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몰카는 인권의 문제이다. 그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또 다른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면 그 주장은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

두 번째 불편함은 이 시위의 편협함과 폐쇄성이다. 이 시위는 처음 참석 대상을 '생물학적 여성'으로 규정함으로써 문제가 되었다.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표현은 다양한 차별을 내포하고 있다. 생물학적 여성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다른 성은 배제의 대상이 되고 나아가 혐오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이는 아동을 동반한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남자아이에 대해 '한남유충'이라고 표현하고 '딱 하루도 아이를 맡길 사정이 안 되면 시위에 오지도 말아야지'와 같은 인식은 타인에 대한 배려를 조금도 찾기 어려운 또 다른 혐오에 불과하다.

세 번째 불편함은 혐오를 혐오로 대응하는 극단적 미러링 방식이다. 모든 남성을 '한남충'으로 적대시하고 '재기해', '주혁해', '곰'과 같은 표현으로 고인을 모독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 행위를 권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 같은 표현과 행동들이 '일베'와 어떤 점에서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러링'이 혐오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 혐오에 대한 혐오가 되어 버린다면 그것은 더 이상 '미러링'이 아니라 또 다른 폭력에 불과하다.

주최 측의 주장처럼 언론이 혜화역 시위와 시위 중 일부 구호를 자극적으로 보도해 본질을 비켜 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김어준 총수는 "달을 피 묻은 칼로 가리키면 달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칼을 보게 된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현재의 혜화역 시위는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그 수단이 너무 폭력적이어서 본질을 볼 수가 없는 지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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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에서 이러한 문제 제기는 그 자체로 감사하고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주장과 운동은 고립될 수밖에 없다. 촛불집회가 지금까지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은 평화적인 방식으로 많은 사람의 공감과 연대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성차별, 성평등에 대한 요구는 더군다나 공감과 연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주최 측은 8월 4일 4차 혜화역 시위를 예고했다. 그 시위에서는 '피 묻은 칼'이 아니라 '달'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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