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닝(burning)>을 봤다. 영화 <박하사탕> 때문에 좋아하게 된 이창동 감독의 영화다.

온종일 주인공 종수(유아인)의 동공의 움직임이 부재된 초점 없는 눈과 허 벌린 입매 사이로 묻어나는 공허와 분리와 갈증의 기운이 내 온몸을 감싸 돌며 우울하게 치고 든다. 지극히 성실하게 자신이 속한 사회의 한 공간에서 일상을 꾸려가는 보통의 젊은이 종수. 그에게 세상 부귀영화와 명예는 현실감이 없다.

그리고 그레이트 헝거를 꿈꾸며 아프리카 토속춤을 추는 어릴 때의 친구였던 해미(전종서)를 우연히 만나 사랑하게 되고 그녀가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나면서 돌봄을 부탁한 고양이 한 마리를 돌보며 그녀의 집과 자신의 집을 오간다.

가끔씩 그녀의 손바닥만한 원룸 안에서 이전에 그녀가 손으로 만든 프레임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바깥세상을 그녀의 렌즈에 들였다 내렸다 하던 것을 흉내내어 보기도 하며 그 속에서 무표정과 억제를 연기하고 자위도 하며 아무렇지 않게 묵묵히 일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녀가 아프리카 여행에서 돌아오고 그녀와 단둘만의 만남을 기대했던 그에게 그녀는 아프리카 여행에서 알게 된 한 남자를 소개한다. 버려진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것이 취미라고 말하는 남자…. 훨훨 타는 불을 보며 인생의 절대쾌락을 느낀다는 그는 그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 요즘 말로 금수저급이었다.

영화에서 비닐하우스란 세상에서 버림받아 쓸모없게 된 여자들, 그래서 인간으로서 가치가 없게 된 여자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취하다가 필요없어지면 아무 데나 버려도 된다는 그의 사이코패스다운 정신 상태를 보여준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가 갑자기 사라지고 사랑하는 그녀를 찾기 위한 주인공의 처절한 추적이 시작된다. 오랜 추적 끝에 결국 그 사이코패스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그를 칼로 찔러 죽이게 된다.

치밀해 보이지 않는 동선들과 흐름 속에서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와 백그라운드, 뭔가 엉성해 보이는 연결고리들은 계산된 것일까를 생각하며 보는 내내 생각을 돌려야했고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다양한 포지션과 마인드, 가치에 대해 생각게 했다. 결국 밟고 싶지 않았던 곳을 밟게 된 종수. 그와 함께 공유하게 된 삶을 털어내려 한겨울의 살을 에는 추운 날임에도 죽인 남자의 시신과 함께 자신의 옷가지를 속옷까지 다 벗어 남자의 차에 밀어 넣고 잔재조차 남기지 않으려 기름을 쏟아붓고 불을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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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신에 의해 벗겨진 알몸'으로 트럭을 몰고 서서히 멀어져가는 영화의 주인공 종수를 보면서 과연 그가 살고자 했던 삶은 어떤 모습일까를 떠올린다.

무엇이 그에게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르게 했나? 훨훨 타오르는 저 불꽃에 그는 과연 무엇을 태우려 했던 걸까? 그리고 그레이트 헝거를 꿈꾸던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런 물음들이 영화가 끝나고서도 나를 텅 빈 객석에 한참을 앉아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나에게 질문한다. Do you want to be a great hunger too?

'열린마당'에 '관람후'라는 코너를 신설했습니다. 이 코너에는 영화나 연극, 음악회, 전시회 등 각종 문화행사를 관람한 느낌을 담게 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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