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민간인 학살 역사 시와 그림으로 기억하다
민예총 경남작가회의 주최
늦게 알려진 희생 기리며

처음 가는 곳이어서 그런지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으로 가는 길은 낯설었다. 몇 번이나 다녀간 동의보감촌을 지나는 여정이다. 산청군 금서면 화계마을과 주상마을을 지나자 엄천강변을 달린다. 남강(경호강)의 지류다. 추모공원은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에 있다. 바로 옆이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다. 희생자 합동 묘역은 2004년, 역사교육관은 2008년에 만들어졌다.

지난 21일 오후 2시 30분부터 이곳에서 산청함양사건 추모문학제가 열렸다. 산청함양사건 추모문학제는 같은 맥락에서 발생했지만, 거창사건보다 뒤늦게 알려진 산청함양사건을 문학으로 알리자는 취지로 열렸다. 경남도가 후원하고 경남민예총 문학위원회 경남작가회의가 주최한 행사다.

느긋하게 추모공원을 둘러보려고 행사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도심보다 한결 시원하긴 했지만, 그래도 숨이 턱턱 막히는 땡볕이다. 합동 묘역에 줄지어 선 묘비를 찬찬히 훑으며 걷다가 우뚝 서버렸다.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 내 복예관에서 진행된 시화전 중 사건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그림. /이서후 기자

'여경석의 묘, 1950년 6월 30일 생(生), 1951년 2월 7일 졸(卒)'

이 묘비 앞에서 한동안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학살 희생자는 항상 어른의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처참한 죽음 안에 아이들도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겨우 일곱 달을 살았던 아기는 왜 죽어야 했을까.

1951년 2월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가 벌인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 '견벽청야(堅壁淸野'. 원래는 삼국지에 나오는 것이다. 성을 튼튼히 쌓고, 들판 곡식을 모조리 거두어 적이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는 방어 전술.

당시 3대대에 청야(淸野)란 작전 지역에 있는 마을을 초토화시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2월 7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 산청군 금서면 가현, 방곡마을과 함양군 휴천면 점촌마을, 유림면 서주마을에서 민간인 705명이 학살됐다.

경남작가회의 양곡 회장이 추모문학제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서후 기자

3대대는 2월 9일에서 11일 사이 거창군 신원면에서도 이 작전을 수행해 719명을 학살했다. 산청함양사건만 보더라도 10세 이하 아동 희생자 수가 전체 30%에 이른다. 이 작전의 참혹성을 보여주는 수치 중 하나다.

이날 행사는 역사교육관, 사무실, 영상실-세미나실이 들어선 복예관에서 진행됐다. 이 건물 안팎에서 추모시화전도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지역 시인들의 추모시들이 낭송됐다. 또 유족회 사무국장인 임수호 시인이 강사로 나서 추모공원 조성 경과와 산청함양사건 의미에 대해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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