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이 묻는다 일본군은 왜 우리를 이리 했나
아시아 곳곳서 담은 성노예 피해자 모습
"일본 국민이 알아야" 현지 거주·전시도

상대방을 모르면 인물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다. 전시장에 내걸린 할머니들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일본군이 왜 나를 이렇게 했는지 알고 싶다", "일본의 높은 사람이 직접 와서 나를 보고 사과해야 한다"라는 말이 들린다.

안세홍 작가가 20년 넘게 찍어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모습을 공개했다. 지난 17일 창원 창동예술촌 내 창동갤러리에서 '겹겹 지울 수 없는 흔적, 아시아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 여성들'전을 시작했다. 이번 전시는 안 작가가 이끄는 겹겹프로젝트와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마창진시민모임(대표 이경희), 여성가족부가 함께했다.

전시는 크게 다섯 갈래로 볼 수 있다.

먼저 전시장 한편에 한국, 동티모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중국 등 위안부 피해자들의 얼굴이 액자 속에 담겨 커다란 한 작품처럼 이어졌다. 밝고 도드라진 색감과 다르게 그녀들의 얼굴은 어둡고 무표정하다.

'겹겹 지울 수 없는 흔적'전. 선물 받은 아기 인형이 진짜 아기인 줄 알고 옷을 입히고 업어 키웠다는 고 이수단 할머니의 사진(왼쪽)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이미지 기자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통영 김복득 할머니 모습도 전시장 맨 위에 내걸려 있다. 안 작가가 찍은 고 김복득 할머니의 2014년도 얼굴. 그녀는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칠하고 있다.

안 작가는 할머니를 만나며 나눴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수첩에 빠르게 휘갈긴 메모, 아시아 지도 위에 기록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얼굴과 생활, 영상으로 남긴 인터뷰까지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또 이들의 과거 사진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아주 크지 않은 전시장이지만 사진전을 관람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무엇보다 창동갤러리를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건네는 이야기를 허투루 들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겹겹 지울 수 없는 흔적'전./이미지 기자

선물받은 아기 인형이 진짜 아기인 줄 알고 옷을 입히고 업어 키웠다는 고 이수단 할머니, 여러 단체에서 그녀를 위해 보낸 기저귀를 미처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는 사연은 할머니 앞을 떠날 수 없게 한다.

이러한 아픔, 고통, 흔적을 안고 사는 안 작가는 예술을 통해 일본의 '위안소 제도'를 정확히 짚고자 한다.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해온 그는 1996년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나고서 국내뿐만 아니라 동티모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중국 등을 찾아 피해자들을 만나 사진을 찍고 있다.

작업은 만만치 않다. 정부나 기관의 도움 없이 오로지 후원과 사비를 털어 오지로 나선다. 국내는 나눔의 집이라는 주거시설이 있지만 동티모르나 인도네시아 등은 위안부 피해 여성의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사회 인식이 높지 않다. 현지 공안에 쫓겨 도망을 가는 등 매번 난관에 부딪힌다.

안세홍 작가./이미지 기자

그럼에도 이 작업을 멈출 수 없다. 그는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 일본에 거주하며 일본 국민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

안 작가는 군인 한 사람, 즉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성노예를 제도화해 집단적 성행위 장소인 군대 위안소를 만든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묻는다.

이렇게 해야만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피해 보상과 사죄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원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았던 제가 일본에 터전을 마련한 이유는 일본 국민이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를 역사적으로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일본에서 꾸준히 사진전을 열면서 이들로부터 작게나마 후원과 지지를 받고 있다.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전시는 30일까지 이어진다. 평일 오후 4시마다 안 작가가 사진 설명을 해준다. 문의 055-26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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