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더위 속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모습을 담아봐라." 데스크의 첫 지시였다.

오전 11시가 좀 넘었을 때였는데, 현장 섭외를 하는 것도 그렇고 취재 후 기사를 쓰는 것도 그렇고 마감시간 안에 처리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무작정 거리로 나왔다. 다행히 근처에서 공사장을 발견, 쾌재를 부르며 현장사무실로 들어갔다. 취재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다른 곳 찾아보시지예." 예상과 다른 반응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까는' 기사가 아니라고 그렇게 설명을 해도 엮이는 걸 원하지 않아 했다. 근처에 또 다른 현장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뛰다시피 움직였다. 점심시간 전에는 무조건 섭외해야 했다.

애원(?)하는 게 안타까워 보여서인지, 현장소장은 취재 의도를 연신 설명하는 기자를 한 번 슥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삶에 위기가 닥쳤을 때마다 절박함을 표출했던 거 같다. 뭐 해먹고 살아야 할지 몰라 고민에 빠졌을 때, 백수인 상황에서 갈 곳이 없어 도서관을 서성거렸을 때, 지인에게 거금을 빌려줬는데 감감무소식이었을 때, 주가가 흘러내리는 걸 속절없이 쳐다보았을 때…. 그때마다 난 평소 거들떠보지 않았던 이들을 마음속에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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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아버지, 부처님,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제가 이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부탁드리옵니다.'

현장소장이 이것저것 캐묻지 않고 취재할 수 있도록 허락해준 것도 이들의 도움이 있지 않았나 싶다. 요즘 자주 불러내고 있기는 하다. '오 신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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