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립으로 통영항 풍경 변화, 어선 드나드는 뱃길은 여전
과거 번화가 '동충 뒷골목' 한산한 거리엔 쓸쓸함마저
공주섬은 울창한 솔숲 이뤄, 건너편엔 관광 시설 들어서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닷빛은 맑고 푸르다."

소설가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의 첫 장은 '통영(統營)'이란 소제목으로 시작합니다. 소설은 배경이 되는 19세기 말 통영을 자세히 묘사합니다. 다른 곳보다 일찍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원시적인 형태지만 자본주의가 형성되기 시작할 무렵의 역동적인 어촌 마을. 소설이 보여주는 옛 모습을 따라 앞으로 통영을 몇 번 다녀오려 합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옛 동충동과 서충동 지역입니다. 강구안을 지나 통영 여객선터미널 가기 직전에 있는 동네입니다. 지금은 강구안을 포함해 통영시 항남동에 속합니다.

통영항 입구 동충에서 바라본 건너편 남망산. /이서후 기자

◇매립 전 둥그스름한 통영항

"고성반도에서 한층 허리가 잘리어져 부챗살처럼 퍼진 통영은 복장대 줄기를 타고 뻗은 안뒤산이 시가를 안은 채 고깃배가 무수히 드나드는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뒤산 기슭에는 동헌과 세병관 두 건물이 문무를 상징하듯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중략) 동헌에서 남문을 지나면 고깃배, 장배가 밀려오는 갯문가, 둥그스름한 항만이다."

갯문가는 지금 강구안 일대를 이릅니다. 거북선을 포함해 조선 수군의 전투선이 정박하던 선창(船艙), 즉 부두 시설이 있던 곳입니다. 그래서 선창가 혹은 선창골이라고도 불렸고요. 조선 후기에는 선창하고는 상관없는 신선 선(仙) 자를 써서 선창동(仙滄洞), 그리고 1900년 진남군 때는 선동(仙洞)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둥그스름한 항만일까요. 지금 강구안 일대 항만은 거의 육각형으로 각이 져 있어 반듯한 모양입니다. 항남동 거리에서 이유를 발견합니다. 바닥에 동판으로 통영항 일대 매립지도를 새겨놨습니다. 강구안 일대는 일제강점기인 1938년부터 꾸준히 매립이 이뤄졌습니다. 1964년까지 진행한 매립으로 거의 지금과 같은 모양이 만들어집니다. 옛 지도 중에서 통영 모습을 그림처럼 잘 그린 1872년 지방지도를 보면 과연 강구안을 포함한 항만이 둥그스름합니다. 지금 지도를 보면 항남3길이라 불리는 곳이 옛 해안선입니다.

도깨비골목 바닥에 새겨진 통영항 일대 매립지도./이서후 기자

◇도깨비 골목으로 남은 옛 번화가

"항만 입구 오른편이 동충이며 왼편이 남방산이다. 이 두 끄트머리가 슬며시 다가서서 항만을 감싸주며 드나드는 배를 지켜보고 있었다. 동충과 남방산 사이에는 나룻배가 수시로 내왕한다."

여기서 남방산은 남망산을 이릅니다. 항남동 퀸모텔 앞에서 바다 건너편을 보면 통영시민문화회관을 중턱에 품은 남망산이 아주 가까이 보입니다. 이곳이 강구안으로 들어가는 좁은 입구, 박경리 선생이 묘사한 동충 지역입니다. 화물부두와 여객선부두를 만드느라 옛 모습이 사라졌지만, 원래는 바다 쪽으로 가늘고 길게 뻗은 땅입니다. 강구안 쪽을 동충(東忠洞), 지금 화물부두와 여객선부두가 있는 서호만 쪽을 서충(西忠洞)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충(忠)은 중심이란 의미로 쓰였습니다. 본래 충에는 중심이란 뜻은 없습니다. 하지만 충이란 한자를 파자(破字)하면 중(中), 심(心)이기도 하죠. 무엇의 중심이냐면 바다의 중심입니다. 여항산(안뒷산) 지맥이 바다 중심으로 뻗어내려 온 땅이란 말입니다.

동충 뒷골목은 지금도 숙박업소와 술집이 많다./이서후 기자

보통 이곳은 관광객이 가득한 강구안과 중앙시장에 비해 한가합니다. 저도 한동안 통영에 오면 강구안과 동피랑만 다녔지요. 그런데 어느 날 여객터미널 지나 강구안으로 가다 퀸모텔 앞을 지나는데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바다 건너 나폴리모텔에서 동피랑으로 이어진 풍경이 압도적으로 몰려왔습니다. 아, 멋지다~. 이후로는 강구안보다 더 좋아하는 곳이 되어버렸지요.

항남동 뒷골목, 특히 동충동과 서충동 쪽은 숙박업소와 술집, 유흥업소가 모여 있는 곳입니다. 통영에 가더라도 이곳을 찾을 일은 거의 없습니다. 안 그래도 예쁘고 멋진 곳이 많은데,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술집 거리에 관심을 둘 이유는 없으니까요.

지금은 이곳에 도깨비 골목이란 테마 거리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유명했던 통영의 옛 번화가거든요. 1960년대까지도 지금보다 훨씬 많은 숙박 업소와 술집이 들어서 흥청망청하던 거리였답니다. 대낮에도 젓가락 장단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던 곳이었다지요.

오랜 유흥가 골목이 그렇듯 도깨비골목의 낮 풍경은 한가하고, 때로 쓸쓸한 느낌마저 듭니다. 골목 귀퉁이에 겨우 한두 채씩 옛 모습을 간직한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옛 영광은 이제 지하 노래주점에서 악을 쓰듯 흘러나오는 어느 중년 사내의 옛 노랫가락에 추억처럼 남아 있습니다.

동충 지역 뒷골목은 도깨비골목으로 꾸며져 옛 영광을 추억한다./이서후 기자

◇통영이 품은 여의주 공주성

"항구에 서면, 어떻게 솔씨가 떨어졌는지 소나무 한두 그루가 우뚝 서 있는 장난감 같은 공지섬이 보이고 그 너머 한산섬이 있다. 여기서 거제도는 아득하다."

이 구절을 읽고 통영 앞바다에 공주섬(拱珠島)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아니죠. 지금까지 수없이 봤을 테지만 알아채지 못했을 겁니다. 공주섬은 통영항으로 들어오는 바닷길 입구에 있는 아주 조그만 섬입니다. 풍수에서 통영 지세를 용 모양으로 해석하는데, 용이 가지고 노는 여의주에 해당하는 게 공주섬이랍니다. 그래서 구슬 주(珠)에 손 맞잡을 공(拱) 자를 씁니다. 통영 사람들은 공지섬이라 부르죠. 소설에서는 소나무가 몇 그루 없는 걸로 묘사했는데, 지금은 나름 솔숲이 울창합니다. 섬 건너편은 미륵관광지구의 휴양시설, 호텔 등이 환하게 줄지어 있습니다. 그래서 조그만 공주섬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겁니다.

돌아오는 길 잠시 건너편 남망산에 올라 항남동을 바라봅니다. 지난 영광은 역시 멀찍이 아득한 시선으로 봐야 아름답네요. 통영항에는 지금도 수시로 고깃배가 드나들고 있습니다. 변한 게 없다면 이것뿐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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