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부터 도망친 주인공
과거 자신과 화해 과정 그려
'래퍼'설정으로 감칠맛 추가

청춘은 가난하고 고향도 가난하다. 어떻게든 '성공'해서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었는데 인생은 꿈꾼 미래보다 언제나 구질구질한 모습으로 발을 붙잡는다.

영화 <변산>(감독 이준익)은 청춘 얘기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말하자면, 주인공 학수(배우 박정민)는 고향 변산을 떠나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래퍼로 성공하고 싶어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동창 선미(배우 김고은)에게서 아버지(배우 장항선)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전북 변산 땅을 밟는다. 한평생 건달이었던 아버지를 미워하는 학수는 변산에서 일어난 몇 가지 사건을 통해 성장하고 가족을 용서한다. 그리고 그의 내면을 변화시킨 선미와 사랑을 이룬다.

영화 〈변산〉 스틸컷.

<변산>은 그동안 <왕의 남자>(2005), <사도>(2014) 등을 내보인 이준익 감독의 여러 작품과 비교할 때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 세련되지도 않다. 예상 가능한 전개, 큰 반전 없는 인물, 해피엔딩이라는 결말까지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영화는 지루하지 않다. 팽팽한 스토리가 아님에도 상영 시간 내내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힘은 이 감독의 저력 덕이다.

학수가 래퍼라는 설정은 밋밋한 이야기에 감칠맛을 더한다.

영화 중간 중간 혼잣말을 랩으로 전하는 학수는 힙합만의 '스왜그'로 가난한 청춘과 지긋지긋한 고향의 무게를 덜어낸다. 이는 아픈 아버지이지만 평생을 미워했던 그를 이제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는 학수의 모습과 이질적이지 않다. 영화가 신파스럽게 흘러가지 않은 것도 바로 랩이 있어서 가능했다.

무엇보다 영화의 주제를 잘 드러낸다. 영화 중반부 선미가 학수에게 말한다. "너는 정면을 안 본다. 그런 새끼가 무슨 랩을 하느냐?"라고 말이다.

힙합의 스왜그는 힙합정신에서 나온다. 이는 솔직함이다. 래퍼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며 세상에 소리친다. 학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선미는 위선이라고 봤다.

영화는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는 학수를 통해 자신의 과거와 상처로부터 도망가고 외면하는 우리를 보여준다.

과거의 결핍을 견디려 성공만을 바라는 현재는 결코 미래를 성숙하게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영화는 선미라는 인물을 활용한다. 선미는 성숙한 인간이다. 자신의 상처를 인지하고 들여다보며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버린다. 학수가 성공을 위한 글을 쓸 때 선미는 자신을 치유하는 글을 쓴다. 이는 그녀를 작가라는 호칭까지 달아주게 한다. 그리고 고향에 돌아온 학수를 이해하고 그를 변화시킨다.

영화 〈변산〉 스틸컷.

이 감독은 영화 개봉에 앞서 "지금껏 눌려있던 것들을 모두 깨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세상을 이겨내는 청춘들의 진솔하고 유쾌한 모습에 공감하길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던 점이 있다. 고향은 어찌 그리 가난한 것일까다. 고향은 지긋지긋하고 늘 떠나고 싶은 곳이지만, 돌아와 보니 포근하더라는 일방적인 이미지는 고향을 떠난 이가 아니라 고향에 남아있는 이들을 불편케 한다.

영화에서도 고향 사람들은 하나같이 일반적이지 않다. 동네 경찰이 범인을 잡는 모습은 아주 어수룩하고 일간지 기자는 '기자질'을 일삼는다. 학수의 동창으로 등장하는 건달도 촌동네를 아주 단순하게 보여준다.

고향이 아팠고 외로웠던 학수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장치라고만 여기지 못하는 것은, 혹 고향만 떠올리면 구질구질한 자신의 모습이 저절로 투영되는 콤플렉스에서 올지도 모르겠다.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네.'

학수가 쓴 이 시를 읽고 노을 마니아가 됐다는 선미 말을 곱씹으며, 내 고향의 하늘을 산을 바다를, 그리고 그대를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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