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레지던시프로그램 공간 들여다보니
창원 에스빠스 리좀 : 경남항운노동조합 터 내
1985년 완공된 5층 건물서 국내외 작가 7명 작업
"정돈되지 않아 되레 좋아"
남해 돌창고 프로젝트 : 20대 작가 5명 입주
내달 11일 결과물 전시
"때로 불편한 점 있지만 생활·작업 환경 만족"

메운 바다가 보이는 관제실, 달과 별만 보이는 마을회관. 작가들이 레지던시(예술가가 일정 기간 거주하며 창작 활동을 하는 프로그램)를 선택하는 요인 중 하나는 새로운 창작공간이다. 작업실을 벗어나 익숙지 않은 곳에서 느끼는 낯섦과 익숙해짐은 창작의 동력이 된다.

◇관제실 창으로 보는 마산

지난 13일 옛 마산항 관제실이 개방됐다. 창원 에스빠스 리좀이 국제 레지던시프로그램을 펼치는 공간이라며 문을 열었다. 이날 국제 레지던시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국내외 작가 7명(마르시알 베르디에(프랑스), 비르지니 호케티(프랑스), 리콜렌느(남아프리카공화국), 사라부트 추터윙비티(태국), 심은영, 최정민, 김요섭)이 작업실과 작품을 공개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항운노동조합 부지에 있는 옛 마산항 관제실은 5층짜리 건물로 1985년에 완공했다. 배의 움직임을 잘 볼 수 있도록 설계한 건물은 네모반듯하지 않다. 육각형 모양으로 출입구를 제외한 다섯 면에 창이 나 있다. 옛 마산항 관제실은 오래전 마산항 해상교통관제센터가 문을 열자 기능을 잃었다.

옛 마산항 관제실 전경. /이미지 기자

에스빠스 리좀은 이곳에 문화를 더하고 싶어했다. 독특한 건물 모양과 마산 앞바다와 도심을 볼 수 있는 위치는 여러모로 개성이 강했다. 리좀은 마산지방해양수산청에 제안했고 지난달 19일 '해양문화저변 확대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협약을 했다.

에스빠스 리좀은 옛 마산항 관제실을 국제 레지던시프로그램의 공간, 즉 레지던스로 쓰고 있다. 이달 초부터 국내외 작가 7명이 층별로 작업실을 꾸리고 사진, 설치미술,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온 마르시알 베르디에(Martial Verdier) 작가는 관제실에서 바라본 풍경을 사진으로 찍었다. 바다 가운데 들어선 마산해양신도시는 그에게 생소하게 다가왔다.

또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비르지니 호케티(Virginie Rochetti) 작가는 사방에서 들어오는 일광을 활용해 그림자가 돋보이는 설치 작품을 내놓았다.

하지만 옛 마산항 관제실은 쾌적한 작업실이 아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터라 건물 천장의 골격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여기저기 전선이 보인다. 작가들은 엘리베이터가 없어 좁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한다. 이에 대해 국내 작가로 참여하는 심은영 작가는 "정돈되지 않은 모습이 오히려 좋다. 거칠고 투박한 매력이 있다. 우리에겐 이마저도 영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앞으로 작가들은 옛 마산항 관제실에서 경남항운노동조합 노동자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며 여러 장르를 결합한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에스빠스 리좀은 오는 21일 오후 3시 카페 리좀에서 국제 레지던시프로그램 사업설명회를 열고 지역민에게 널리 알릴 계획이다. 문의 070-8802-6438.

관제실 내 작업실에서 바다를 보고 있는 프랑스 작가 마르시알 베르디에. /이미지 기자

◇"느려도 참 괜찮지요?"

'에어컨이 없어서 시원한 바람이 부는 밤과 새벽에 그림을 그립니다. 밤이 찾아오면 온 마을에 불이 꺼지고 마을회관이 밝아집니다.'

지난 14·15일 남해 돌창고프로젝트가 '요사이 오픈 스튜디오'를 진행했다.

요사이는 돌창고프로젝트가 벌이는 레지던시프로그램으로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2018년 레지던스 프로그램지원사업' 중 하나다.

20대 젊은 작가 5명(김서진, 김정현, 원정인, 윤혜진, 이수민)은 매일 남해군 삼동면 시문마을회관에 들어선다. 마을 어르신들은 흔쾌히 회관을 내주었다. 마을회관은 돌창고프로젝트가 운영하는 시문 돌창고 갤러리·카페 바로 앞에 있다.

관제실에 내걸린 작품을 보는 경남항운노동조합 노동자들. /이미지 기자

지난 주말 작업실을 공개한 작가들은 여름날 더위 탓에 땀을 흘리며 관람객을 맞았다. 선풍기가 온종일 돌지만 후끈 달아오른 열기를 쉽게 식히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은 밤에 붓을 들고 새벽을 맞는다. 이러한 제약은 불편함보다 잊고 지냈던 쉼, 여유를 찾게 했다.

일상의 작은 비극을 모아 드로잉을 하고 글을 쓰는 김정현 작가는 "서울 생활이 힘들다. 속도가 빠르고 언제나 소비를 해야 하는 곳이다. 읍내 한 번 나가려면 버스 시간을 맞추느라 반나절이 가버리고 물감 하나 사려고 해도 며칠이 걸리지만 아주 좋다"고 말했다.

남해 시문마을회관 내 작가들 작업실 모습. /이미지 기자

그녀는 남해에서 한 달 정도 생활하며 작업물이 조금씩 바뀌었다고 했다.

원정인 작가도 "타인을 의식하느라 집중력을 잃는 도시에서 벗어나 좋다. 마을회관에서 작가들과 동등하게 작업하며 공간을 소중하게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마을 주민과 융화되고 싶다. 시문마을에 사는 고양이들은 다 안다는 작가들은 요사이 오픈 스튜디오 초대장을 만들어 어르신들에게 나눠주고, 그림을 잘 모른다는 할아버지에게 자신이 말하는 바를 천천히 알리고 있다.

남해 시문마을회관 전경. /이미지 기자

'생활은 불편하지만 그림 작업을 할 수 있기에 불행하지 않습니다. 작업을 통해 성장하여 좋은 삶(good life)을 살고 싶습니다'라고 적힌 요사이 오픈 스튜디오 안내 글대로 친환경적이며 공동체적인 작업을 완성해내고 싶은 작가 5명. 남해의 바람과 햇볕 냄새가 그득한 작품이 기다려진다.

돌창고프로젝트는 오는 8월 11일 대정 돌창고에서 레지던시프로그램 결과물을 내걸 예정이다. 또 오는 10월 중순 작업실을 한 번 더 개방할 계획이다. 문의 010-3609-3501.

시문마을회관 내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원정인 작가. /이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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