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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열전]진주 문산읍 장복연 씨

'선주' 아버지 바다가 삼켜, 눈칫밥으로 글·숫자 깨쳐
어머니·오빠·언니도 없이 남의 집살이…죽도록 일만
17살 부산 수건공장 일한 뒤 진주 문산서 농사만 40년째
자두·대봉 1만평 홀로 척척, 가느다란 몸이지만 늘 열성
마을부녀회·풍물패 활동도

시민기자 권영란 webmaster@idomin.com 2018년 07월 16일 월요일

"나는 세상에 살면서 내가 틀리고 모르는 거는 내 죄가 아니라 생각했제. 그러니까 해야 할 꺼는 내 부끄러움은 다 놔두고 하몬 되는 거라 여겼제."

진주시 문산읍 정동마을 장복연(75) 할매. 지금도 매일 밤 직접 운전해 농산물을 싣고 진주~마산을 오간다.

◇읽기·쓰기를 혼자서 '저절로' 터득하다

장복연 할매는 호적상으로는 1946년생이지만 실제 태어난 것은 1944년으로 추정한다. 친정을 물으니, "오데라캐야 하노? 친정을…"라고 말을 잠시 끊는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무역업을 해서 제법 돈을 벌었고 장 할매가 3살 무렵 마산 추산동으로 들어와 선주가 됐다.

작지만 배가 3척이나 되었고 선원들도 제법 많았다. 하지만 몇 해 지나 태풍이 왔고 바다에 나갔던 3척의 배는 침몰했고 아버지와 선원들은 모두 돌아오지 못했다. 어른들은 바다가 삼켰다며 예닐곱 살 되는 어린 할매를 바다로 데려가 혼굿을 했다. 어른들은 어린아이가 물속에 가라앉은 혼을 건져올 수 있다고 믿었다.

"아버지가 맨날 바다에 나가니 엄마는 그 일이 생기기 전에 집을 나갔고 오빠와 언니도 어디로 갔는지 나중에 내만 남았더라고. 큰어매가 여수가 집이야. 내를 자기 집으로 데꼬갔는데, 큰어매도 금방 돌아가삐고. 그 뒤부턴 혼자서 남의 집살이 한 거제. 양딸로 들어갔는데 양딸이라캐도 딸이 아니라 일만 죽도록 시키드만. 학교는 구갱도 몬혔제. 혼자 글자 공부 좀 할라쿠몬 그 집 오빠가 공부 못하고로 우찌나 때리던지."

복연 할매는 정식으로 학교를 다닌 적은 없다. 하지만 곧잘 읽고 곧잘 쓴다.

"운제부터 읽고 쓰게 됐는지는 모르것는디. 누~한테 배운 것도 아이고 고마 저절로 알았다. 돈을 가지고 세면서 숫자도 저절로 알게 됐삤고."

세상에. 어린 시절부터 부모 보살핌 없이 남의 집살이 하며, 눈칫밥 먹으며,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익힌 읽기와 쓰기였다.

복연 할매는 1960년대 초반 무렵 부산으로 갔다. 당시 유명한 송월타월 공장에 들어갔다. 열일곱 살이었다.

"거서 난중에 진주 오기까지 쭈욱 수건 맹그는 일을 했어. 수건도 베 짜듯이 그리 짜몬 돼. 거서 일하몬서 결혼도 했고 딸 둘도 낳고…. 그라다가 애기 아빠 죽고 나서 요기 할배한테 왔어. 후처로 온기제. 이야기 할라몬 너무 길어. 그거는 고만해."

◇혼자 연습해 운전 면허증 따고 트랙터 몰고

진주 문산읍으로 온 지는 이제 40년이 훌쩍 넘었다.

"그때는 나락농사를 마이 했제. 우리 꺼가 얼매 안되니 넘의 논 대신 농사해주고 밭농사가 많았제. 식구 먹고 살 만큼은 됐을까. 그 당시 식구가 오죽 많았을까."

부산에서 살던 것과 달리 온종일 논밭에서 일해야 했다. 무엇보다 여름 한낮에 밭을 맬 때면 햇볕을 견딜 수가 없었다.

"큰엉가 웃어보이소"라고 말하자 웃음이 터진 장복연 할매.

"도시서 지붕 밑에만 있다가 바람하고 햇볕하고 못 견디겠는 거야. 처음 몇 년은 고마 쓰러지겠더라고. 그니까 할배가 니는 온상 안에 상추다 그러더라. 그래도 한번은 할배가 칡넝쿨, 싸리나무를 꺾어 가꼬 와서는 내 등을 개라주면서 싸매 주는 기야. 햇볕을 바로 받지 마라고. 쪼매라도 시원하라고. 그라모 또 바보같이 쓰러질 때까지 일하는 거야."

지금도 복연 할매는 자두 3000평, 대봉 7000평 농사를 짓고 있다. 오래 전에 할배가 오토바이 사고를 겪고 거동이 불편해져 이 많은 농사를 거의 혼자 하다시피 하고 있다.

"인자는 온 밭에 풀과 나무가 같이 큰다. 그러니 내가 나무한테 맨날 미안하다고 말한다 아이가. 내가 힘이 없어 너그를 못 잡는다, 근데 따러는 왔다, 너그 따가지고 돈 하끼라고 너그 따러 왔다 그리 말한다. 그라모는 나무들이 괜찮아요. 힘이 들어도 와줘서 고마워요 이란다. 혼자 일하러 올라가몬 내가 나무들한테 얘기하고 그런다."

복연 할매는 운전경력이 30년이다. 트랙터 운전도 20년 정도 된다. 운전학원을 다닌 적도 누구에게 배운 적도 없다. 이게 가능한가 싶지만, 이 모든 걸 다 혼자서 익히고 해냈다.

"운전 배운 적 없어. 한 번 만에 땄제. 할배는 사고 나서 아프제. 농산물을 우찌 할 수도 없고 용달 불러서 하니까 제때 갖고 가지를 못해. 운전을 억수로 겁을 냈는데 에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했다. 운전하게 되니까 그 뒤에는 중고트랙터 사가꼬 트랙터 운전도 했제. 트랙터 내가 모니까 더 편터라. 넘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해도 되고. 과수원 방제기도 내가 했삤제."

젊은 시절부터 여성농업인 활동도 열심히 했다. 농협주부대학도 다니고, 새마을교육도 받으러 다녔다. 정동마을 부녀회장을 10년 넘게 하면서 진주시나 경남도 교육도 받으러 다녔다. 진주시 부녀회장 하라는 추천을 받기도 했다.

문산농협에서 풍물패로 활동하던 40대 초반(첫줄 왼쪽 북을 메고 모자 쓴 사람).

"농사일이 먼저라 거절했제. 내가 학교도 짧고. 넘들은 내가 고등학교는 나온 줄 알았나벼. 내가 부녀회장을 40살 안돼서 해가꼬 10년은 넘게 했는데 난중에 넘겨줄 때 내한테 동네 사람들이 금가락지에다 보석을 박아서 주는 기라."

바쁜 농사일 하면서도 문산농협에서 가르쳐 주는 꽹과리, 장구, 북 등을 배워 풍물패 활동도 했다.

"어찌나 재미나던지. 오데오데 머 한다쿠몬 참 마이도 다녔네. 인자는 쳐본 지가 오래됐는데 그래도 맨날 정월대보름 되면 풍물 한다. 내는 장구 치제."

복연 할매는 지금도 '진주텃밭' 조합원으로 젊은 여성농업인들과도 종종 만난다.

◇매일 잠자는 시간은 4~5시간뿐

자두가 익는 요즘, 복연 할매는 새벽부터 자두를 따고, 그걸 다시 상품과 하품으로 분류해서 포장상자에 담고, 상품은 매일 저녁 8~10시 사이 마산 내서읍 중앙청과로 가져간다.

"요새는 비가 우찌 그리 오던지. 아직도 태풍 불고 그러면 아버지 생각이 자꾸 나는 기라. 농산물은 가져가 팔아야하고. 비 때문에 앞은 안 보이고. 눈물 때문에도 안 보이고. 그라몬 운전대를 꽉 쥐는 거야."

경매에 넘기고 어둔 밤길을 달려 겨우 집에 닿으면 자정 무렵이다. 하루 잠자는 시간은 평생 4~5시간이다. 어떻게 매일 이런 날들을 지낼까. 몸피가 저리 가늘고 작은 할매가 이렇게 일해도 될까 싶다.

대밭 죽순을 꺾고 있는 40대 시절이다.

그런데도 복연 할매는 일을 할 수 있는 몸이 재산이라며 감사해야 된다고 엷은 미소를 흘린다.

"일하는 기 사는 기라. 힘들다 탓하지 마라. 숨 쉬는 거도 햇빛도 공짜로 먹는데…. 비가 오고 태풍이 오는 것도 다 뜻이 있는 기다. 바다를 뒤집어야 될끼라서 태풍도 오는 기다. 내는 농사일 하면서 날씨 투정을 한 적 없다. 인간이 하늘에 맞춰 살아야지 일기를 탓하고 그라지 마라. 자연이 하는 일을 사람이 어러쿵저러쿵 하지 마라."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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