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동자, 왜 분류작업 개선 요구하나
사측 "자동기계 90% 도입"-노조 "업무 외 노동 여전"

30대 택배노동자 김진수(가명) 씨는 오전 7시 30분부터 택배 물품 하역이 이뤄지는 창원시 팔룡동 공동물류센터 내 CJ대한통운 의창터미널에서 일을 시작한다. 김 씨뿐만 아니라 10여 개 대리점에서 일하는 100여 명도 마찬가지다.

터미널에 차량 10대가 시간대별로 들어오면 하역 작업이 진행된다. 1대당 2000개 정도여서 하루 2만 개 택배 물량이 이곳에 도착한다. 터미널에 도착한 물품은 하차 도급 업체를 통해 1차 작업이 이뤄진다. 큰 상자, 비닐파우치, 작은 상자 등의 순서로 물품 도착을 확인하는 하차 스캔이 시작된다.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줄지어 서 있는 택배 노동자들이 자신에게 오는 물품을 찾아내야 한다. 자칫 자신의 물품을 놓치면, 지나간 물품 속에서 다시 찾아내야 한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예민했다. 김 씨는 "화장실 가는 시간, 밥 먹는 시간도 10분 정도다. 그것도 잠깐 옆에 계신 분에게 부탁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창원성산터미널에서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하는 모습. 이곳에는 자동분류기가 도입돼 있다. /우귀화 기자

줄지어 늘어선 택배노동자들은 자신만의 분류법으로 정해진 배달 구역 내에서 물품을 꺼낼 수 있게 물품을 차량에 싣는다. 오전 7시 반부터 7시간가량을 꼬박 분류 작업을 한다.

김 씨는 "분류작업이 배송보다 더 힘들다. 여기서 힘을 다 쓴다. 또, 배송 스타트 시간이 빠를수록 빨리 끝나지 않겠나. 물량이 많을 때는 밤늦게까지 일해야 해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오후 1시 이후 시작하면 배송은 저녁까지 이어진다.

창원공동물류센터 앞에는 '회사는 분류작업을! 택배기사는 배송업무를!', 'CJ대한통운의 14시간 강제노동 가정파탄, 건강권 파괴의 주범!'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창원성산, 김해, 울산, 경주지역에서 CJ대한통운 노사가 마찰을 빚는 이유가 바로 이 같은 분류작업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우리는 대리점과 집배송 계약을 맺었다. 물건을 배송하는 것이 업무인데, 분류 작업은 우리 업무가 아니다"라고 했다. 7시간이나 걸리는 업무를 하는데 이에 대한 보상이 없기에 사측이 분류 작업을 맡거나, 기사들에게 보상을 해달라는 요구다.

하지만, 원청인 CJ대한통운과 대리점은 '분류 작업은 배송을 위한 기본 업무이기에 대신하거나 보상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말부터 대리점과 CJ대한통운은 분류작업 개선을 요구하는 창원성산, 김해, 울산, 경주지역 택배연대노동조합 조합원 물량을 대체 배송하고 있다. 택배 노조원들이 배송을 하고 싶어도 물량을 받을 수 없게 된 이유다.

택배는 CJ대한통운과 대리점이 계약, 대리점은 택배 기사들과 계약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대리점과 계약한 택배 노조 조합원 물량을 CJ대한통운이 직영 기사 등을 투입해 작업을 하고 있다. 노조원들이 물건을 찾으러 다니면서 대체 투입 인력과 마찰도 생기고 있다.

전국택배대리점연합과 CJ대한통운은 분류 작업 개선을 위한 기기 도입 등을 진행하고 있다며, 기존처럼 노조원이 분류작업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리점연합 측은 "분류작업 시간이 늘어난 것은 인정한다. 2013년 CJ와 대한통운 합병 당시 전국 1일 평균 물량이 180만 개였지만, 지금은 550만 개로 늘었다. 작년 말부터 CJ대한통운이 1700억 원을 들어 자동분류기(휠 소터)를 도입했다. 168개 터미널 중 90%는 완료했다"고 했다.

황성욱 택배연대 창원성산지회장은 "CJ대한통운이 조합원에게 물량을 주지 않고, 타 택배 경쟁사에까지 물량을 넘겨주고 있다. 창원성산터미널에도 자동분류기를 도입했다. 대리점별로 물건을 분류해주지만, 택배 기사가 자신의 물건을 분류하는 수고는 똑같다"고 말했다.

대리점은 지난 11일 택배노조원에게 '위수탁 계약 성실 이행 요청의 건' 서류를 발송했다. 노조원이 배송 방해 등을 한다며 손해배상 청구, 계약 해지 조치를 하겠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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