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한산업 베트남 진출기
선박용 케이블업체 인수 행정절차·금융 등 어려움 극복
올 하반기 생산·판매 '박차'… "제대로 된 성장 모멘텀"

베트남 4대 도시이자 60㎞가 넘는 긴 해변을 낀 관광도시 '다낭'. 이 아름다운 도시에 있는 호아칸(Hoa Khanh) 산업단지에는 한 경남지역 중소기업의 패기에 찬 국외 진출기가 담겨 있다. 이 진출기는 지금도 쓰는 중이다. 지난달 말 창원상공회의소 회원사 직원들은 그곳을 방문해 이 겁없는 중소기업을 격려했다. 그 주인공은 정영식 대표이사가 이끄는 범한산업㈜이다.

범한산업이 인수한 회사는 베트남 국영 조선그룹이던 비나신그룹 자회사다. 이 회사는 비나신그룹 산하 수십 개 조선소에 전선을 공급하고자 2006년 회사 설립을 계획해 2010년 공장 건립과 설비 구축을 모두 마쳤다. 하지만 2007년 말 이후 세계 금융위기로 조선·해운산업이 급속히 악화하면서 모기업인 비나신그룹은 2011년 해체되는 운명을 맞았다. 결국, 이 자회사는 당시 2000만 달러 상당을 투자해 최신 설비를 깔아놓고도 가동 한 번 못해보고 은행으로 넘어가는 비운을 겪었다. 비나신그룹의 모태기업인 비나신조선소는 현대미포조선에 인수됐다.

범한산업이 인수해 내년 초 가동 예정인 베트남 범한케이블&시스템㈜ 공장 내부 모습. /이시우 기자

범한산업은 지난해 6월 은행 부실자산 공매 형태로 이 자회사를 인수했다. 지금은 이름을 '범한케이블&시스템㈜(Bumhan Cable & System Co.,Ltd.)'으로 바꾸고 올해 하반기 시험 가동, 내년 베트남 내수 판매를 할 계획이다.

정영식 대표이사는 11일 "중소기업의 국외 진출은 보통 두 가지 형태다. 하나는 봉제공장 같은 단순 가공업체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고자 진출한다. 이들 업종은 공장 터 이외 설비투자가 적으니 진출이 어렵지 않다"며 "또 하나는 원청업체인 대기업이 진출하면 부품·기자재를 조달하는 중소 협력사가 동반 진출한다. 도내 제조업 중소기업 대부분 이 형태로 진출했다. 법적·절차적인 부분, 심지어 공장 터 매입까지 원청사가 직·간접적으로 지원해주고, 인력만 채용해 관리하면 되니 부담이 덜하다. 하지만 우리는 자력 진출을 하다 보니 법적·절차적인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말했다.

회사 인수 비용은 저렴할지 몰라도 법률적인 어려움, 행정절차를 밟을 때마다 드는 보이지 않는 비용, 한국과 달리 외국인투자기업이 베트남 은행 금융을 기대할 수 없으니 투자금을 죄다 한국 모기업이 대야 하는 어려움이 컸다고 했다.

정영식 범한산업 대표이사.

창원상의 회원사 직원 20여 명은 '회원사 우수사원 국외 연수' 첫 방문지로 지난달 28일 이 베트남 공장을 방문했다. 현장에서 만난 정영목 범한케이블&시스템 사장도 금융상 어려움을 강조했다. 당시 정 사장은 "베트남은 한국처럼 정책금융이 없는 데다가 은행도 외국인투자기업에는 더 까다롭다. 베트남 진출 시 현지 금융 조달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베트남 시중은행 금리는 대출 시 10%, 예금 시 6.5∼7% 정도다. 문제는 돈을 빌려도 다른 결제를 하고자 세금계산서를 집어넣을 때마다 은행에서 바로 원금과 이자를 빼는 등 상환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산업용 전기요금도 다른 물가보다 저렴하지 않아서 진출 시 반드시 고려할 점이라고 했다.

정 사장은 이런 어려움에도 베트남이 지닌 투자 매력이 많다고 했다. 동남아 국가 중 교육열이 높고, 상대적으로 인력 질이 높은 점을 들었다.

범한케이블&시스템에는 한국인 3명, 관리직·엔지니어 직종 베트남 현지인 30명이 공장 가동을 준비 중이다. 올해 안에 한국 KC·KS 인증 같은 베트남 현지 산업표준 인증을 받아 산업용 전선 현지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주력 시장인 선박용 전선 판매를 위해 올 하반기부터 각국 선급 인증을 차례대로 받을 예정이다.

정영식 대표는 "일반 전선은 선박용 컴프레서와 비교하면 부가가치(영업이익)가 4∼5배 낮다. 하지만 선박용 전선은 전선 중 상대적으로 높다. 또한 설비가 최신식이라서 웬만한 한국 내 전선공장보다 생산성이 더 높다"며 "관건은 각국 선급 인증이다. 다행히 우리 회사는 선박용 컴프레서 선급 인증 경험이 많아 그 시간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2∼3년 뒤 본격적인 선박용 전선 판매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대표는 일반 산업용과 선박용 전선 생산을 절반씩 하고, 연간 최대 생산 규모는 1000억 원 정도로 예상했다.

끝으로 정 대표는 "기존 산업용 컴프레서에다가 방산·수송기계용 수소연료전지를 개발·생산하고 있다. 올 1월에는 현대제철로부터 건물용 수소연료전지 사업권과 관련 기술을 양수했다. 현재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수소연료전지 연구소는 내년 완공할 서울 마곡연구개발센터로 옮길 예정이다. 연료전지 생산은 당연히 창원공장에서 한다"며 "베트남 진출은 조선산업 회복기를 고려해 기존 선박용 컴프레서에다 전선을 추가하려는 것이다. 여기에 미래 먹을거리인 방산·수송기계용, 건물용 수소연료전지 사업이 활성화하면 3∼4년 뒤 제대로 된 성장 모멘텀을 만들어 중견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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