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훌쩍 떠날만한 여정,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부산∼개성선 도로 일부분, 공원·수목원 등도 갖춰져
그리움 맴도는 낭만 명소, 뭔가 홀린 듯 발길 머물러

저에게 고성 가는 길은 '바다로 가는 길'입니다. 아, 여기서 고성은 구체적으로 경남 고성군 동해면을 말합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을 지나 동해면으로 가려면 바다와 나란한 도로를 달려야 하거든요. 퇴근 무렵 갑자기 이 도로를 달리고 싶더군요. 그래서 갑자기 핸들을 돌렸습니다. 창원에서 국도 2호선을 따라 통영방향으로 가다가 진전터널을 지나 곧 도로를 빠져 나오면 임목교차로입니다. 다시 신기마을 앞 교차로에서 창포마을 가는 길로 들어섭니다. 이제부터는 쭉 직진만 하면 됩니다.

◇바다와 눈높이를 맞추는 길

이곳부터 마음이 설레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지거든요. 창포만 갯벌이 있는 곳이라 여느 바닷가와는 다른 느낌입니다. 도로 오른쪽으로는 너른 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갯벌이던 곳을 개간했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양쪽으로 탁 트여 시야에 걸리는 게 없는 도로입니다.

도로는 곧 바다로 바짝 다가섭니다. 바다와 이렇게 가깝고, 또 바다와 이렇게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도로가 또 어디 있을까요. 아마 동해안을 달리는 국도 7호선이 이렇지 싶습니다. 이런 풍경으로 도로는 진전면 창포마을 앞을 지나고, 동진교를 건너 고성군 동해면으로 이어집니다. 동해면 해안도로 역시 훌륭한 드라이브 코스입니다. 들쭉날쭉 해안선을 따라, 역시 바다와 바짝 붙어서 달리는 도로입니다. 멀미가 심하신 분은 조심하셔야겠습니다. 하지만, 급한 일이 없다면 굳이 속도를 낼 필요가 없지요. 

고성군 동해면 해안도로에서 본 당항만 풍경. /이서후 기자

이 해안도로의 묘미는 속도보다는 풍경이니까요. 진전면 창포마을에서 시작해 동진교를 지나 고성군 동해면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2006년 국토건설부(현 국토교통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포함됐습니다. 이 도로가 국도 77호선입니다. 77호선은 부산시 중구에서 시작하는데요. 남해안, 서해안 바다를 따라 인천에 이르러 잠시 서울로 들어간 다음, 경기도 파주까지 자유로를 따라갑니다. 물론 지금은 파주까지만 연결돼 있죠. 하지만, 파주에서 개성까지도 바로 연결할 수 있다는군요. 그래서 이 도로는 부산∼개성선이라고도 불립니다. 저도 기사 쓰려고 자료 찾다가 새로 알게 된 사실입니다. 뭔가 굉장한 도로였네요.

◇동진교를 지나며 펼쳐지는 풍경

동진교는 고성 동해면과 창원 진전면을 잇는 다리입니다. 길이가 300m 조금 더 됩니다. 동진교는 평평하지 않고 가운데가 약간 볼록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진전면에서 동해면으로 넘어갈 때 다리 중앙에 이를 때까지 건너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중앙을 넘어서면 헉, 하고 멋진 바다 풍경이 나타납니다. 제가 특히 좋아하는 지점입니다. 맑은 날이면 그 푸른 바다 빛에 넋을 빼앗길 것 같거든요. 햇빛의 각도와 시선의 높이가 교묘하게 어우러져 만든 풍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통은 동진교 지나 내리막길 끝에서 좌회전한 다음 다리 아래를 지나는 길을 택하는데, 풍경이 멋진 날이면 그대로 내달립니다. 그렇게 2~3분 정도 달리면 해맞이공원이 나옵니다. 주차장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공룡 조각도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바닷가 절벽 위에 있어 바다를 바라보기 좋습니다. 때로 절벽 아래로 내려가 보기도 합니다. 높은 곳에서 보는 것도 좋지만 바닷가 바위 위에서 잔잔하고 색이 깊은 바다를 보는 맛도 색다르거든요.

고성군 동해면 해안도로에서 본 당항만과 운동하는 주민. /이서후 기자

다시 동진교로 돌아가서, 내리막길 끝에서 좌회전, 다리 아래를 지나면 77번 국도와는 또 다른 방향으로 해안도로가 이어집니다. 고성군 동해면과 회화면 사이 육지 쪽으로 길게 뻗어 들어간 당항만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이 길을 가다 보면 그 유명한 소담수목원이 나오지요. 당항만은 입구가 좁습니다. 아까 동진교가 지나온 그곳인데요. 좁은 입구를 지나면 길고 너른 바다가 이어지죠. 저는 보통 소담수목원까지만 가고 돌아옵니다.

◇육지에 갇힌, 언제나 그리운

때로는 동해면 면사무소 소재지가 있는 해안까지 내처 달리기도 하죠. 모르고 다닐 적에는 이 바다가 육지에 갇혀 막혀 있는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당항포해전으로 유명한 그 바다인지도 몰랐죠. 바다 건너편이 당항포라는 것도 몰랐고요. 그저 이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게 좋았습니다. 어딘가 애틋해지는 풍경이거든요.

묘하게 잔잔한 바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산 위로 피어오른 구름, 미지의 세계로 이어질 것 같은 저 바다 끝. 지금 생각해보니 그리움이었네요. 무언가 그리운 마음이 들 때마다 이곳을 찾았던 거 같습니다. 그리움이 그리움으로 남도록 바다 저편은 항상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고개를 돌리니 조용히 노을이 지고 있습니다. 그 옛날 무엇을 그렇게 그리워했던 것일까요, 저는.

해안도로에서 본 당항만 풍경. /이서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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