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폭자와 후손 제대로 보호 못 받는 상황
은빛순례단처럼 기억하고 행동해야 가능

'한반도 평화 만들기 은빛순례단'은 지역 사람들과 함께 걸으면서 순례길을 만들어 간다. 이 땅에 생명 평화가 활짝 피어나기를 바라면서 걸음마다 정성을 다한다.

지난 6월 28일에 은빛순례단이 합천을 지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쁜 농사일을 뒤로하고 합천 지역 농부들이 모였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지만 모두 순례자가 되어 조용하면서도 힘차게 길을 걸었다. 도착지는 '합천 원폭피해자 복지회관'이었다. 그곳은 평균 86살이 넘는 피폭노인 100여 명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진 원폭피해자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터졌다. 히로시마에서 8만 명, 나가사키에서 20만 명, 28만 명이 넘는 희생이 따랐다. 그 가운데 한국인 사망자는 나가사키에 3만 5000여 명, 히로시마에 1만 5000여 명으로 전체 희생자 2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조사는 일본이 한 것인데, 실제 피해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누가 무슨 권리로 이 많은 생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피폭자들은 대를 이은 아픔을 겪으면서 사회의 무관심까지 견디며 살아야 했다.

2017년 8월 6일, 원폭이 투하된 지 72년 만에 피해자 300여 명의 진술을 토대로 '원폭자료관'이 합천에 지어졌다. 아직 수집되어야 할 자료가 많고 밝혀져야 할 역사가 많은데 피폭자들은 고령과 병으로 한 분, 한 분 돌아가시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원폭 피해 1세대에 이어 자녀인 2~3세대에까지 원폭피해가 대물림되면서 피해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피폭자들과 후손들이 사회와 국가로부터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더 부끄러운 것은 합천 사람이 된 지 5년차가 되어서야 이곳에 처음 와 본 나 자신이었다. 평화 순례가 없었다면 아직 미뤄져 있었을 일이라 생각하니 미안한 통증이 느껴진다.

순례단은 위령각 앞에서 잠시 묵념을 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춤 공연에 함께했다. 위령각에는 1044명의 위패가 있는데 이곳도 일본 종교단체가 모은 기부금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73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지 않았고 또한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기사를 보니 일본에서 1975년 피폭자들에게 의료비를 주는 '피폭자 보호법'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대상을 일본거주자로 제한했다. 한국인 유족 197명은 피폭 뒤에 한국으로 돌아온 32명에게도 배상할 것을 일본정부에 요구했지만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가 2007년이 되어서야 국외 거주자를 제외한 것은 위법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고 한다.

하지만, 작년 11월부터 갑자기 '제척기간(제소 시점에서 20년이 지난 경우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규정'을 앞세워 지원을 멈추었다. 우리 권리를 찾지 못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평화는 무엇일까?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어디로 닿아야 할까? 잊지 않는 것 그리고 끝까지 기억해 내는 일로부터 평화가 시작되어 여전히 기억의 자락에 머물러 있는 고통 받는 이들에게 닿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내가 갈 수 있는, 우리가 가야 할 평화의 길이리라.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내가 잊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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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평화를 기억하려고 할 때, 역사는 더는 왜곡되지 않을 것이다. 은빛순례단과 함께한 걸음처럼 한 걸음씩 평화를 이루어 갈 수 있기를, 그 평화가 여전히 아픔과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의 삶 가운데 닿기를!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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