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약속한 이웃 왕자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고 붉은 모란꽃으로 재탄생
소식 뒤늦게 접한 공주 이듬해 왕자의 나무 옆 모란꽃 닮은 함박꽃으로

예쁜 공주가 이웃 나라의 늠름한 왕자와 사랑을 했어요. 이웃 나라라고 하지만 이웃 마을처럼 지내는 가까운 나라였어요.

공주가 왕자와 손을 잡고 호숫가를 거닐며 사랑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왕자님은 꽃 중에 무슨 꽃이 제일 좋아요?"

"그보다 어떤 꽃을 좋아하느냐가 좋을 것 같아요. 향기가 짙은 꽃, 어떤 색깔의 꽃, 어느 계절에 피는 꽃?"

두 사람은 그렇게 아름다운 꽃 이야기를 나누며 자주 호숫가를 산책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왕자가 호숫가 벤치에 앉아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어요.

"공주, 내가 전쟁터로 가야 해요."

"예? 왕자님께서요?"

"공주, 내가 전쟁터에서 승리하여 돌아올 때까지 나를 기다려 줘요."

"왕자님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겠어요."

두 사람은 노을이 잠잠히 물들어가는 호숫가에서 이별의 노래를 부르며 아쉬운 작별을 했어요.

며칠 후, 왕자가 전쟁터에서 용감한 장수로 싸웠어요. 왕자는 자기가 데리고 간 심복 부하와 함께 말을 타고 적진으로 돌진했어요.

"왕자님, 용감하게 싸워 승리의 영광을 안고 공주님에게로 돌아가셔야죠?"

"당연히 그래야지."

왕자는 벌써 몇 번의 전쟁을 치르면서 용감하게 싸워 승리를 거두었어요.

"이번 전쟁에서 이기면 사랑하는 공주 곁으로 간다. 돌격!"

왕자와 그의 부하가 말을 타고 적진으로 진격해 들어가자, 적들은 이제 표적을 왕자에게 맞추고 칼, 화살을 집중시켰어요. 왕자는 그런 것도 모르고 칼을 높이 휘두르며 적진 깊숙이 쳐들어갔어요. 바로 그때였어요.

"으윽."

갑자기 왕자가 말에서 떨어져 숨을 할딱거렸어요. 그의 부하도 동시에 말에서 떨어져 손을 허우적거리며 왕자를 불렀어요.

"왕자님, 어디 계셔요?"

"이쪽이네. 자네는 어떤가?"

"왕자님, 저는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하여 목소리가 나는 곳으로 기어와 손을 마주 잡게 되었어요.

"왕자님 정신 차리세요."

"아무래도 나는 어렵네. 내가 마지막으로 자네에게 부탁하네. 자네가 살아서 공주가 있는 곳으로 가게."

"왕자님, 살아서 공주님에게로 가셔야죠."

"나는 죽어 이곳에서 공주가 좋아하는 빨간 꽃으로 피고 싶네. 내가 묻히는 버드 호숫가 큰 바위 아래에 붉은 꽃송이로 피어 공주를 기다린다고 전해주게."

그 말을 남기고 왕자는 싸늘한 손을 놓고 숨을 거두었어요.

전쟁이 끝났어요.

전쟁에 참가했던 많은 병사가 모두 고국으로 돌아왔어요.

공주는 돌아오는 병사들을 보고, 용감하고 늠름한 모습으로 돌아올 왕자를 기다리며 왕자에게 바칠 예쁜 꽃다발까지 준비하고 기다렸어요. 며칠이 지나도 왕자가 돌아오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그런 공주에게 말을 하지 않았지만 자기네들끼리 모이면 수군거렸어요.

"왕자님은 전쟁에서 죽은 거야."

"저렇게 매일 호숫가를 거닐며 왕자를 기다리는 공주가 불쌍해."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공주가 호숫가를 거닐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상한 노랫소리를 들었어요.

그 노래는 어쩜 자기를 향해 부르는 노래 같았어요.

공주를 그리워하다 붉은 한 송이 꽃으로 핀 이여,

달이 뜨면 그대 오시려나 꽃으로 피었건만

그대 모습은 언제 오시려나?

거리의 악사는 장님의 몸으로, 지팡이를 짚고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를 애절히 부르며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녔어요.

공주가 그런 장님 악사 가까이로 가서 그 슬픈 노래를 듣자, 자신도 몰래 눈물이 줄줄 흘러 장님 악사를 불러 세웠어요.

"여보시오. 그 애절한 노래를 부르는 이유가 무엇이오?"

장님 악사는 공주의 부드러운 말씨에 노래를 뚝 그치고 지팡이를 더듬거리고 가던 길을 멈추며 조용히 입을 열었어요.

"뉘신데 그러오."

공주는 울음 머금은 목소리로 아주 공손하게 말했어요.

"이 나라의 공주입니다. 전쟁에 나간 왕자를 기다리다가 그대의 노래를 듣고 이렇게……"

장님 악사가 공주의 말을 듣더니 지팡이를 내리고, 그는 너무나 지친 몸으로 쓰러지듯 공주 앞에 꿇어 앉아 훌쩍이며 말을 이었어요.

"공주님, 저는 왕자님을 일생 모셔왔지요."

그 말을 하고 장님 악사가 공주 쪽으로 엎어지며 크게 울먹이자, 공주는 그런 장님 악사의 손을 따뜻이 잡고 함께 눈시울을 적셨어요.

"공주님, 왕자님께서는 버드 호숫가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셨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 공주도 장님 악사의 두 손을 잡고, 목이 메 꺼억꺼억 울었어요.

"공주님, 왕자님은 버드 호숫가 언덕 큰 바위 옆에 붉은 꽃송이로 피어 공주님을 기다린다고 하셨어요."

그 말을 남기고 장님 악사는 자기의 할 일을 마쳤다는 듯이 긴 한숨을 내쉬고 지팡이를 짚어가며 어디론가 터벅터벅 걸어갔어요.

공주는 그날로 며칠이 걸려 장님 악사가 말하던 아주 멀고 먼 버드 호숫가를 찾아갔어요. 그 호수는 하얀 물새들이 나는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장님이 말한 호숫가에 닿은 공주는 큰 바위가 있는 언덕을 찾았어요.

공주가 손발이 가시덤불과 나뭇가지에 할퀴어서 작은 상처가 났지만 그것을 꾹 참고 큰 바위 아래에까지 갔어요. 공주는 큰 바위 앞에 서자, 쓰러지듯 그 자리에 퍼지고 앉아 울먹이었어요.

"왕자님, 붉은 꽃송이로 피어 얼마나 나를 기다리셨나요?"

그 꽃은 작은 나뭇가지마다 상기된 붉은 입술 같은 모양으로 피었어요. 공주가 꽃송이에다 입술을 비비자, 그 꽃향기가 공주의 온몸을 안으며 공주의 몸 깊은 곳까지 젖어들었어요. 우리가 말하는 모란꽃이랍니다. 공주의 몸이 꽃향기에 젖어들자, 스르르 눈이 감기고 그곳에 쓰러졌어요.

"꽃의 신이시여, 저를 왕자님 곁에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게 해주소서."

공주는 지친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 꽃나무 아래에 스르르 눈을 감았어요.

꽃의 신은 그런 공주의 애타는 마음을 한 포기 꽃으로 피어나게 해주었어요.

이듬해 왕자의 나무 옆에 모란꽃 닮은 예쁜 꽃이 피었어요. 우리는 그 꽃을 함박꽃이라고 해요. 꽃말을 '수줍음'이라고 해요

모란꽃과 함박꽃은 왜 닮았을까요?

/시민기자 조현술(동화작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