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경남도가 공개한 홍준표 도정 당시 '채무 제로' 정책의 실상은 사실대로라면 홍 전 지사가 재임 중 치적으로 자화자찬한 정책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인수위원회인 '새로운 경남위원회'는 2013년 홍준표 도정이 광역자치단체 최초로 추진하여 2016년 달성했다고 한 채무 제로 정책이 목표를 맞추려고 꼭 편성해야 할 예산을 쓰지 않거나 예산을 엉뚱하게 쓴 끝에 이룬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경남도는 시군 조정교부금, 지방교육세 등을 편성하지 않았고, 양성평등기금 등을 폐지했으며, 지역개발기금 누적 이익금을 다른 곳에 썼다는 것이다. 이렇게 쓰지 않거나, 빚 갚는 데 쓰거나, 전용한 예산은 8800억 원에 이른다. 그런데도 재정건전성이 개선된 것도 아니며 오히려 5000억 원의 부채가 있다는 것이다.

채무 제로 정책은 추진 당시부터 논란이 많았으며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일이다.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은 빚을 갚기 위한 구실로 양성평등기금 등 각종 기금을 없앤 것이다. 또 지난해 경남도 서민복지노인정책과는 의료급여 수급권자인 장기입원 환자 554명을 퇴원시킴으로써 진료비 53억 원 절감한 것을 채무 제로에 기여한 것으로 스스로 평가한 바 있다. 당시 퇴원시킨 환자들이 경남도가 주장한 대로 의료기관 과다 이용자들이었는지는 점검이 필요하다. 채무를 줄이고자 편성되지 않거나 깎인 예산은, 당장 없어도 눈에 띄지 않지만 장기적인 전망이나 도민의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들인, 복지, 각종 기금, 재해 관리 관련 예산이다. 이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그나마 빚도 못 갚고 되레 남겼다면 지금이라도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자치단체는 빚을 지지 않거나 갚는 것도 중요하지만 써야 할 예산을 아끼는 것은 더 큰 문제를 낳는다는 점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홍준표 도정은 도민의 삶을 위해 어떤 예산을 늘리거나 줄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이 재정 축소만 능사로 삼았고, 그나마 실제로 긴축재정 운용도 되지 않았고 더 큰 재정적 어려움만 남겼다. 경남도는 당장 올해 추경에서 쓸 예산이 없다고 한다. 빈 곳간만 물려받았다면 김경수 도정으로서는 합리적인 예산 운용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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