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기일을 며칠 앞두고 산소를 찾았다. 해마다 성묘, 벌초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아 조상님들의 묘를 한곳에 모아 평장을 하고 나니 편리한 점도 있지만, 후손으로서 명당을 두고 다시 옮겨 화장을 했으니 오랫동안 웃어른께 큰 죄를 지은 마음을 가진 적도 있었다.

얼마 전 동향·동갑인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수목장을 보고 어느 누구나 만감과 뉘우침이 오갔을 것이다. 고인은 '남들에게 베풀고 살라'는 모친의 유언을 한평생 실천하였고, 국민이나 사회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면 영속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존경과 배려를 기반으로 기업을 경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것은 화담(和談)선생의 철학이 뚜렷하고 정도(正道)를 걸어온 흔적일 것이다.

예부터 묘역의 크기는 임금이나 위정자, 기업인들의 권력과 금력의 과시였다.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한 개에 2t의 돌을 200만 개 넘게 100m 이상의 높이를 쌓았으며, 일본에서는 천황의 무덤이 남북으로 100m, 동서로 80m나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대통령도 1000㎡가 넘는 묘역이 있는가 하면, 40여만 유골이 묻힌 국립묘지에 국가를 위해 산화한 사병묘역의 3.3㎡(1평)와 비교하면, 똑같이 국가를 위해서 수훈을 한 사람이며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인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화담 선생이 사후에 자연으로 돌아가겠다는 평소의 신념대로 수목장을 한 것은 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장 위주의 장례 문화가 개선되지 않으면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묘지화되어 가겠다고 국가에서는 장례를 법제화하고, 홍보를 많이 한 결과 화장률이 80%를 넘어섰다니, 우리나라의 장례 문화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하찮은 동물들도 종족 보존을 한 후 자기가 묻힐 자리는 마련하지도 않고 후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본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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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살아보아도 백 년인데 '백세시대'라고 해서 '몇백 년을 살 것 같이 헛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철학자 김형석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더 늦기 전에 남은 인생에 자신을 먼저 알고 자기 철학을 가져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새삼스럽게 새록새록 해진다. 선생님은 인생은 단지 걸어다니는 그림이고 잠깐 쉬어 갈 뿐인데, 너무 옹차게 욕심을 부리지 말고, 인간은 자연에서 와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여생을 영겁(永劫)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쌓인 무거운 짐들을 비우는 데 노력하자는 잠언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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