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9명 등 130명 복직투쟁…'희망 고문' 탓에 삶 부서져
해고자 30명 스스로 생 마감

"해고된 지 어느덧 10년이 됐습니다."

그렇다. 벌써 10년이 지났다. 2009년 쌍용자동차 해고자에 대해 2015년 노사가 2017년 상반기까지 전원 복직을 위해 노력한다고 합의했지만, 여전히 해고자 130명은 언제 일터로 돌아갈지 모른 채 복직을 기다려왔다.

쌍용차 해고자 고 김주중 씨가 지난달 27일 경기도 평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쌍용차 해고자 30번째 희생자다. 서울 대한문 광장에는 5년 만에 분향소가 차려졌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절규가 계속되고 있다.

쌍용차 해고는 먼 이야기가 아니다. 창원공장에서 일하던 18명(고인 2명 포함)이 2009년에 해고됐다. 비극의 시간은 질겼다. 2016년 2월에 2명, 2017년 4월에 2명, 올해 4월에 3명 등 지금까지 7명이 복직하는데 그쳤다. 남은 9명이 복직 투쟁을 하고 있다.

쌍용차 창원공장 해고자 이태환 씨가 공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모습. /금속노조 쌍용차 창원지회

해고자 9명은 창원공장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국가폭력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고 사람이 먼저인 나라가 되겠습니까?', 2015년 쌍용차 노사가 전원 복직에 합의한 것을 지키길 촉구하는 피켓을 들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태환(48·창원) 씨는 "10년이다. 강산이 변하는 시점이다. 오랜만에 아직 복직을 하지 못한 해고자를 보다 보면,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얼굴에 인생이 묻어가는 게 느껴진다. (다른 해고자를 보면) 너도 많이 늙었구나 싶다"고 말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창원에서도 4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희망퇴직을 했던 2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해고 이후 복직 투쟁을 벌이던 2명도 암과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동료들은 복직 투쟁을 하며 생계를 잇고자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몸을 돌보지 못한 데다 스트레스도 커서 끝내 쓰러지고 말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이갑호 전 쌍용차 창원지회장은 "쌍용차가 2015년에 합의를 하면서 해고자들이 복직을 하고 있다. 저도 창원공장에서 일했지만, 지난해 평택공장으로 복귀했다. 복직 시한을 못 박지 않으니 희망고문을 하는 상황이다. 복직을 못 한 130명 해고자 중 창원공장 노동자 9명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지난 3일 서울 대한문 앞 분향소에서 상복 차림으로 영정을 들고 조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환 씨는 "작년부터 1년 가까이 1명씩 돌아가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아침 6시부터 6시 50분까지 출근 시간에 시위를 한다. 시위를 마치고 새로 구한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다들 이야기를 해왔지만, 정말 희망고문이다. '조금만 있으면 복귀가 되지 않겠느냐', '이번에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느냐'라고들 했다. 희망고문 탓에 우려했던 희생자도 다시 생겼다"며 침통해했다.

그에게 1인 시위 기간을 묻다가 말문이 막혔다. 그는 "약 1년간 금요일마다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10년간 1인 시위, 출근 투쟁 등을 얼마나 많이 벌였겠느냐"라고 했다.

이 씨는 평택에서 같은 해고자 모임을 하면서 고인이 된 김 씨를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점잖고 좋은 분이었는데…. 같이 일하다 생을 마감한 형도, 동생도 생각이 난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안 일어나기를 희망한다. 저희한테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장기간 해고는 그에게도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쌍용차 창원공장에서 엔진 조립 일을 했던 그는 새로운 직장에서 산업용 펌프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좋은 동료, 사장 덕분에 지금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앞서 해고 이후 경제적인 어려움 탓에 가정불화도 겪었다.

그는 평택 장례식장에는 참석을 못했지만, 곧 서울 대한문 분향소를 찾아 해고자들과 애도의 뜻을 같이할 예정이다. 쌍용차 사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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