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논개의 '충절' 형상화해 1983년 완공된 진주교 설치
강변 맞은편 벼랑들 매력적…울창한 대나무숲 아름다워

서너 해 전 일주일이 멀다하고 진주를 드나들던 때가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봤는데, 일단은 좋은 친구들이 재미난 일들을 많이 벌였던 거 같아요. 진주만 가면 즐거운 일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것 말고도 진주에 가면 아 좋다, 싶은 게 있었습니다. 그게 뭘까 고민하다가 어느 날 앗, 하고 떠오른 것이 남강이었습니다.

속으로 강을 낀 도시는 참 매력적입니다. 한강이나 낙동강처럼 압도적으로 큰 강보다 진주 남강 같은 적당한 게 좋지요. 남강은 진주 도심을 S자로 가르며 흐릅니다. 진주에서 남강은 정화 구역 혹은 중립지대 같은 곳입니다. 왁자한 도심과 도심 사이에 강이 있는 영역에만 일종의 결계가 쳐져 있는 것 같다고 할까요. 도시의 빠른 생활 리듬도 강의 영역에만 들어서면 왠지 느긋해져 버리거든요.

◇뒤벼리

처음에는 남강이 어디서 어디로 흐르는지도 몰랐습니다. 중앙광장에서 강 건너 진주성을 보고 있으면 느낌상 강물이 동에서 서로, 그러니까 진주교에서 천수교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았어요. 나중에 생각하니 바람이 그 방향으로 불어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방향으로 쭉 가면 진양호와 남강댐이 나오는데, 물이 댐을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으니까요. 결정적으로 경남문화예술회관 앞 강변에서 보면 확실히 물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게 잘 보입니다. 아주 깊고도 우직하고, 그러면서도 조용한 물길입니다.

경남문화예술회관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곳에서부터 산책을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남강 둔치 산책로는 경남과기대 앞 진양교에서 진주교를 지나 천수교까지 이어집니다. 물론 길은 더 있지만 사람들이 주로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구간이 그렇다는 겁니다. 지금은 남강댐 바로 아래 청소년모험공원에서 시작해 진주성을 지나 선학산 벼랑을 따라 경남도 서부청사도 지나 집현면 덕오교까지 자전거길이 나 있습니다.

경남문화예술회관 앞 강변에서 건너편을 보면 우뚝하고 반듯한 벼랑이 보입니다. 선학산 자락이죠. 이 벼랑을 '뒤벼리'라고 합니다.

▲ 경남문화예술회관 앞에서 바라본 선학산 뒤벼리.

벼리가 낭떠러지를 말하니 뒤에 있는 낭떠러지란 뜻입니다. 그럼 앞에 있는 낭떠러지가 있나 싶겠는데, 있습니다. '새벼리'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새벼리 아래 도로는 경상대가 있는 가좌동에서 진주시내로 오려면 꼭 지나야 하는 곳이죠. 말 나온 김에 진주에 유명한 벼랑이 총 세 곳입니다. 뒤벼리와 새벼리는 앞에 말씀드렸고, 마지막 세 번째가 봉수대가 있는 망진산 자락 벼랑입니다. 다시 뒤벼리로 돌아가서, 지금은 벼랑이 거의 나무로 덮여 있는데 옛날에는 암석이 제법 드러나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고 다시 보면 제법 운치가 있었겠습니다. 옛 지도에는 '적벽(赤壁)'이라고 적혀 있었다지요.

◇진주교

설렁설렁 걷다 보니 진주교 아래입니다. 제가 진주에서 가장 많이 건넌 다리입니다. 제가 자주 가던 곳이 동성동, 중안동에 있거든요. 저한테는 가장 정겨운 다리입니다. 처음 다닐 때는 다리 이름들도 몰랐습니다. 진주 지리도 낯설어 늘 다니는 길로만 다녔으니 천수교나 진양교 같은 다리는 갈 일도 없었고요.

진주교는 경남에서 가장 먼저 생긴 다리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기엔 모습이 너무 현대적입니다. 알고 보니 지금 다리 전에 철 다리가 있었다는군요. 일제강점기인 1927년에 지어진 것이었답니다. 공사비는 단돈 26만 원! 물론 그 당시 돈으로요.

지금 있는 다리는 1983년에 완공된 거네요. 진주교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다리 바로 아래입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교각이 독특하거든요. 진주교 교각은 단순하게 기둥만 있는 게 아닙니다. 넓은 띠 모양 구조물이 마치 리본처럼 다리 아래를 받치고 퐁당퐁당 강을 건너는 것 같습니다. 다리 아래서 바라보면 이 구조물이 양쪽 대칭을 이루며 거대한 무게감을 줍니다. 이 무게감에 압도당하는 거죠.

진주교는 밤에 보면 또 다른 느낌입니다. 다리 아래 노란 경관 조명을 설치했는데요. 이리저리 얽힌 구조물에 서린 검은 그림자와 노란 불빛의 대조가 환상적입니다. 밤에도 역시 다리 아래에 가보면 낮과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진주교는 걸어서도 많이 건넜습니다. 다리 위에서 보는 풍경이야말로 제 인상에 있는 '진주 남강' 느낌에 가장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가끔 이 다리로 손수레를 끌거나 낡은 자전거를 탄 어르신이 지나시는데요.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뭔가 모를 낯선 느낌이 있습니다. 근대와 현대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은 그런 감흥입니다.

잘 가꿔진 남강 둔치 산책로와 자전거길.

진주교 상판과 교각 사이에는 황금빛이 나는 원형 구조물이 일정한 간격으로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다리를 받치는 스프링인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1593년 진주성이 왜군에게 함락된 후 논개가 적장을 안고 뛰어들 때 끼었던 쌍가락지를 상징한답니다. 적장을 안은 팔이 풀리지 않도록 쌍가락지 낀 손을 교차해 잡은 그 결의를 뜻하는 거지요. 그런데 이거 뭔지 모르는 사람이 은근히 많더군요. 물론 진주 분들은 다 아시겠죠.

◇대나무숲

진주교를 지나면 대나무숲 공원이 이어집니다. 아, 이건 둔치 산책로가 아니라 도로변에 있는 겁니다. 원래 남강 주변에는 대나무밭이 풍성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경남문화예술회관 앞에서 경남과기대 사이 한 무더기 대밭이 이어져 있는데요, 여긴 조경이라고 봐야겠고요. 안으로 들어가 산책할 수 있는 곳은 진주교 근처에서 시작되는 대숲입니다. 남강 대숲은 풍수적으로 비봉산에 깃든 봉황을 위한 먹이로 가꿔진 것이라 합니다. 실질적으로 홍수 예방 효과가 있었겠지요. 어쨌거나 저는 진주에 가면 이 대숲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쏴 하는 그 댓바람 소리도 좋고요. 대나무가 주는 그 선명하고 반듯한 풍경도 좋습니다.

선명하고 반듯한 모습의 남강 변 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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