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세 저자 전순예, 산골 풍경·음식에 관한 기억 녹여
소설가 권여선 '안주 이야기 중심'맛깔난 산문 담아

짜인 식단에 묶인 채 살다가 주체적으로 맛을 탐한 시점은 대학생 때였다. 우습게도 이때 식단은 이전의 수동적 밥상에 비하면 정말 하찮았다. 고두밥에 계란부침 하나 얹고, 간장을 뿌려 비벼 먹었던 기억이 가장 많다. 적은 용돈을 쪼개 오로지 배를 채우려고 요리하고, 먹었던 시간이었다.

그때보다 형편이 조금 나아졌는데 지금도 가끔 그때의 간장계란밥이 생각난다. 먹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지난날 몹시 불안했던 마음의 상태가 떠오르는 것이다. 먹는 행위라는 것이 이다지도 지독한가 싶다. 기억을 지배하는 '의식주'라는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는 허투루 볼 것이 아니다.

두 권의 책 <강원도의 맛>과 <오늘 뭐 먹지?>는 먹는 행위와, 그것과 맞닿은 기억의 산물이다. <강원도의 맛>을 펴낸 전순예는 1945년생이다.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뇌운리 어두니골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작가가 꿈이었으나 먹고살기 바빠 잠시 꿈을 접어뒀다. 환갑에 글을 다시 쓰다 책까지 냈다. 지난 시절 먹었던 음식과 그 기억을 글로 옮겼다.

〈강원도의 맛〉전순예 지음

한국전쟁 직후부터 1960년대까지 뇌운리 산골 풍경을 글에 오롯이 담았다. 어린 시절 화자의 시점으로 써낸 글이어서 더욱 정감 있다. 개인적인 추억을 풀어낸 글이지만 그 시절 먹을거리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기록으로도 쓰인다.

'수희는 장날에 친구들과 전병을 사러 갔습니다. 난전에서 부치기 굽는 할머니한테 "할머니 옘병 좀 주세요." 말이 헛나갔습니다. "이런 옘병할 놈의 간나들이 먹는 음식 가지고 옘병이라니. 예라 이 옘병할 년들." 소금을 냅다 뿌립니다. 수희는 그 길로 돌아와 아무 가루나 있는 대로 풀어 전병을 만들어 먹게 되었습니다. 융통성이 얼마나 좋은지 어느 날은 나물도 무쳐 넣고 두르르 말아 온 식구가 출출할 때 오며 가며 하나씩 먹을 수 있게 잘도 만듭니다. 메밀가루는 없지만 밀가루에 도토리 가루를 섞었더니 까무스름한 것이 메밀전병 같습니다. 전병 속은 무를 채칼에 쓱쓱 밀어 얼큰하게 무쳐 넣었습니다. 생채가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괜찮습니다.'(221쪽)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행위부터 실제 먹는 행위까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기억을 지배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오늘 먹은 음식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으려면 잘 먹는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

소설 <안녕 주정뱅이>를 쓴 작가 권여선은 음식 산문을 청탁받아 <오늘 뭐 먹지?>를 펴냈다. 틈만 나면 술 얘기를 펼치는 작가여서 대놓고 술 얘기를 썼다. 그러니까 실제 책 제목은 '오늘 안주 뭐 먹지?'가 되겠다.

5부, 20장에 걸쳐 음식을 소개하는데, 작가는 읽는 이로 하여금 술을 찾게 하는 문장의 마법을 거침없이 부린다. 마찬가지 <강원도의 맛>처럼 음식(안주)에 맞닿은 기억을 풀어낸다.

'요즘은 가자미전을 보기 힘들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머리 떼고 꾸덕꾸덕 말린 참가자미에 밀가루와 달걀 옷을 입혀 전을 부치는 집들이 많았다. 부침개용 참가자미는 어른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소녀의 손바닥만 한 것이 딱 좋다. 가자미전이 노릇노릇 부쳐져 채반에 얹히면 나는 먹고 싶어 조급증이 났다. 어머니가 한 김 식어 따뜻한 가자미전을 접시에 얹어 내게 건네던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온전한 한 마리의 가자미전이 내 것이 되던 그 황홀한 순간을. 막내라 그런지 나는 온전하다는 것에 항상 집착했다. 온전한 나만의 것.'(57쪽)

〈오늘 뭐 먹지?〉권여선 지음

먹고살았던 기억의 순간을 기록한 두 권의 책을 소개하면서, 간장계란밥을 다시 떠올렸다. 시린 기억이지만 대학 시절보다는 나아진 삶이 더 나은 먹을거리를 제공한 데 고마운 마음도 슬며시 든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 좀 더 나은 먹을거리, 더 나은 세상을 꿈꿔도 좋을까.

<강원도의 맛> 송송책방 펴냄, 352쪽, 1만 6000원. <오늘 뭐 먹지?> 한겨레출판 펴냄, 248쪽, 1만 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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