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힘]메멘토 모리(Memento-mori)
영화 <메멘토> 주인공처럼, 조작한 기록은 비극 가져와
시민들 합의로 만든 지역사, 과거 반성·미래 구상 기회
올바른 '경남사' 편찬되길

아내를 잃은 한 남자가 있다.

강간을 당해 살해당한 아내를 구하려다 그도 머리를 다쳐 사건 이후, 단 10분간만 기억할 수 있다. 10분 후면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그의 기억은 사건 이전에 멈춰있다. 그의 이름은 레너드, 아내는 그를 레니라고 불렀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사람을 추적하고자 긴 여정을 떠난다. 그리고 사건의 증표를 잊지 않으려고 종이에 기록하고, 만난 사람의 사진을 찍고, 중요한 단서는 몸에 새긴다. 영화는 중간 중간 새미를 떠올리는 그를 보여준다. 새미는 보험 조사관이었던 레너드에게 아내와 함께 보험을 청구하러 온 사람으로 레너드와 동일하게 교통사고 이후 기억을 오래 하지 못하는 병을 앓았다. 그러나 레너드는 새미가 기억을 못 하는 것이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것이라 생각하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게 된다. 결국 아내는 레너드의 말에 의존해 사랑하는 남편 새미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려 남편을 상대로 극단의 실험을 해보지만 그 실험으로 아내는 남편에 의해 죽게 된다.

영화 〈메멘토〉 주인공인 레너드가 자신의 몸에 새긴 기록을 살펴보는 모습. /스틸컷

이 영화에서는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기억을 못 하는 남자 레너드의 기억을 조작하여 그 스스로 굴절된 기록의 증표를 남기게 해 살인을 조장하게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남자는 단편의 기억들 속에서 기록하고 그것을 확신한다. 그러곤 스스로는 새미와 달리 체계적으로 짧은 기억을 기록으로 관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마지막은 레너드가 새미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고자 스스로 기억을 조작하고 진실을 알려주는 사람에게 '그의 거짓말을 믿지 마라'고 기록하여 어떤 진실의 순간에도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 스스로 작성한 기록 외에는 믿지 않지만 그것은 스스로 굴절된 기억이었고, 끝없이 증거를 남기지만 그 기록은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기록이었을 뿐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라는 영화 일부다.

기록은 역사를 증명한다고 말한다. 그 역사는 우리 기억 전체일 수 있고 아주 먼 옛날 기억되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경로로 기록이나 발굴 등을 통해 밝혀낸 사실일 수 있다. 인류 역사를 본다면 우리 인생도 레너드처럼 긴 역사에서 단 10분의 기억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10분의 기억으로 기록하고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각자의 이익을 가진 사람들의 이익 추구를 위해 기록을 조작하거나 스스로 합리화를 위해 기억을 굴절시켜 기록화하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나의 극단적으로 냉소적이며 창의적인 생각일 것이다. 또한 역사 연구를 위해 평생을 바친 분들의 헌신을 한순간에 내던지는 불손한 상상력일지 모른다. 나는 나의 극단적 상상을 비판하며 인류의 역사를 신뢰하고 싶다.

지난 2016년 12월 31일 창원광장에서 열린 '송박영신(박근혜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함) 10차 경남시국대회' 모습. /경남도민일보DB

이 영화를 보면서 지난 130년간 작게는 경남도청에서, 크게는 경남에서 일어난 사건을 정리해보면 어떨지에 대한 생각을 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 반성해야 하는 사건(사고), 자랑스러워야 할 일들은 무엇이며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지보다 근본적인 역사적인 기준을 세우기를 바랐다.

레너드의 기억처럼 스스로 합리화를 위해 굴절시킨 기억으로 만든 기록이 아닌,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합의된 내용으로 만들어낸 경남의 역사가 있었으면 했다. 80년대 경남지역에서 성장해 2018년 현재 기록연구사라는 직업을 가진 나조차 경남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이순신 장군,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그리고 박경리 선생님이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역사책이나 문학 책에서 나온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인물이다.

아쉬운 점은 내가 어릴 때부터 경남의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들을 알았더라면 지역에 더 애정을 가지고 지역을 더 사랑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그것을 탐구하고자 했더라면 알 수 있었을 것이니, 나의 게으름으로 탓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어진 대로 학습한 지난 세월과 지금 무엇인가를 학습하는 내 아이들을 본다면 경남의 체계화된 역사서가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국사 교과서의 논쟁은 접어두고 지역마다 편찬된 고유의 지역사가 하나쯤 있어, 어릴 때부터 지역을 알고 비판하고 자부심을 가지며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매개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을 만드는 과정은 많은 예산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공정한' 자세가 요구될 것이다. 오욕의 사건도 환희의 일들도 다 우리 역사니 말이다.

지난달 30일 경남도청 현관 홍준표 경남도정 구호 '당당한 경남시대'가 철거되고 김경수 도지사 도정구호 '완전히 새로운 경남'이 설치됐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체계화된 기록 등의 정리로 과거 우리 지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무엇을 했고, 무엇을 잘못하고, 잘했는지를 탐구해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 반성해야 하는 것, 이를 통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길 희망한다.

영화 〈메멘토〉에서 주인공이 짧은 순간이지만 10분 동안 그의 진실을 알고 기록했다면 영화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10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인지-수용-기록'까지의 의식의 흐름은 10분이면 충분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10분이든 1년, 10년이든 '수용'이라는 판단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평생 진실은 기록하지 못한다.

문학적으로만 영화를 본다면 사랑하는 아내를 죽인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건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라면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 '너'가 죽였다는 사실로 사람들이 죽었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만약 영화에서 한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의 오류를 지적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알려줬더라면 어땠을까? 주인공이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상황은 정상화되었을 것이다. 각자의 이익을 위해 주인공을 이용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며 무고한 사람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올바른 판단의 기록은 생각을 정리하게 하며 과거를 돌아보아 미래를 준비하게 한다. 사회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누구의 이익도 고려되지 않는 충실한 경남사가 공식적으로 만들어지길 바란다. 이를 통해 과거에 있었던 경남의 위기(경제, 정치, 문화 등)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반면교사 삼아 현재의 위기를 더 지혜롭게 헤치고 나아가리라 생각한다. 또한 진실에 근접한 합의된 경남사 편찬 작업은 내가 살았던 그리고 살고 있는 이 공간과 지역민을 자부하게 만들 것이며 지역을 사랑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메멘토(Memento)의 어원은 라틴어 'Memento mori'다. 옛날 로마 공화정 시대, 승전 기념행사 때 장군들이 거만해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로마황제들이 이 문장을 상기시켰다고 한다. 'Remember that you will die', 당신은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기억하자, 우리는 언젠가 죽을 것이다, 그러나 기록된 역사는 영원할 것이다. /시민기자 전가희(기록연구사)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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