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에서 온 편지
홈스테이·수업 참여 등 문화 체험하며 교류 '이해도' 높여

to. 한국

한국이라는 나라는 저에게 멀기만 했던 나라였습니다. 그저 우리 할아버지의 고향, 우리의 모국이라는 점만 알았을 뿐입니다. 제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 오고, 많은 곳을 보면서 어느덧 제 마음속에는 하나의 질문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 질문은 '왜 우리는 같은 민족인데, 같은 곳에 있지 못하는 것일까?'입니다. '나는 키르기스사람인가? 아니면 고려인일까?', '한국이 모국이라면 나의 진정한 고향은 어디일까?' 등등 많은 생각이 한국에 머무는 기간 내내 들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제 질문의 답을 찾고 싶습니다. 부모님께 우리 민족이 어떻게 키르기스스탄까지 오게 됐는지 구체적으로 여쭤볼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프로그램과 같은 좋은 기회를 통해 한국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고 싶습니다.

from. 키르기스스탄 김 디아나(Kim Diana)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왼쪽부터) 아루자다, 카리나, 디아나, 베기마이, 블리델리나 학생이 창원행복마을학교에서 궁중떡볶이를 만든 후 들어보이고 있다. /경남교육청

일제강점기에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고려인 후손 디아나(14)와 블리델리나(An Vladelina·15) 등 키르기스스탄 공화국 학생대표 5명이 경남도교육청 초청으로 지난달 25일 일주일 일정으로 경남을 방문했다. 고려인이란 러시아를 비롯해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독립국 연합에 거주하는 한인 교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이번 방문은 한민족 정체성 함양·고국 체험 기회 제공 등을 위한 '실크로드 희망 나눔 프로젝트'로 지난해 한·키 수교 25주년을 맞아 도교육청이 키르기스스탄 교육과학부, 고려인협회 등과 협약으로 이뤄졌다.

이번에 초청된 학생들은 쉬콜라(초·중·고 통합학교) 중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한 학교에 다니는 학생 중 비슈케크한국교육원이 주관한 한국어 심층면접, 참가 의지 등을 고려한 공정한 심사를 거쳐 선발됐다. 도교육청은 학생들에게 신월중학교, 고성음악학교, 곤양중학교 수업과 연계한 홈스테이 제공, 수업 참여를 도왔다.

키르기스스탄 학생들이 신월중학교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 /경남교육청

신월중학교는 김덕현 교장 부임 이후 월드 리더를 교육 비전으로 내세워 '귀국학생 특별학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김성례 교무부장의 기획으로 신월중 학생 5명이 키르기스스탄 학생 5명의 멘토가 돼 수업을 함께하고, 집에서는 한국 문화와 언어를 공유했다. 학생들은 미술·역사·과학·수학·체육 수업에도 자연스럽게 동참했다.

고려인 블리델리나와 짝을 이룬 이한세(3학년) 학생은 "한국말이 서툴러 함께 홈스테이를 한 아루자다(Mirlan kyzy Aruzaada·14)와 우리 3명은 번역기를 통해 러시아어로 대화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보드게임을 통해 친해지려 했고, 독일과 한국 월드컵 예선전을 보며 같이 한국을 응원했다"고 말했다.

디아나 멘토인 이원희(2학년) 학생은 홈스테이 체험 중 마트에 들러 같은 목걸이를 사는 등 금방 친해졌다. 정우석(2학년) 학생 멘티인 카리나(Iriskeldieva Karina·16)는 이후 편지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어 실력을 높일 수 있었고, 외할머니 나라의 문화를 더 잘 알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이 확대돼 더 많은 친구가 한국에 올 수 있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만났던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소감을 전해왔다.

키르기스스탄 학생들이 곤양중학교에서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경남교육청

방문 학생 5명 중 고려인이 아닌 키르기스인 아루자다와 베기마이(Kozhoeva Begimai·15) 등 2명도 있다. 베기마이 멘토 김단영(1학년) 학생은 키르기스어를 배워 학교 환영식 인사를 하기도 했다. 단영 학생은 "베기마이 등 친구들 방문으로 우리도 잘 알지 못했던 민족 정체성을 확인했고, 생김새와 언어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많은 친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팽세희(1학년) 학생과 아루자다 학생은 방탄소년단을 화제로 사이가 돈독해졌다. 아루자다는 "한국 방문이 오래전부터 꿈이었다. 좋아하는 한국 문화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김성례 교사는 "교감선생님 집을 방문했을 때 매운 라면을 준비했는데 학생들이 잘 먹지를 못했다. 매우면 안먹어도 된다고 하니 그제야 수저를 놓는 등 성의를 보이는 모습에서 학생이라도 사려 깊다는 걸 느꼈다. 집에 들어설 때도 신발을 벗어 정리를 하고 들어서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김덕현 신월중 교장은 "키르기스스탄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던 우리 학생들이 짧은 시간이지만 생김과 언어가 다른 학생들과 수업하면서 인근 나라까지 관심을 보이고 세계관이 넓어지는 등 학교 전체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고성음악학교 작은 음악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한국 학생들과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경남교육청

올 하반기에는 멘토 역할을 한 신월중 학생 5명이 키르기스스탄을 탐방할 예정이다. 이들이 갔을 때 주도적으로 키르기스스탄 문화를 안내할 아루자다 편지도 인상적이다.

to. 한국

제가 한국어를 공부하게 된 계기는 바로 K-POP입니다. 친한 친구들로부터 방탄소년단 노래와 동영상을 우연히 보게 됐고, 그 후 K-POP에 푹 빠지게 됐습니다. K-POP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한국어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처음 한국어 공부는 저에게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하나 차근히 공부하면서 점점 한국어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 갈 기회를 얻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다시 키르기스스탄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저에겐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발전한 한국 모습, 다양한 먹을거리, 전통 등 K-POP 외에도 다양한 모습을 보면서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또한 한국 학생들과 다양한 수업을 같이하면서 저에게 하나의 꿈이 생겼습니다. 바로 한국에서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은 아직 저에게는 너무나 어렵게 느껴집니다. 하나하나 차근히 이전과 같이, 그리고 더 큰 열정으로 한국어 공부를 한다면 저의 이 꿈도 불가능하진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에게 이러한 꿈을 가지게 해주시고 한국에 갈 좋은 기회를 주신 비슈케크한국교육원, 경남교육청, 여러 선생님과 홈스테이 가족분들 등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from. 키르기스스탄 아루자다(Mirlan kyzy Aruzaada)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