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일본 정부에 첫 승소 판결
'관부재판'실화를 모티브
차가운 시선·2차 가해 등
여성인권 밀도 있게 다뤄

김복득 할머니가 지난 1일 별세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할머니는 1939년 18세 때 이름 모를 사내들에게 끌려가 압록강을 건넜다. 그녀는 중국과 대만 등에서 성노예로 살다 어렵사리 고향 땅을 밟았지만 고국에서 손가락질을 당했다. 그리고 사기 결혼과 유산….

할머니는 일평생 고된 일로 번 돈을 학생들을 위해 내놓으며 통영과 창원 등에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증언'했다. 그녀가 바란 것은 단 하나,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였지만 끝내 듣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영화 <허스토리>(감독 민규동)는 이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내건 소송에서 처음으로 일부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던 실제 재판을 다룬다.

영화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문정숙(배우 김희애) 대표가 사무실 한편에 위안부 피해 신고소를 열자 돌멩이가 날아온다.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하관)를 오가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관부재판'을 벌인 배정길(배우 김해숙), 박순녀(배우 예수정), 서귀순(배우 문숙), 이옥주(배우 이용녀) 할머니를 향해서도 시민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라"며 모욕을 준다.

고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증언했던 1991년,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여성의 존재가 알려졌지만 당시 우리의 태도는 냉담하다 못해 '더러운 여성'이라며 또 다른 고통을 안겼다.

영화 〈허스토리〉 한 장면. /스틸컷

하지만 할머니들은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과 부산 등 정신대·위안부 피해 신고 전화가 개설됐고 사회의 편견 속에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여성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1992년부터 6년간 23번 치러진 관부재판은 일본 정부의 일부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로 끝이 난다.

하지만 당시 재판부는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는 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또 이후 일본 정부가 항소했고 2003년 최종 패소가 확정됐다.

그럼에도 관부재판은 일본 법정이 일본군 위안부 관련 피해 사실을 인정했던 최초의 재판이며 '히스토리'가 아니라 '허(Her. 그녀)스토리'로 해낸 귀중한 결과다.

영화의 전개는 극적이지 않다. 승소의 쾌감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며 피해자들의 상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 대한 사회의 시각과 태도가 2차 가해와 고통을 준다고 말한다.

할머니들은 권위적이고 무거운 재판장에서, 더욱이 치를 떠는 일본인 앞에서 지난날의 아픔을 증언해야 한다. 증언만이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밝혀야 한다.

영화 〈허스토리〉 한 장면. /스틸컷

영화에서 문정숙은 상황을 극대화하기 위해 변호단에 말하지 않고 서귀순 할머니가 재판장에서 등을 보이도록 했다. 서 할머니는 근로정신대로 일본 군수공장에 동원됐다가 군인들로부터 폭력과 성폭력을 당했다. 그녀는 재판장에서 온갖 칼자국이 난 등을 드러낸다.

영화 후반부 문정숙은 세상을 떠난 서귀순 할머니에게 뒤늦은 사과를 한다. 오로지 재판에 이기려고, 할머니의 또 다른 아픔을 보지 못했다고 말이다.

<허스토리>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중심으로 여성의 인권을 이야기한다. 할머니들이 그저 희생자가 아니라 인권을 유린당한 여성이라고 말이다. 영화는 '미투 운동' 관련 피해 여성을 또 다른 가해자로 몰고 가는 현재를, 분쟁지역에서 여성을 상대로 이뤄지는 성폭력, 국제구호활동단체들의 성범죄를 묻는다.

그래서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여성과 어린이들이 짓밟히지 않는다"라고 말한 배정길 할머니의 절규이자 호소가 내내 맴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프다. 하지만 "세상은 안 바뀌어도 우리는 바뀐다"고 말한 할머니들처럼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

그녀들이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남은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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