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라의 곤드레만드레]스핀오프-일본 후쿠오카를 가다
소규모 양조장 중 품질 정평 난 지역맥주 살아남아
치킨난반 전용 맥주, 풍성한 향·산뜻한 뒷맛 돋보여
농산물 활용·관광 상품화 등으로 '지역과 선순환'

지난 5월 중순 일본 후쿠오카로 조금 이른 휴가를 다녀왔다.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시끌벅적한 휴가철은 적당하지 않았다.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마음 가는 대로 걷고, 보고, 먹자는 것 외에. 아, 하나 더 있었다. 일본 맥주를, 정확히는 '지비루(地ビ―ル)'라고 불리는 일본 지역 맥주를 많이 마시자는 것.

일본에서 맥주 양조가 시작된 것은 메이지 유신 개국 즈음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소규모 양조장이 더러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린·아사히·삿포로·산토리 등 대규모 양조회사가 중심이 돼 시장을 형성했다. 소규모 양조가 시작된 것은 1994년이다. 당시 일본 사회 전반에 '규제 완화' 붐이 일었는데 맥주업계에도 영향을 미쳐 최저 제조량 기준이 2000㎘에서 60㎘로 하향됐다. 이때부터 전국 각지에 소규모 맥주 양조장이 우후죽순 생겼다. 또 소규모 양조장에서 생산된 맥주를 지자케(地酒·지역에서 생산한 사케)에서 영감을 얻어 '지비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순탄하게 시장에 정착한 건 아니었다. 질이 떨어지거나 지나치게 비싼 경우가 많았다. 소비자는 외면했고 많은 양조장이 폐업했다. 자연스레 맛있는 맥주를 꾸준히 만든 소규모 양조장은 살아남았다. 현재 일본의 지역 맥주는 외국 콘테스트에서도 곧잘 상을 받을 정도로 그 품질이 정평이 나 있다.

현지에서 만난 일본 지역 맥주는 지역 문화를 홍보하거나 관광 상품으로 활용되는 등 지역과 선순환하고 있었다.

일본 후쿠오카 한 쇼핑몰 지하 식품관 맥주 진열대 모습. 다양한 일본 지역 맥주가 진열돼 있다.

이 가운데 여행 첫째 날 마신 '치킨난반 전용 맥주'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치킨난반은 일본 미야자키현 노베오카시에서 시작된 닭튀김 요리로 닭고기에 반죽을 입혀 튀긴 요리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즐겨 먹는 치킨과 유사하나 식감과 먹는 법이 다르다. 치킨난반은 우선 눅눅하다. 닭을 튀긴 뒤 간장과 식초 등을 섞은 소스에 적시는 데다 타르타르소스를 뿌려 먹기 때문에 튀김 요리 특유의 바삭함을 느낄 수가 없다. 대신 짭짤하고 감칠맛이 있어 밥과 함께 반찬으로 먹는다. 편의점만 가도 만날 수 있는 일본 서민 음식 대표 주자랄까.

치킨난반 전용 맥주는 향기가 인상적인 필스너였다. 다량의 홉이 들어간 인디아페일에일(IPA)에서 느낄 수 있는 풍성한 향이 나면서도 뒷맛은 산뜻했다. 이것이 장점이었다. 라거처럼 가볍게 마실 수 있으면서 에일처럼 향을 즐길 수 있는 맥주라고 하면 정확하겠다. 이름답게 치킨난반과 조화도 압권이다. 맥주의 맛과 향이 튀김 요리 특유의 느끼함을 잡아주면서 고기의 맛과 소스의 새콤함을 돋보이게 했다.

이 맥주는 미야자키현 노베오카시의 마을단체 '난반 트라이(NANBAN TRY)'가 만들었다. 이들은 2009년부터 치킨난반 발상지인 노베오카시를 알리고자 7월 8일을 '치킨난반의 날'로 정하고 심포지엄 개최, 마스코트 공모 및 선정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치킨난반 전용 맥주도 이 과정에서 탄생했다. 이 맥주 라벨에 노베오카시 위치를 알리는 지도와 치킨난반 사진이 붙어 있는 것도 다 그 때문이겠다. 지역과 그 지역 음식에 대한 그들의 애정이 사뭇 감동스러웠다.

일본 후쿠오카 다카치호키친에서 마신 치킨난반 전용 맥주. 이 맥주는 미야자키현 노베오카시 마을단체 '난반트라이'가 만들었다.

1999년부터 후쿠오카 오쿠라 호텔 지하에 양조장을 두고 자체 브랜드인 하카타 드래프트(Hakata Draft)를 생산하고 있는 '오쿠라 브루어리(Okura brewery)'도 비슷한 경우다. 이들은 후쿠오카시 중에서도 하카타 구 문화에서 영감을 얻어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였던 '다이코쿠(DAIKOKU)'는 후쿠오카 지역 최대 축제이자 일본 주요무형민속문화재인 '하카타기온야마카사(博多祇園山笠)' 개최 지역에서 이름을 따왔다. 오쿠라 브루어리는 인기 상승에 힘입어 2008년부터 대표 맥주 3종을 병맥주로 생산, 판매하고 있다.

일본 후쿠오카 오쿠라 호텔 지하에 위치한 '오쿠라 브루어리'에서 마신 맥주. 왼쪽부터 'Als, Schon Alt, DAIKOKU'다. /우보라 기자

관광 상품화의 성공 사례는 이미 있다. 1959년부터 생산된 오키나와현의 '오리온(Orion) 맥주'가 그것이다. 이 맥주는 발매 당시 현 내에서도 대규모 양조회사에 밀려 시장 점유율이 낮았으나 아메리칸 타입의 가벼운 맛으로 리뉴얼한 후 인기가 높아졌다. 물론 본토에 비해 낙후된 오키나와현 산업을 보호하고자 정부가 주세를 20% 감면해준 것도 점유율 상승의 큰 원인이었다. 예전에 오리온은 오키나와에서만 유통됐기 때문에 이 맥주를 맛보고자 오키나와를 찾는 이가 부지기수였다. 무덥고 습한 기후의 오키나와와 상쾌한 맛의 오리온 맥주는 찰떡궁합의 관광 상품이었던 셈이다. 오리온 맥주는 2002년 아사히 맥주와 제휴를 맺고 오키나와와 아마미 군도를 제외한 맥주 판매를 위탁하면서 일본 전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마실 수 있게 됐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오리온 맥주는 상표권 문제로 '오키나와 맥주'라는 이름으로 판매 중이다.

일본 후쿠오카 '가스트로 펍 에일즈'에서 직원이 맥주를 따르고 있다.

또 일본 지역 맥주는 지역 농업 부흥에도 앞장서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맛만 놓고 보자면 가장 훌륭했던 맥주는 미야자키 현에서 생산된 '다이요 노 라거(太陽のラガ―)'였는데 이 맥주를 생산하는 '히데지 비어 브루어리(Hideji beer brewery)'는 지역 농업에 도움이 되고자 현에서 생산된 보리, 유자, 망고, 밤 등을 활용한 제품을 내놓는 것은 물론 현 내 레스토랑에서만 유통되는 맥주를 생산한다.

얼마 전부터 국내에서도 지역 명칭을 딴 맥주가 속속 출시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가 해당 지역에서 생산되지도, 지역 농산물을 활용하지도 않는다. 지역 맥주라고 부르기에 부족하다. 마산 아귀찜 전용 맥주, 창원 단감을 넣은 맥주, 마산 통술거리에서만 유통되는 맥주…. 이런 게 지역 맥주는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일본 지역 맥주 시장은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후쿠오카 맥주 여행지 정보> 

1. 다카치호키친(タカチホキッチン) : 치킨난반과 치킨난반 전용 맥주를 파는 음식점. 정식 메뉴에는 밥, 된장국, 반찬이 나오며 밥은 무제한 리필이 가능하다.

2. 브리티시 펍 모리스 히포(British pub morris' hippo) : 강변을 바라보며 다양한 세계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펍. 주기적으로 바뀌는 게스트 생맥주를 추천할 만하다. 칵테일과 위스키도 판매한다.

3. 오쿠라 브루어리(Okura brewery) : 자체 브랜드 '하카타 드래프트'를 판매한다. 대표 맥주 'Als·Schon Alt· DAIKOKU' 3종 모두 맛볼 수 있는 샘플 메뉴가 있다. 후쿠오카 호텔 오쿠라 지하 1층에 위치. 창문 너머로 맥주 양조 시설을 볼 수 있는 것도 매력.

4. 가스트로 펍 에일즈(Gastro pub ales) : 에일 맥주 전문 펍. 다양한 세계 맥주를 비롯해 일본 지역 맥주를 만날 수 있다.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을 통해 생맥주 라인업을 공지하니 참고하면 좋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