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시대 짚신·소쿠리도

김해시 주촌면 가야시대 유적인 양동산성 집수지(산성 등에서 물을 확보하고자 만든 못)에서 고대 목간(붓글씨가 남아 있는 나뭇조각)과 생활목기가 대거 출토됐다. 출토된 목간은 고대 상인들이 곡물을 운송하면서 짐에 부착한 짐 꼬리표로 확인됐다.

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은 지난 4월부터 경남도 기념물 제91호인 양동산성의 축조시기를 규명하고자 양동산성 집수지 1기를 조사한 결과 이 같은 유물들이 출토됐다고 3일 밝혔다.

조사 결과 집수지는 영남지역 최대 규모인 길이 15.5m, 너비 22.8m, 최대 깊이 3.4m로, 6~7세기 가야에서 신라로 넘어가는 시기에 축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집수지 내부에서 6세기 후반부터 7세기 신라시대에 해당하는 유물들이 대량으로 출토됐기 때문이다.

박물관 측은 양동산성 집수지가 금관가야가 멸망한 532년 이후에 만들어졌고, 산성의 축조시기도 집수지의 축조시기와 동일한 것으로 진단했다.

양동산성 내 집수지는 비슷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산의 배산성 내 집수지와는 평면 형태가 원형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집수지 내부에서는 보존상태가 좋은 철 화살촉 2점과 철 도끼 1점, 목간 3점, 바가지, 국자, 소쿠리 등 생활목기와 짚신 등이 출토됐다. 목간 글자나 짚신들이 양호한 상태로 보존된 것은 집수지 진흙 속에 오랫동안 묻혀있었던 덕분으로 보고 있다.

그중 목간 1점은 양동산성으로 운송한 곡물 꾸러미에 부착된 짐 꼬리표로 확인됐다. 목간은 길이 26.8cm, 너비 2.5cm, 두께 0.7cm에 이른다. 목간에 적힌 글자의 기재방식은 '마을이름 + (사람이름) + 곡물이름'의 순으로 적은 함안 성산산성 부엽층 출토 목간의 기재방식과 유사했다. 성산산성 목간에 적혀 있는 '栗村(율촌)'이라는 마을이름이 양동산성에서 발견된 목간에도 적혀 있다. 율촌이라는 마을 이름의 지역은 아직 특정되지 않고 있다.

시는 이들 두 지역 목간을 비교하면 함안과 김해, 신라와 김해 관계 등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는 목간의 정밀한 판독을 위해 추가로 적외선 촬영 등을 하고 학계와 공동연구를 거쳐 양동산성 목간의 정확한 성격을 규명할 계획이다.

또 양동산성 집수지와 출토 유물이 가야 멸망 이후 김해를 식읍으로 받은 구형왕과 신라의 정치적 이해관계,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보고 추가 발굴과 국가 사적 승격을 추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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