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노여움을 공유하죠.”

레크리에이션. 자유시간에 개인·집단적으로 하는 여러 활동을 뜻한다. 이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사람을 레크리에이션 강사 또는 MC라고 부른다. 이들은 넘치는 끼와 재능으로 행사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한다. 창원에는 레크리에이션을 버스킹(거리공연)에 접목시켜 활동하는 팀이 있다. '창원남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창원남자들은 창원에서 거리공연을 통해 관객들을 만난다. 각종 게임을 비롯해 MC, 노래, 댄스 등 다양한 무대를 선보인다. 이 팀을 이끌고 있는 이정희(25) 씨를 만나봤다.

MC는 나의 길

약속이 있어 창원시 상남동을 찾았다. 때마침 분수광장에서 거리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남아 잠시 구경하기로 했다. 공연은 특이했다. 남성 5명이 빨간 정장을 차려입고 사람들 앞에서 다양한 공연을 하고 있었다. 토크, 노래, 댄스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이루어졌다. 현수막에는 '레크레이션 버스킹팀 창원남자들'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문득 이 팀을 만든 사람이 누구일지 궁금해졌다. SNS를 검색해보니 창원남자들 공식페이지가 검색됐다. 정보란을 살펴보니 이정희 대표 전화번호가 있었다. 바로 전화를 걸어 이 씨와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학창시절에 대해 물어봤다.

"어렸을 때부터 창원에서 쭉 살았습니다. 학창시절 공부를 안 좋아했어요(웃음). 공부보다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했죠. 반장, 부반장, 체육부장 등 할 수 있는 건 다 했던 것 같아요. 친구들도 저에게 항상 '넌 똘끼(남들이 못하는 걸 하는 사람의 끼)가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쪽으로 전공을 살려보자고 마음먹고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MC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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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희 창원남자들 대표. / 박성훈 기자

이 씨는 대학 진학을 원하지 않았다. 전문 MC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졸업 후 곧바로 전문 MC를 하려고 했기 때문에 대학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대학에 가는 걸 원하셨어요. 그래서 경남에 있는 모 대학의 레저스포츠학과에 진학했죠. 돌이켜보니 당시에 배웠던 것들이 지금 MC로 활동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5명의 MC들이 모여 결성한 창원남자들

이 씨는 현재 '엠씨제이'라는 이벤트 회사에서 전문 MC로 활동하고 있다. 이곳은 돌잔치·결혼식 전문으로 창원, 대구, 전주 등 전국을 무대로 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창원남자들은 창원이 고향인 5명의 MC들이 모여 만든 팀이다. 멤버는 이 씨를 필두로 정영준(29), 방제천(25), 홍상우(25), 박민근(23)으로 구성돼 있다.

"한 번은 다른 MC들과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어요.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이야기가 '평일에도 행사를 하면 좋을 것 같다'였습니다. 보통 행사가 주말에 몰려있으니까 평일에는 다른 일을 할 수밖에 없거든요. 아이디어는 좋았습니다. 그러나 개인이 행사를 만든다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거리 공연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발상의 전환이죠. 노래를 부르고 악기만 연주하는 게 아니라 게임도 하고 대중들과 이야기도 나누는 거예요. 또 무대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공연 기회도 제공해주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저와 박 씨, 홍 씨가 원념 멤버입니다. 그러다 정 씨와 방 씨까지 합류하며 총 5명이 됐죠. 거리공연을 할 때 각자 담당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우선 정 씨는 영상을 담당하고 방 씨는 글을 씁니다. 그리고 홍 씨는 음향 담당, 저와 박 씨는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창원남자들은 작년 9월에 결성된 후 12회 정도의 거리공연을 해왔다. 정식 행사가 아닌 길거리공연이라도 아이디어 회의, 게스트 섭외, 장비 구매 등 준비하고 꾸미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또 장소 대여를 제외한 모든 비용을 사비로 지출하고 있다. 이 씨에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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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남자들 로고. / 창원남자들 제공

"거리공연 특성상 관객 중에는 취객이 종종 있어요. 이분들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등의 장난을 치세요. 물론 그분들까지도 포용하고 함께 즐기는 공연을 만들려고 노력하죠. 하지만 다른 관객들은 취객의 행동이 불편할 수도 있잖아요. 전체적인 공연 흐름이 끊겨 버리죠. 또 거리공연은 공연비가 따로 없기 때문에 재능기부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물론 저희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불만은 없어요. 하지만 이런 부분이 계속해서 쌓이다 보면 팀원들도 지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어요. 그래도 제가 대표로서 잘 조율해 나가야겠죠?"

이 씨는 힘든 것보다 거리공연을 통해 얻는 행복감이 더 크다고 했다.

"저희 팀에는 객원보컬 두 명이 있는데요. 그중에서 한 명은 결혼한 지 한 달 된 주부입니다. 노래가 너무 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고 해요. 우연히 저희와 연락이 닿게 됐고 남편의 허락을 맡은 후 거리공연이 있을 때마다 참석해 무대를 함께 꾸미고 있습니다. 또 한 번은 공연을 관람하던 일가족을 무대로 불렀습니다. 인터뷰를 하던 중 부부에게 '평소 서로한테 하지 못했던 말을 해 달라'고 했습니다. 두 분 다 쑥스러워했지만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주고받았어요. 서로에게 느끼고 있던 고마움을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확인했던 거죠. 이처럼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은 힘들지만 사람들의 웃음과 행복함을 느낄 때면 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창원시의 문화 수준 향상을 위해서는

앞서 말했듯이 이 씨의 본업은 이벤트 회사에 소속된 전문 MC다. 전국으로 행사를 다니며 다양한 거리공연 문화를 경험해봤다. 창원시와 비교했을 때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 물었다.

"부산, 대구, 전주 등 여러 곳에서 거리공연을 경험했는데요. 타지역을 보면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는 평일·주말 할 것 없이 거리공연이 열립니다. 창원에서 가장 번화가로 상남분수광장을 꼽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곳에서조차 평일에 거리공연 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죠. 그래서 창원남자들은 상남분수광장에서 매달 둘째 주, 넷째 주 수요일에 거리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창원에서도 평일에 색다른 거리공연이 열린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수준 높은 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창원시의 행정적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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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남자들 팀. / 창원남자들 제공

"창원시가 최소한의 지원 정도는 해줬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상남분수광장은 오후 7시에서 9시까지만 전기가 개방되는데요. 너무 늦게는 민원 문제도 있으니까 공연팀과 관객을 위해 개방시간을 조금 앞당기는 거죠. 또 우천시에는 공연을 못 하는데요. 단순히 통제를 할 게 아니라 비가 올 때 창원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무대를 구상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을까요? 공연팀이 수준 높은 무대를 준비하고 시는 행정적 뒷받침을 해준다면 창원의 문화 수준이 한층 더 성장할 거라 자신합니다."

이 씨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일주일에 절반 이상을 팀원들과 만나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다.

"총 세 가지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창원시민가요제'입니다. 그 어떤 제한도 없이 창원시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가요제를 여는 거죠. 두 번째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인디뮤지션들을 모아서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겁니다. 지역뮤지션들은 다른 팀과 교류할 수 있어서 좋고 관객들은 수준 높은 무대를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마지막으로 '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라는 토크쇼를 기획하고 있어요.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프로젝트죠. 꿈이 없고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는 거리 토크쇼입니다. 이번 달 말이나 다음 달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입니다. 창원남자들은 사회, 음향, 영상 등을 지원할 거예요. 많은 사람들과 무대를 만들어 갈 생각을 하면 잠도 오지 않을 정도로 행복합니다."

매달 빠지지 않고 이어온 공연 덕분일까. 1년도 채 안 된 시간이지만 창원남자들을 알아보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이 씨에게 대중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길 바라는지 물어봤다.

"첫 번째 목표는 창원시민들 입에서 '창원남자들은 열정 넘치고 참 재미있는 레크리에이션 버스킹팀이다'라는 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두 번째는 타지역에도 저희가 만들고 이끌었던 문화를 전파하는 겁니다. 이 부분은 사실 저희만 해서는 어려워요. 공연팀과 창원시의 지원까지 이 삼박자가 갖춰줬을 때야 실현 가능한 이야기가 되죠."

희로애락

MC는 단순히 '끼'가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 행사 도중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도 있어야 하고 관객들을 빨아들이는 흡입력도 필요하다. 이 씨에게 MC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공연이나 행사를 끝내고 나면 공허해지는 순간이 있어요. 또 수입이 일정하지 않으니까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불안감도 엄습하죠.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하려는 분들이 있다면 진지하게 고민을 했으면 좋겠어요. MC는 누군가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함께하는 사람이거든요. 사명감도 있어야 하고 노력도 필요하죠. 그럼에도 꼭 MC라는 직업을 선택해야겠다면 기획성이나 차별성을 가지고 뛰어들었으면 좋겠어요. 처음부터 큰 무대에 설 수는 없어요. 지역행사라도 경쟁률이 엄청나죠. 저희처럼 뜻이 맞는 사람들과 팀을 결성해 거리공연을 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전국을 다녀 봐도 저희 같은 레크리에이션 버스킹팀은 본 적이 없거든요. 당장 큰 무대는 아니지만 거리에서 대중들에게 각인을 시켜놓으면 언젠가는 좋은 기회가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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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희 창원남자들 대표. / 창원남자들 제공

이 씨는 19살 때 MC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치열한 이 업계에서 8년이란 시간을 버텨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삶을 지켜봤다. 그 삶 속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공존했다. 이 씨에게 MC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조금 복잡한데. 한마디로 정의하면 '희로애락'인 것 같아요. 무대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노여움을 공유하죠. MC를 하지 않았다면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었겠어요. 사람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줄 수 있는 이 직업을 오래오래 하고 싶습니다."

인터뷰는 끝이 났다. 잠시 후 이 씨는 거리공연에 쓸 음향장비 구입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가야 했다. 자리를 뜨는 이 씨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어봤다.

"무대에 서고 싶은데 기회가 없거나 두려운 마음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노래, 춤, MC 등 어떠한 것도 좋습니다. 저희 팀이 가르쳐드릴 수도 있어요. 다른 지역에서도 부러워할 만한 그런 문화를 창원에서 만들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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