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와 함께하는 토박이말 맛보기

또 한 달이 지났군요. 날씨도 여름이 되어 이름이 '들여름달(5월)', '온여름달(6월)'이었다가 이제는 더위가 우리를 힘들게 하는 '더위달(7월)'입니다. 이달에도 알고 쓰면 좋을 토박이말들을 맛보시며 더위를 잊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실미지근하다

뜻: 더운 기운이 조금 있는 듯 마는 듯하다.

비가 그치고 나면 날이 더워질 거라는 기별을 들었는데 제가 있는 곳은 기별과 많이 다른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들여름달(5월)이 되고 이제 낮에는 여름 날씨처럼 느껴질 거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옷도 여름옷을 꺼내 입었지요.

그런데 여러 날 동안 이어지는 날씨는 마치 가을 날씨처럼 느껴집니다. 집 안이 실미지근해서 바람틀(선풍기)을 돌렸던 게 지난 이레(주)가 맞나 싶습니다. 자잘먼지(미세먼저)가 없어 좋다고 했는데 썰렁해서 문을 열어 놓을 수가 없었답니다. 얼른 철에 어울리는 날씨를 되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래

뜻: 한동네의 몇 집이 한골목이나 한 이웃으로 되어 사는 구역

밝날(일요일) 앞낮(오전)에는 집안 모임이 있어 아침 일찍 옛날에 살던 마을에 갔습니다. 둘레 사람들이 우러러보셨던 할아버지를 기리는 모임(유계)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모람(계원)들께 가든한 먹거리를 드리고 낮밥까지 드실 수 있게 해 드렸습니다.

할아버지의 삶과 뜻을 기리고자 지은 기림집(정각)은 제가 태어나 살던 마을에 있습니다. 한 오래에서 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스무 해가 넘었습니다. 그때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다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셨지요.

싱그럽다

뜻: 싱싱하고 맑은 내(향기)가 있다. 또는 그런 자리느낌(분위기)가 있다.

언제부터 내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잠을 깼을 때 밖에 비가 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가 오는 날 늘 그렇듯이 비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입니다.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를 자장노래 삼아 살짝 잠이 다시 들었는데 밖이 환해져 있었습니다.

늦은 게 아닌가 싶어서 얼른 자리에 일어나 보니 때새(시간)이 많이 흐르지는 않았고 어느새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혀서 밝아진 것이었습니다. 아침밥을 먹고 나가 보니 아직 구름이 다 걷히지 않았지만 구름 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해도 볼 수 있었습니다.

나가자마자 마신 숨씨(공기) 느낌은 말 그대로 싱그러웠습니다. 코가 싱싱하면서 맑은 느낌을 제대로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어릴 때 시골에서 느끼던 깨끗함과 거의 비슷했습니다. 바람이 불어서 더 싱그럽게 느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싹수

뜻: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 눈치=싹

올해도 이제 스무날 뒤면 가웃을 넘겨 지난 온 날이 남은 날보다 많아지게 됩니다. 요즘 제가 볼 때 토박이말에 여러 가지 싹수가 보여 더욱 기운이 난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온 보람인지 둘레에서 돕겠다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토박이말 맛을 알아가는 듯해서 기분이 좋습니다.

묻살이(식물) 생김새와 하는 일을 배운 뒤 알게 된 것을 가지고 토박이말 꾸미기를 했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하더라구요. 그것을 본 둘레 분들도 한결같이 아이들 솜씨가 놀랍다고 추어올려 주셔서 더 기뻤습니다.

오죽잖다

뜻: 여느 일이 못 될 만큼 변변하지 못하거나 대수롭지 아니하다.

지난 닷날 생각과 달리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비만 온 것이 아니라 날씨도 여느 때와 달라서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누리(우박)가 내린 곳도 있을 만큼 오락가락해서 더 그랬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밖에 나갈 일도 있고 쓰레기 가려 버리는 날이라 비가 그만 왔으면 했는데 제 바람과 아랑곳없이 비는 쉬지 않고 내렸습니다. 낮밥(점심)을 먹고 난 뒤에야 비가 거의 그쳐 마음을 놓나 했는데 뜻밖의 일이 벌어져서 바쁜 걸음을 쳤습니다.

돌림병에 걸린 아이가 있어서 겪배움(체험학습)을 갈 수 없게 되는 바람에 아이들이 울고불고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인 데다가 더 좋은 수를 찾으려고 머리를 맞대느라 뒤로 미루기로 했다는 것을 좀 늦게 알리긴 했지만 잘 마무리했습니다.

일꾼 뽑기(지방선거) 때문에 쉬는 날을 앞두고 있어서 더욱 그랬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느라 일꾼 뽑기에 못 가는 사람들이 없도록 쉬었는데 열에 다섯도 안 했다는 기별을 듣고 보니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참 일꾼을 뽑는 일이 오죽잖은 일이 된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쉬는 날로 만들어 줬는데도 왜 이렇게 안 하는 사람들이 많으냐고 아이들이 물으면 어떤 말을 해 줘야 할까 생각을 하니 막막하였습니다. 켯속을 알고 보면 저마다 그럴만한 까닭이 있을 테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일꾼으로 뽑히신 분들이 맡은 일을 잘해서 뽑아준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비손(무언가 이루어지기를 두 손을 비비며 바라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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