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재개발 아파트촌 변한 도심
원주민 쫓아내는 사업방식 바꿔야

대문은 철사로 걸어잠겼고, 골목마다 가재도구가 쓰레기와 뒤섞여 쌓였다. 담벼락이나 셔터엔 붉은 페인트로 번지수와 가새표, '공가'라고 크게 적혔다. 빈집 마당엔 풀이 무성하고, 주인 없는 무화과만 익어간다. 흔한 길고양이도 보이지 않는다. 간판은 그대론데 살았다는 흔적뿐이다. 좀비 영화에서나 본 듯하다. 핵전쟁 같은 대재앙 후 폐허가 된 회색도시가 이런 모습일까.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덕사거리에서 양덕광장으로 가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팔룡산 아래 동네는 재건축을 위해 철거를 앞두고 있다. 길 건너편에도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문 닫은 상점들에는 '출입금지'가 적힌 노란 딱지가 붙었다.

70년대 마산자유무역지역이 생기면서 40여 년 흥했던 동네다. 입주기업들에 다니던 사람들은 이 동네서 셋방을 살고, 시장에서 먹을거리를 샀을 것이다. 그러나 양덕종합시장을 끼고 올망졸망 살아온 집과 상점들은 철거되고 아파트촌으로 바뀐다. 최고 39층짜리, 2000가구에 가까운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계획이다.

점심시간 아이들 소리가 왁자지껄한 봉덕초등학교 정문 맞은편 문방구는 이주공고에도 버티며 계속 문을 열고 있다. 공윤자(69) 씨는 36년 동안 이곳에서 장사하며 4남매를 키웠다. 그는 "대한민국 법이 이럴 줄 몰랐다. 내 재산도 마음대로 못한다. 재건축 재개발한다 하면 머리 싸매고 다니면서 말리고 싶다"고 했다.

문방구, 학원, 살림집과 원룸이 든 3층 건물인데 조합에서 한 감정가는 3억 8000만 원이다. 31평짜리 아파트 한 채, 상가 하나 받을 수 있다지만 돈을 더 내놓아야 한다. 지금처럼 문방구 하면서 월세 받으면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 수 있는데 쫓겨날 판이다.

철거를 위해 쳐진 가림막 사이에 꽃집 한 곳이 남아 있다. 권정상(68) 씨는 세입자다. 15년 전에 건물을 사서 인근에서 하던 꽃집을 옮겨왔다. 집안 사정 때문에 2년 전 건물을 팔았다. 명도소송까지 당해 비우라는 계고장까지 받았다. 그는 "재개발 지역에는 이주비라도 있지만 재건축하는 여기는 돈 10원도 없다. 부수는 것은 똑같은데 우리나라 법이 개법인지. 억울해도 쫓겨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오래된 도시, 마산은 아파트촌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재개발·재건축이 진행 중인 단독주택 구역만 25곳. 이 중 5곳은 주민 반대가 거세 정비구역에서 해제됐고, 1곳은 소송으로 조합설립이 취소됐다. 진척이 빠른 곳은 입주를 앞뒀거나 공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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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지역마다 쫓겨나기 싫다는 원주민들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집 한 채 가지고 월세라도 받아먹고 살던 이들이 아파트 한 채 공짜로 준다고 해도 달갑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러나 낡은 것을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지어 올리는 게 옳은 양 '정비사업'이라는 이름과 다수 힘으로 '공익사업'처럼 강제 수용해버리는 게 현실이다.

50년 뒤 이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쫓겨난 사람들은 어디서 살고, 또 회색 콘크리트 아파트촌엔 누가 들어가서 살까. 인구는 계속 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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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건축을 위해 철거를 앞둔 창원시 마산회원구 팔용산 밑 단독주택구역, 빈 가게 셔트에 '공가'라고 적힌 글씨가 보인다. 이주기한이 지났지만 봉덕초교 앞 한 문방구는 계속 문을 열고 있다. /표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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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건축을 위해 철거를 앞둔 창원시 마산회원구 팔용산 밑 단독주택구역, 골목마다 가재도구와 쓰레기가 뒤섞여 쌓여 있다. /표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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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개발이 진행 중인 창원시 마산회원구 마산자유무역지역 후문 앞 양덕종합시장 인근 빈 점포에 '출입금지'라고 적힌 노란 딱지가 붙어 있다. /표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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