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은 시련에도 결국 선택은 사각링 안

김해 대곡중학교 김효현 복싱 코치가 이은규(15) 학생을 '될성부른 떡잎'으로 판단한 건 실수를 통해서다. 은규 군에게 복싱 동작 반복 연습을 시켜놓고 김 코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김 코치는 4시간이 지난 후 땀범벅이 된 채 여전히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은규 군을 보고 '아, 즐기고 있구나! 이 녀석은 되겠다!'고 생각했다. 은규 군은 타고난 선수라기보다 노력파 선수다. 위 경련에도, 발뒤꿈치 뼈 조각 조각을 맞추는 대수술을 마치고도 은규 군은 사각 링 안에 있다. 그를 김 코치는 "의지 하나로 끝까지 갈 무서운 학생"이라며 성공을 확신했다.

처음부터 오로지 복싱

예전 같지 않은 복싱 인기에 김 코치는 연말이면 대곡중학교 복싱부로 한 선수라도 더 영입하고자 초등학교 졸업반 상담을 한다. 2015년 김해 화정초등학교 졸업예정자 중 운동에 관심이 있는 학생 8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복싱을 해보겠다고 손을 든 학생은 은규 군이 유일했다. 김 코치는 홀로 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선 은규 군 첫인상을 '깡마른 체구·선한 눈빛'으로 기억했다. 큰 기대를 주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은규 군은 마인드(긍정성)와 의지가 남달랐고 1년 만에 제46회 소년체육대회 1·2차 경남대표 선발전 1위를 기록했다.

은규 군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전 복싱선수 시합을 보고 복싱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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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규 김해대곡중학교. / 김구연 기자

"상대방 주먹을 피하면서 자신의 주먹으로 상대방을 가격하는 복싱 선수가 그냥 멋있어 보였어요. 만약 중학교에서 복싱할 기회가 없었다면 체육관을 찾아 나섰을 겁니다."

시련… 또 시련

선천적으로 위가 좋지 않은 은규 군은 작년 전국소년체육대회 하루 전날 위 경련을 일으켜 쓰러졌다. 입원으로 결국 시합을 치르지 못했다. 체급을 맞추고자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탈이 났고, 큰 대회를 앞두고 링을 오를 기회마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경험하고 은규 군은 유독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고 이를 핑계 삼아 연습을 빼먹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고 코치 지도에 누구보다도 잘 따랐다.

김 코치는 "집에 가서 팔 굽혀펴기, 배 운동을 하라고 지도하면 곧 죽어도 그 수를 다 채우고 온다. 아침에 근육을 보면 알 수 있다. 모든 운동이 마찬가지지만 복싱 역시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운동이다. 은규는 운동과 노력으로 극복하려는 의지가 누구보다 강하다"고 평가했다.

2017학년도 초·중학생 종합체육대회 1위, 대한복싱협회장배 대회 3위, 2017학년도 주니어국가대표선발전 3위 등이 은규 군 활동 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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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규 김해대곡중학교. / 김구연 기자

하지만, 시련은 또 찾아왔다. 은규 군은 작년 12월 3층 높이에서 떨어지면서 발을 디뎌 큰 수술을 했다. 발뒤꿈치 뼈가 부러져 3개월간 운동을 쉴 수밖에 없었다. 이미 제47회 소년체육대회 1차 경남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한 상태였다. 다행히 2차 선발전이 한 달 연기됐고, 재활 치료를 받은 지 한 달도 안 된 상황이었지만 은규 군은 도전을 고집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아파 학교를 쉰 적이 있어요. 신발이 무거워 발을 들기 어렵다고 느껴질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근육이 굳을까 재활 치료에 집중했습니다. 중학교 때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1차 전 때 은규 군의 압도적인 경기력에 52kg급 2차 출전 선수가 한 명도 없어 자동 선발되는 운을 덤으로 얻었다.

그렇게 전국소년체육대회에 참가했지만 은규 군은 아쉽게 8강에서 탈락했다. 발뒤꿈치 통증으로 스텝이 느렸고 판정패를 당했다.

김 코치는 "8강에서도 판정승을 기대할 만큼 악조건 속에서도 잘 싸웠다. 잘하는 친구인데 중

요 경기를 앞두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면 눈길이 더 가는 친구다. 두 번의 큰일을 겪으면서 몸 관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빨리 깨닫고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한 만큼 앞으로 승승장구할 것"이라며 무한 신뢰를 보였다.

빠른 판단력이 강점

은규 군의 기술적 장점은 '센스'다. 치고 빠지는 상황 판단을 잘한다는 것이다. 이는 빠른 스텝이 바탕이 됐다.

"상대 선수의 주먹이 나오는 타이밍에 피하면서 치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막상 링 안에서는 아무 생각이 안 들어요. 상대 선수 손이 나올 것 같은 감이 있을 때면 거기에 손을 뻗습니다. 그런데 상대방 손이 안 나오면 다시 자세 잡기를 반복해요. 모르겠어요. 모든 것이 자동입니다."

은규 군이 좋아하는 선수는 기에르모 리곤데우스다. 자신과 비슷한 아웃복서 스타일로 유튜브를 통해 기술을 분석하고 닮아가고자 연습하고 있다. 아웃복서는 복싱에서 인파이터와는 반대로, 상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적절한 타격을 노리는 선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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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규 김해대곡중학교. / 김구연 기자

은규 군에게 복싱이란 무엇이냐고 묻자 "전부"라고 답했다. 메달을 땄을 때 성취감 등 자신을 돋보이게 해주는 게 매력인 복싱을 통해 자존감을 키워가고 있다.

멋있어 보여 시작한 복싱은 이제 "복싱 아니면 할 게 없다"고 말할 정도로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은규 군의 10년 계획은 경남체고-용인대학교-올림픽 국가대표 선수-실업팀 선수 순이다. 말끝을 흐리던 이전 대답과 달리 단호한 표정이다.

3년간 은규 군을 지켜본 김 코치도 은규 군 미래를 단호하게 단정 짓기는 마찬가지다. 김 코치는 "여러 시련을 겪으면서 더 다부지고 의지가 확고해진 은규 군이 정상에 선다는 것을 확신한다. 머지않아 국가대표를 달았다고 인사하러 올 것 같다"고 말했다. "다방면으로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말로 설명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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