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럽게 고민하는 일
창원대 원도심 기록 작업
'구 창원시' 주제로 전시
과거 되짚고 문제점 지적
미래의 발전 방향도 제시
카페 운영하는 이태곤 씨
진주 동네지도 제작 제안
로컬 콘텐츠 만들기 시동

저마다 이유로 도시를 기록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도시의 미래 모습을 상상해보려고 역사를 모으는 대학생들,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동네를 그리려는 주민들이다. 이유도 방식도 다르지만 담벼락 너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사라지는 것, 사라질 것을 남기는 일. 도시의 재발견이다.

◇"기록은 미래를 상상하는 일"

문화 지향적인 도시를 고민해 원도심 문화를 기록하는 '다큐멘트 프로젝트'가 창원대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번에는 구 창원시다. 창원대학교 문화예술융합인재양성사업단(이하 사업단)이 진해, 마산에 이어 창원을 기록했다.

사업단은 창원대 미술학과·문화테크노학과·무용학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2010년 통합한 창원시를 진해, 마산, 창원으로 나눠 역사와 인물, 문화적 특성을 조사해 전시 형태로 발표하고 있다.

지난 2016년 '플랫폼'이라는 이름으로 진해전을 했고 지난해는 마산전 '모퉁이'를 열었다.

올해는 '포용의 도시 설계서'라는 이름을 내걸고 창원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봤다.

학생들은 오래전 유적지의 모습부터 현대의 도시로 변모하는 과정을 추적했다. 자료를 꼼꼼하게 살폈고 사람들을 만났다. 도시의 낮과 밤을 가만히 들여다보기도 했고 한창 개발 중인 구역의 미래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이러한 작업은 지난달 창원대 조현욱아트홀에서 △창원의 역사적 사료 △창원의 역사와 지리 △도시 창원 △창원의 인물 등으로 나눠 전시됐다.

창원대 조현욱아트홀에서 열린 '포용의 도시 설계서'전 전시장 한가운데 걸린 현수막 모습. /이미지 기자

사업단은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되짚고 남기는 데 그치지 않았다. 창원시가 '문화를 품은' 도시로 나아갈 수 있는 여러 제안을 내놓았다. 이에 앞서 문제점도 과감하게 지적했다.

'통합의 과정이 상향적 풀뿌리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방식으로 다소 졸속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통합의 정당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영속적인 뿌리로 남아 있게 됨. …또한 시청·야구장을 비롯한 대형 시설의 균등 배분이 곧 균형 발전이라는 관점이 지배함으로써 통합 후 갈등의 기초가 됨.'

전시장 한가운데 커다랗게 걸린 현수막에 적힌 글은 학생들이 치열하게 고민한 도시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시민들에게 다가가 현재 지역 주민이 바라는 도시의 발전 방향에 대해 묻고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며 문화적인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이는 '창원 중앙역을 중심으로 한 문화환경조형 제안서'로 완성됐다.

사업단 참여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 등이 함께한 이번 제안서에는 창원 중앙역에 걸맞은 조각품 8점이 제시됐다. 창원 중앙역 모형 옆에 세워진 '배', '공허', '삼색고양이' 등 작품은 삶이 녹아있는 문화예술의 미래를 상상케 했다.

김홍진 문화예술융합인재양성사업단장은 "학생들이 직접 미래의 제안서를 만들었다. 창원중앙역은 창원의 상징적·문화적 관문으로 우선 개발될 필요가 있다. 전국 어디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도내 청사들과 용지호수, 상남시장을 거쳐 진해·마산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 학생들은 창원이 우선 갖추어야 할 필연적 문화 공간으로서 중앙역을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사업단이 지난 3년간 벌였던 도시 기록은 예술과 문화가 미래의 부와 연결되어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들의 다큐멘트가 현실로 발현되는 날, 머지 않았다.

창원대 조현욱아트홀에서 열린 '포용의 도시 설계서'전 모습. /이미지 기자

◇"동네 지도 만듭시다"

진주에서는 카페 주인장이 동네 아카이브를 해보자며 프로젝트 팀원을 모집하고 있다.

도시달팽이를 운영하는 이태곤(37) 씨가 지난달 자신의 SNS에 '그림으로 진주찾기'라는 이름으로 최근 동네 지도, 마을 잡지를 만들자고 알렸다.

도시공학·설계를 전공한 이 씨는 올해 진주 펄짓재작소의 소장으로 활동하는 김군미 씨가 참여한 전북 남원시 마을 지도를 보고 '어서'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단다.

"이 지도 좀 보세요."

지난달 22일 도시달팽이에서 만난 이 씨가 펼쳐놓은 것은 '산책하기 좋은 대전 원도심' 지도였다. (사)대전문화유산울림 등이 만든 지도는 대전역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뻗은 역전시장부터 대전천, 선화동 등을 명소, 인물 등으로 나눠 실감 나게 기록해놓았다.

도시달팽이에서 열린 박조건형의 드로잉 수업 모습. /도시달팽이

"동네 지도를 만들고 싶다고 소문을 내니 많은 분이 다리를 놓아주고 잘된 결과물을 보여주더라고요. 대전에 '도시여행자'라는 서점이 있어요. 그곳이 내건 기치가 제가 추구하는 겁니다."

진주에서 '로컬 콘텐츠',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데 앞장서고 싶다는 이 씨는 도시달팽이를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진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공방으로 키우고 싶다. 지역을 사랑하는 누구나와 협업해 진주를 기록하고 아주 사적이라도 결과물을 내놓는 일. 그가 바로 꿈꾸는 미래다.

이 작업에 제일 먼저 동참하는 이는 도시 일러스트레이터로 알려진 박조건형 작가다. 박조건형 작가는 7·8월 두 달 동안 도시달팽이에서 일상 드로잉을 가르친다. 작가는 지난 5월 작업실이 있는 양산과 진주를 오가며 도시달팽이에서 드로잉 수업을 열기도 했다.

박조건형의 드로잉 수업 참가자 모습. /도시달팽이

앞으로 이 씨는 일상 드로잉을 배운 시민들과 구 진주역에서부터 망경동 일대를 기록할 계획이다. 먼저 소소책방, 뭉클게스트하우스 등 문화 공간을 소개한다. 도시달팽이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곳, 지역에서 '문화스럽게' 살고자 치열하게 일상을 살아내는 이들을 먼저 만나 그들 이야기를 듣는다.

"동네 지도가 완성된 것도 아니고, 그저 시작한다는 말 한마디를 했는데 많은 분이 응원해주어 솔직히 놀랐습니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죠. 아, 다들 자신이 살아가는 터전에서 스스로만의 것을 가지고 싶구나 하는 마음이겠죠. 하나로 통일된 상품의 시대는 갔다고 생각해요. 아주 사적일지도 모르는 동네 지도, 기대가 됩니다."

동네 지도 제작에 참여하고 싶다면 도시달팽이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을 참고하면 된다. 누구나 문을 두드리면 된다. 문의 010-4000-4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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