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금융으로 조선업 도산 잇따라
회생의 대가, 노동자 목숨 아니길

경남 조선산업은 지난 10여 년간 거의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다른 지역보다 성동조선이 위치한 통영과 고성지역의 피해는 남다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지역경제와 산업적 측면을 살펴보겠다며 뜬금없는 재실사와 산업부 장·차관을 차례로 사업장에 보내는 요식행위를 거쳐 성동조선을 법정관리로 보내겠다고 올해 초 발표했다. 돌이켜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조선산업에 대한 발표마다 성동조선에는 악재로 작용했다. 2017년 각고의 노력으로 겨우 수주한 5척의 선박을 건조하기 직전에 재실사를 발표해 정상적인 영업을 하지 못하게 하였고 조선산업 지원정책을 발표하면서 대형조선소만 수주가이드라인 기준을 낮추어 주는 등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행보를 보여왔다.

특히 언론을 통해 중견조선소 처리방안을 발표하면서 '지역경제와 산업적 측면을 고려해 STX조선은 남기기로 했다'는 발표 장면에서는 실소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기간산업으로서의 조선산업과 중형조선소의 역할, 그중에 성동조선의 규모와 설비능력,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제대로 아는 정부 관료가 과연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성동조선이 법정관리까지 오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왜 노동자들이 수년간 길거리에서 투쟁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조선업 최고의 호황기였던 2000년 초반 설립되어 급속한 성장을 거듭하다가 2000년 세계 금융위기를 맞아 1조 5000억 원이라는 치명적인 손실을 보고 2010년부터 채권단의 관리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 치명적인 손실을 입힌 것은 다름 아닌 시중은행이 선수금환급보증(RG)의 대가로 반강제적으로 가입시킨 일명 '꺾기' 상품이었던 파생금융상품 키코(KIKO)였다. 최근 전 대법원장의 정권과의 판결거래라는 초유의 사법사태 속에 키코 판결도 포함되어 있을 만큼 엄청난 사건이었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키코에 가입했던 20개가 넘는 중·소형조선소가 도산하면서 조선산업 생태계 자체가 무너지다시피 했다. 성동조선은 이후 시황 악화와 연계한 국책은행의 금융 중심 정책으로 채권 회수에만 집중하면서 영업활동이 대폭 위축되면서 결국 인위적인 법정관리까지 오게 된 것이다.

작금의 조선업 구조조정과 성동조선 법정관리의 원인은 시중은행의 금융사기, 금융당국의 관리 부재, 국책은행의 관리실패, 정부의 산업정책 부재로 귀결된다. 이른바 관치금융 때문에 경쟁력 있는 중소조선소 수십 개가 도산해서 한 국가의 기간산업이 뿌리째 흔들리다시피 한 엄청난 사건임에도 그 누구도 사태의 본질을 알려고 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조선산업을 사양산업, 혈세 낭비라고 매도하며 구조조정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단언하건대 지금 정부가 이대로 조선업 구조조정을 졸속으로 진행한다면 노동자들이 수십 년 동안 피와 땀으로 이룩한 세계 1위는 영원히 사라질 것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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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관리 이후 성동조선에 800명의 대량 정리해고가 법원의 허가 하에 진행되고 있다.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죽음의 외주화이자 쌍용차 이후 근 10여 년 만의 정리해고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과도 정면 배치된다. 대통령과 지자체장들은 조선산업과 성동조선을 회생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 회생이 노동자들의 목숨의 대가가 아니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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