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의 수청 거부한 아내 억울한 옥살이 지켜보며 화폭에 꼭꼭 담은 그리움
꿈에서만 해후하는 남편, 새벽만 피는 나팔꽃 같네

중국에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착한 화공(화가)이 살았는데, 그에게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어요.

어느 날, 그 고을의 성주가 말을 타고 이 마을, 저 마을로 순시를 다니다가, 우연히 화공의 마을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마침, 화공의 부인이 봄을 맞아 화사한 옷으로 차려입고, 골목길을 가다가 성주의 일행과 마주치자, 화공의 부인은 수줍은 얼굴을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성주가 지나가기를 기다렸어요. 길가에 고개를 다소곳하게 숙인 화공 부인의 얼굴이 성주의 눈에 띄었어요.

성주는 고삐를 당겨서 말을 세웠어요. 성주의 눈이 화공 부인의 얼굴에 화살처럼 꽂히더니, 성주의 눈에 묘한 웃음이 스쳐 지나갔어요.

"그대는 누구인고?"

"예, 소생은 화공의 아내 소희라고 하옵니다."

"그대, 나와 성으로 들어가 나의 곁에서 나의 시중을 드는 것이 어떠한고?"

화공의 아내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단호하게 거절의 뜻을 말했어요.

"소생은 화공의 아내이옵니다. 한 지아비를 섬기는 아내입니다."

화공의 아내가 첫말에 성주의 청을 정중하게 거절하자, 성주는 아주 노한 얼굴이 되어 성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성으로 돌아온 성주는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심복 포졸 한 사람을 불러, 그 심복의 귀에다 대고 무어라고 속삭이었어요. 포졸도 음흉한 웃음을 삼키더니 말을 타고 곧장 화공의 집으로 달려갔어요.

포졸은 화공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무섭게 윽박지르며 고함을 질렀어요. 화공과 부인은 영문도 모르고 벌벌 떨며 포졸의 말을 들었어요.

"화공의 아내, 소희에게 묻는다. 네가 작년에 마을 앞 참외밭 근처에 간 적이 있지?"

"예, 예 우리 마을 사람치고 그 앞을 지나가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알았다. 그 참외를 도둑맞았다는 제보가 있어, 너를 불러 조사할 일이 있으니, 일단 성 안에 들어가자."

화공의 아내는 무서운 포졸에게 끌려 성 안으로 들어갔어요. 성에 들어가자, 성주는 참외밭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고, 자기의 시녀로 들어올 것을 강요했어요. 화공의 아내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이를 완강히 거부했어요.

"한 지아비를 섬기는 것이 아녀자의 도리이옵니다."

"그래. 네 생각이 바뀔 때까지 감방에 있어야겠구나."

그날부터 화공의 아내는 성의 가장 높은 감방에 갇히게 되었어요. 무서운 쇠창살 감방으로 밖을 겨우 내다볼 수 있는 높은 곳이었으며, 감방이 성의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아찔했어요.

"아, 나를 이 감방에 가두어 둘 셈이구나. 우리 집에 가고 싶어."

한편, 아내가 포졸에게 잡혀가자, 착한 화공은 어찌할 줄을 몰랐어요. 아내가 성의 가장 높은 감방에 갇혔다는 말도 듣고, 잠도 잘 수 없었고, 먹는 것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어요.

"아, 나의 사랑하는 아내를 보고 싶구나. 만날 수도 없고…."

화공은 종이를 펴놓고 보고 싶은 아내의 얼굴을 그림으로 그렸어요. 얼굴, 이마, 눈썹, 코, 입을 하나씩 그릴 적마다 화공은 눈물을 흘리며 붓끝을 놀렸어요. 그림을 다 그린 화공은 아내가 곁에 있는 것처럼 아내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을 두 팔을 벌려 안아보기까지 했어요.

화공은 아내의 그림을 들고 아내가 갇혀 있는 성으로 갔어요. 화공은 아내의 그림을 가슴에 안고 까마득히 보이는 높은 쇠창살 문 속의 아내를 생각하며 소리 질렀어요.

"여보, 나 여기 와 있어."

화공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내가 갇혀 있는 창가에까지 들리지 않았어요. 그 소리가 들려도 그의 아내가 갇혀 있는 감방은 얼굴을 밖으로 내어 내려다볼 수 없는 아주 무서운 쇠창살이었어요.

화공은 며칠을 굶어가며 높은 성 위의 감방을 쳐다보고 목이 쉬도록 그의 아내를 불렀지만 아내의 응답도 얼굴도 볼 수 없었어요. 그러다 그는 지쳐서 아내의 그림을 성 아래 땅에다 묻었어요. 그러다 며칠 후, 화공도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어요.

한편, 성의 가장 높은 감방에 갇혀 있는 화공의 아내는 밤마다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밤마다 남편이 꿈에 나타나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애절하게 말을 했어요.

"사랑하는 아내여, 나는 밤마다 당신이 보고 싶어 성벽을 타고 오르는데, 당신을 만날 즈음에 햇살이 퍼져 그냥 돌아서게 되오."

화공의 아내는 꼭 같은 꿈을 밤마다 꾸게 되자, 꿈속의 남편이 너무도 보고 싶어 새벽에 무서운 쇠창살 틈으로 간신히 얼굴을 밀어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았어요.

"아, 저 아래 꽃 넝쿨이 성벽을 간신히 타고 올라오고 있구나. 바로 그대의 목소리였군요."

"그래요. 나는 당신이 있는 그 높은 성벽으로 이슬 머금고 기어오르고 있다오. 그대가 보고 싶어 목이 쉬도록 이렇게 새벽마다 소리를 질러요."

아내는 그날부터 이른 새벽마다 성벽을 타고 오르는 꽃송이와 얘기를 나누었어요. 그 꽃은 아내의 목소리가 크게 듣고 싶고 또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전하고자 꽃 모양을 나팔 모양으로 만들었어요.

새벽마다 화공과 그의 아내 소희의 사랑을 담은 이야기가 오가다 동산에 해가 뜨며 혹시라도 성주에게 들킬까 싶어 그들은 이야기를 멈추고 입을 힘없이 다물어 버렸어요.

요즘도 나팔꽃은 새벽에 피어 해가 뜨면 오므라들지요. 나팔꽃이 피는 아침에 나팔꽃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여보세요.

나팔꽃(Morning Glory)은 기쁨, 영광, 결속, 덧없는 사랑의 꽃말을 가지고 있어요.

/시민기자 조현술(동화작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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