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몸 따라 마음마저 분주한 유월
적당한 때 온 장마 쉼·힘 주니 신비

요즘은 아침 네 시면 논밭에 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날씨가 점점 더워지다 보니 농부들은 아침을 일찍 깨운다. 나는 아침 여섯 시쯤에 밭에 간다. 바쁜 농사철에 날마다 일을 하다 보니, 여섯 시보다 더 일찍 밭에 가는 건 힘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자'는 마음으로 더 일찍 일어나려고 애쓰지 않는다. 농사가 즐거우려면 몸을 잘 살피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6월에는 마늘과 양파와 감자를 거두고, 그 자리에 콩과 수수와 깨를 심는다. 바쁘게 움직이는 몸을 따라 마음이 분주해지기도 하지만, '곧 장마가 오면 한숨 쉬어가겠지' 하면서 힘을 내고 있다.

6월 23일은 감자 캐는 날이었다. 장마가 오기 전에 감자를 캐야 한다는 소식에 토기장이 교회 식구들이 일손을 보태어주셨다. 한 발짝 움직이기도 싫은 더운 날씨에 웃는 얼굴로 감자밭을 찾아온 식구들 얼굴이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감자를 캐기 시작하니 여기저기에서 "이크, 에이, 아!"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호미로 감자를 찍는 소리다. 사람마다 놀라는 소리가 달라서 누가 감자를 찍었는지 보지 않아도 다 안다. 감자 하나 찍을 때마다 얼마나 미안해하시는지, 나도 감자를 찍으면 일부러 "아!" 하고 큰소리를 냈다. 일이 척척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 손이 무섭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감자를 캐고, 크기대로 나누어 담고, 손수레에 실어 옮기고. 서로 손발이 잘 맞았다. 동글동글한 감자들이 떼구루루 굴러 밭고랑에 모여 있는 모습과 감자밭에 모여 앉은 사람들이 참 예뻤다.

여럿이 모여 일을 하니 감자 캐는 날이 마치 소풍 같았다. 감자를 부지런히 캐고 있는데 "밥 먹고 합시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점점 뜨거워지는 햇볕을 피해 원두막에 둘러앉았다. 소풍날 빠질 수 없는 김밥, 시원한 수박, 집에서 구운 우리밀 빵, 밭 가에 있는 뽕나무에서 딴 오디와 함께 원두막에 맛있는 점심 밥상이 차려졌다. 동그랗게 앉아 점심밥 나누어 먹는 모습이 꼭 동화처럼 평화로워 보였다. 함께 땀 흘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밥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밥맛 좋고, 일할 맛도 나는 맛깔스러운 하루였다.

뜨거운 날씨에 밭에 쪼그리고 앉아 감자를 캐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모두 끝까지 정성을 다해 주셨다. 덕분에 지치지 않고, 즐겁게 감자 캐는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비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장마 기간에 몸과 마음을 잘 쉬어야겠다. 다시 힘을 내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말이다. 사실 농부가 되기 전에는 별생각 없이 장마를 보냈다. 발이 젖는 걸 싫어했던 나는 장마가 없었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농부가 되고 보니 장마 오는 때가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딱 적당한 때에 자연과 농부에게 쉼을 주고,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주니 말이다.

김예슬.jpg

집에 돌아와 감자를 쪄 먹어 보았다. 고구마는 시간이 지나야 제대로 맛이 들지만 감자는 캐서 바로 먹어도 맛이 좋다. 우리 감자는 비닐을 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농사를 지어서 더 깊은맛이 난다. 식구들 모두 감자를 먹고 "이 맛이지!" 하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감자를 먹으면서 크고 예쁜 것보다 '제 맛'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먹은 감자처럼 나도 '제 맛'을 잃지 않고 살고 싶다. 소박하지만 맛깔스러운 행복을 함께 누리면서 말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