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오토바이 타고 유라시아 횡단] (9) 키르기스스탄
'중앙아시아의 스위스' 천혜의 자연·빼어난 경관 자랑
바다 같은 호수 이스쿨서 눈 덮인 산 보며 물놀이 만끽
전통천막집 유르트서 머물러…말젖 먹고 말타기 체험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고 불릴 정도로 만년설이 덮인 고산지대의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약 200㎞를 달려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에 도착했다. 비슈케크에는 한국에서 알게 된 지인이 한 명 있는데 우리가 도착했다고 연락하니 때마침 다른 도시로 출장 중이었다. 그를 만나지 못해서 아쉽지만 그의 소개로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호반'이라는 한국식당을 찾았다. 한국에선 대중적인 음식이 여행하다 오랜만에 먹으면 정말 특별한 음식이 된다.

식당 사장님은 원래 강원도 춘천에서 식당을 운영했는데 10년 전 이곳에 정착했다. 식당 이름이 호반인 것도 호반의 도시 춘천 출신이라 그렇다고.

아직 키르기스스탄은 일부 공무원이나 관료의 부정부패가 남아있다고 한다. 그들은 식당에 들어와 음식을 먹고 음식값을 내지 않고 나가는 일이 많다고.

타국에 와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묵묵히 열심히 일을 하며 사는 것 같다. 아들 지훈이와 나는 식당 사장의 집에서 이틀간 신세를 졌다. 이틀을 쉬면서 이곳 교민회 사람들과 함께 비슈케크 근처를 구경하였다.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눈 후 다시 짐을 챙겨 키르기스스탄에서 제일 큰 호수인 이스쿨로 향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제일 큰 호수인 이스쿨에서 아들 지훈이와 현지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여기 언어로 '호수'라는 단어 뒤에는 꼭 '쿨'이나 '콜'이라는 단어가 붙는 것 같았다. 호수 건너편에는 아주 높은 산들이 쭉 이어져 있다. 그것은 중국과 국경을 나누는 '천산산맥'이다. 산 정상에는 녹지 않은 눈들이 쌓여 있어 장관을 이룬다.

몽골에서는 전통천막집을 '게르'라고 하지만, 이곳에서는 '유르트' 또는 '유르타'라고 불렀다. 몽골 게르와는 조금 다른 게 지붕 한가운데 동그란 원형 안에 우물 정(井) 자 모양의 나무 지지대가 있는데, 키르기스스탄의 국기 모양 안에도 태양을 상징하는 똑같은 문양이 들어가 있다. 이스쿨에 도착해서 강변에 늘어선 호텔도 많았지만 우리가 찾아간 곳은 호수 옆에서 현지인들을 상대로 숙박업을 하는 유르트였다. 유르트에서 하룻밤 묵는 가격은 우리나라 돈 1만 5000원 정도였다. 한 채 전체를 대여하는 비용이라 여러 명이 함께 자도 지급하는 돈은 똑같았다.

송쿨에서 우리를 초대한 주르마 가족의 유르트.

유르트 주인 아주머니에게는 아북이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었다. 아북은 수도인 비슈케크에서 대학에 다니는데 지금은 방학이라 집에서 엄마 일을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항상 저녁 식사를 하기 2시간 전쯤 구운 빵과 '차이'라는 차를 아북에게 간식으로 내어줬다. 아북은 그때마다 우리를 불러 함께 먹자고 했다. 차이는 한국에서 본 홍차와 비슷해보였다. 설탕 또는 딸기 같은 열매 잼을 섞어 먹으면 아주 달고 맛있었다.

아북에게는 지훈이 또래의 사촌 동생이 여러 명 있었다. 지훈이는 아북 사촌 동생들과 함께 동네의 여러 아이들과 축구도 하고 배구도 하고 신나게 물놀이도 하며 재밌게 놀았다. 세계 어디 가더라도 아이들은 말이 안 통해도 잘 어울려 논다.

저 멀리 눈이 쌓인 산이 보였지만 춥거나 덥지 않고 온도가 딱 좋았다. 달콤한 휴식을 위한 이틀의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갔다. 우리는 다시 '송쿨'이라는 호수를 향해 길을 나섰다. 비탈진 비포장 산길이 이어졌다. 이스쿨이 해발 1500m 높이에 있는 호수였다면, 송쿨은 자그마치 높이가 해발 3500m에 있었다. 아찔한 절벽을 옆에 두고 산 사이로 난 좁은 길을 조심조심 올라갔다. 한여름인데도 주변에는 녹지 않은 흰 눈이 남아 있었다. 드디어 송쿨 호수가 나타났다.

이런 곳에는 마을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숙소 찾기도 어렵다. 나는 '텐트를 쳐야 하나. 아니면 현지인 유르트에 가서 재워 달라고 해야 할까' 고민이 됐다. 그때 눈앞에 길을 가로지르는 개울이 나타났다. 건너기 전 깊이를 가늠하고자 오토바이를 잠깐 세워뒀다. 그런데 그만 오토바이가 갑자기 균형을 잃고 넘어져 버린 것이다. 아마도 바닥이 물렁물렁해서 그랬던 것 같다. 넘어진 오토바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짐을 다 풀어야 한다. 엄두가 나지 않아 망설이고 있는데 저 멀리서 말을 탄 두 사람이 달려왔다. 그들이 도와준 덕분에 짐을 풀지 않고 쉽게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자신의 유르트에서 재워줄 터이니 따라오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잠자리 때문에 고민 중이었는데 무척이나 감사했다.

두 사람도 우리처럼 부자지간이었다. 아들은 지훈이보다 2살 많은 나이였다. 이름이 주르마라고 했다. 주르마는 이곳에서 자라서 그런지 말을 정말 잘 탔다. 말에 쉽게 오르내렸고 자유자재로 다뤘다. 주르마 집엔 말들이 참 많았다. 한 어미 말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들을 살뜰하게 보살피고 있었다.

한번은 주르마의 어머니가 말 젖을 짜러 간다고 해서 따라갔다. 아주머니는 망아지에게 먼저 어미젖을 물리더니 재빨리 떼어냈다. 그리고 바로 젖을 짰다. 어미 말은 아직 새끼가 젖을 무는 줄 알게 하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말 젖을 맛보게 해주셨다. 우유는 많이 먹어봤지만 말 젖은 처음 마셔봤다. 바로 짜서 그런지 따뜻하고 고소했다.

아들은 이스쿨에서 동네 아이들과 축구도 하고 배구도 하고 재밌게 놀았다.

지훈이는 몽골에서 말을 많이 타봐서 그런지 이젠 말을 몰고 달려갈 줄도 안다. 따로 승마학교에서 배운 것도 아니고 오로지 여행하며 잠깐씩 놀면서 배운 것이 제법 몸에 익숙해진 것 같다. 주르마 집에는 당나귀도 있었다. 당나귀는 말보다 작아 올라타기가 쉬웠다. 하지만 다루기가 어려웠다. 앞으로 가자고 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주르마가 달려와 뭐라고 소리를 치니까 그제야 천천히 조금씩 움직였다. 당나귀는 말과 달리 행동이 느렸다.

어느덧 밤이 됐다. 한낮에는 기온이 30도까지 올라갔지만 밤에는 영하 기온으로 떨어졌다. 일교차가 상당했다. 높은 곳에서 올려다본 밤하늘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무척 아름다웠다. 주위에 도시가 없으니 다른 어떤 불빛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오직 밤하늘의 별들만 반짝였다. 몽골에서도 밤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있지만 그땐 보름달이 있어 여기만큼 반짝이지는 않았다. 이곳 키르기스스탄 송쿨에서 바라본 별은 몽골에서 본 것보다 적어도 10배는 더 밝게 빛나 보였다.

/글·사진 시민기자 최정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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