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제' 해결 원리 알면 생각 달라져
읍면동사무소 보조기구서 변신 꾀해

'자치'란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 귀찮아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편입니다. 아파트자치요? 성가십니다. 집에 가면 다리 뻗고 늘어지면 그만이지 무슨 자치예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또 뭐 하자 그러는 게 귀찮기만 합니다. 또 읍면동마다 주민자치위원회니, 주민자치센터니 하는 것도 미덥지 않습니다. 어떻게 뽑혔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 행사, 저 행사 얼굴 내미는 게 의심부터 듭니다. "저 양반, 다음에 시의원 나오려고 저러는 거 아이가?"

그렇게 '귀차니즘'에 빠진 저를 되돌아본 계기가 있었습니다. 지난 20~21일 사천 남일대에서 열린 경상남도주민자치회 워크숍이었는데요. 실제 활동사례들이 솔깃하더군요. 창원시 성주동의 '사교육비 부담 던 토요프로그램'과 '실버라인댄스 등 노인건강프로그램', 진주시 초장동의 '안전한 통학로 옐로카펫'과 '안전지도 앱(APP) 제작', 거창군 위천면의 '위천스토리 벽화그리기' 등등….

"주민자치란 마을의 일을 스스로 처리하는 일"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설명을 들었을 때 불현듯 떠오른 게 있었습니다. 지방선거 날이었던 13일 양산시 소주동 천성리버타운 19층에서 불이 나 방안에 있던 ㄱ(53) 씨가 숨진 사건이었습니다. 문제는 화재가 발생했는데도 화재경보기와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는데요. 그 기사를 읽고 저는 "나도 20년 된 아파트 18층에 사는데 화재경보기가 울리는지,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는지 알고 있기나 하나?"라는 반성을 했습니다. 꾸준히 아파트자치회에 참여해왔다면 묻거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겠죠.

요즘 서울시는 주민자치위원회를 진전시킨 '서울형 주민자치회' 사업을 합니다. '주민총회'란 말이 나오더군요. 주민총회라니, 그게 가능해? 지금처럼 주민자치위원장을 읍면동장이 임명하는 게 아니고, 주민총회에서 뽑는답니다. 규칙도 직접 만들고, 사업결정도 한다는군요. 소속 동이나 구청 공무원들은 뭘 하냐고요? 주민이 자치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군요. 이거, 우리가 지금껏 들어오던 주민자치위원회하고는 다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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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주민자치를 귀찮게, 우습게 여기는 사이 예전 읍면동사무소 보조기구였던 주민자치위원회는 주민자치회로 변신을 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을 거두지 못한 게 있습니다. 특히 경상남도주민자치회 워크숍에 참석한 240명의 도내 읍면동 주민자치위원장들의 정체였습니다. "도대체 뭐하는 분들이지?" "자기 돈 내가면서 무슨 의도로 주민자치를 하려고 하는 거지?"

유인석 경상남도주민자치회 회장이 대답을 했습니다. "권력욕? 명예욕? 그런 사람도 없지 않지요. 하지만 그냥 활동하는 게 기분 좋아서 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 게 있어요. 문제를 해결했을 때, 일을 하나 마무리했을 때 느끼는 뿌듯함…. 그걸로 우리가 주민자치를 시작해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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