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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국내외 4곳에 같은 모양 박경리 동상 선 사연은

하동·통영·강원도 원주 이어 러시아에도 건립
권대훈 서울대 교수 제작…받침대 글귀는 달라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2018년 06월 25일 월요일

통영 박경리기념관에 가보셨습니까? 거기서 박경리 선생 동상 보셨어요? 그러면 하동 박경리문학관은 가보셨나요? 앞마당에서 박경리 선생 동상을 보셨는지요?

아담하고 소박한 모양의 두 동상은 완전히 같습니다. 2015년에 같은 거푸집에서 찍어 낸 것이니까요. 최근에는 강원도 원주 토지문화관 앞에도 같은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지난 20일에는 러시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동양학부 건물 안 현대조각정원에서 같은 모양의 박경리 선생 동상 제막식을 했습니다. 이렇게 똑같은 동상 4개가 하동, 통영, 원주, 러시아에 서게 된 사연을 한 번 살펴보죠.

하동 박경리문학관 앞에 있는 박경리 선생 동상./이서후 기자

◇러시아로부터 시작된 동상 건립

제막식을 얼마 전에 했지만, 가장 먼저 만들어진 동상은 러시아에 있는 것입니다. 2014년에 만든 거지요.

이야기의 시작은 러시아의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입니다. 한러대화(Korea-Russia Dialogue·이하 KRD)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한국과 러시아 우호 증진을 위한 민관협의체입니다. 2012년 러시아 작가동맹에서 한러대화 사무국에 러시아 국민시인 푸시킨의 동상을 서울에 건립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KRD는 한국과 러시아의 지속적인 관계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이라 보고 2013년 11월 1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단지 안에 푸시킨 동상을 세웁니다. 이날은 양국 정상회담이 있던 날이라 제막식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석했습니다.

통영 박경리기념관 앞에 있는 박경리 선생 동상. /경남도민일보 DB

이날 열린 KRD포럼에서 한국이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 동상을 세웠으니 러시아에도 한국 작가 동상을 세우자고 결정합니다. 이때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박경리 선생을 선정했고요. 동상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세우기로 합니다. 이 도시는 러시아 혁명 이전 제정 러시아의 수도였습니다. 혁명 이후 소련 시절에는 레닌그라드라고 불렸고요. 무엇보다 문학가 푸시킨과 도스토옙스키, 음악가 차이콥스키와 무소륵스키의 흔적이 남아 있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문화 예술 도시입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는 1724년에 세워진 러시아 최고(最古) 명문대학이고, 동상이 있는 동양학부는 이 대학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토지문화재단은 2014년 3월 서울대 미대 권대훈 교수에게 러시아에 세울 동상 제작을 맡깁니다. 동상은 이해 말 완성되죠. 그런데 이런저런 국제 사정으로 러시아 박경리 동상 제막이 늦어집니다. 이런 와중에 통영시가 2015년 10월 통영예술제 행사로 박경리기념관에 동상을 건립합니다. 같은 시기 하동군도 박경리문학관에 동상을 건립하죠. 이때 토지문화재단과 토지문화관이 있던 강원도 원주 지역 문인, 시민도 동상 설치를 요청합니다. 하지만, 이미 박경리문학공원에 심정수 조각가가 만든 박경리 선생 동상이 있었기에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그러다 올해 5월 박경리 선생 추모 10주기를 맞아 토지문화재단이 원주 토지문화관에 동상을 세웁니다. 그리고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정상회담에 맞춰 미뤘던 동상 제막식을 20일에 치릅니다. 동상은 지난해 9월 러시아로 운송되어 지금 자리에 미리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박경리 선생 타계 10주기를 맞아 지난 5월 12일 강원도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열린 동상 제막식 모습. /연합뉴스

◇모양 똑같지만 다른 점도 있어

하동, 통영, 원주, 러시아에 있는 동상은 1m 35㎝ 높이로 책을 들고 앞을 보고 서 있는 박경리 선생의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하동, 통영, 원주에는 50㎝ 높이 청동 받침대 위에 동상이 서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책 모양입니다. 책은 사각형으로 대지(땅)를 의미합니다.

동상을 만든 권대훈 교수는 영국 라흐마니노프스 갤러리 전속작가입니다. 2011년 영국왕립미술원 현대미술 전시 조각 부문에서 '더 잭 골드힐 조각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은 분이기도 하죠.

권 교수가 만든 선생님 모습은 모두 똑같지만, 받침대에 새긴 글귀는 지역마다 다릅니다. 통영과 하동에 있는 것은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란 문구가 있습니다. 선생의 시 <옛날의 그 집> 마지막 시구이자, 유고시집 제목이기도 합니다. 박경리 선생이 실제 창작을 했던 원주에는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란 문구가 한글과 영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는 1994년 출간한 에세이집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 - 박경리의 원주통신>에서 가져왔습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0일 러시아 상트페테르국립대 현대조각정원에서 열린 박경리 작가 동상 제막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동상 제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에 있는 동상은 받침대가 직육면체로 된 마천석입니다. 화강암의 일종으로 검은빛이 나죠. 높이도 다른 것보다 조금 높습니다. 여기에는 '슬픔도 기쁨도 왜 이리 찬란한가'란 글귀가 한글과 러시아어로 새겨졌습니다. 시 <삶>의 마지막 시구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작가 소개가 러시아어로 적혀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한반도 남단의 통영에서 태어나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수많은 소설과 시와 수필을 남겼다.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장대한 서사 속에 담아낸 대하소설 <토지>가 대표작이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인간 존엄성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노래했으며 유려하면서도 대담한 문체로 국가와 개인의 운명을 문학적 기념비로 승화시켰다."

박경리 선생의 딸인 토지문화재단 김영주 이사장은 지난 5월 통영에서 열린 10주기 추도식에서 "러시아 제막식만 끝나면 박경리 선생의 동상이 4개 지역에 모두 안착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무언가 해야 할 일을 마친 것 같다는 뉘앙스였습니다.

선생의 고향인 통영, <토지>의 배경이 된 하동, <토지>를 완성하는 등 창작열을 불태운 원주, 그리고 한국 작가를 대표해서 동상이 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어느 곳에서 박경리 동상을 만나든 상관없습니다. 동상을 통해 통영과 하동, 원주와 러시아를 떠올리며 선생의 그 힘들고도 위대했던 삶을 생각해보는 것도 꽤 의미 있는 일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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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 이서후 기자
  • 문화체육부에서 문학/영화/연극/출판 등을 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