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하는 자연 신비 순자의 <예론>닮아
지난 여섯 달 동안 고통 '인간욕심' 때문

엊그제 하지를 지나면서 문득 중국 고대 철학자 '순자(筍子)' 의 〈예론·禮論〉 이 생각났다. 하지라는 절기의 특징이 일 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밤 길이는 가장 짧다는 것 때문이다. 작년 겨울 동지 때 밤 길이가 일 년 중 가장 길고 낮 길이는 가장 짧았으나 그로부터 반년쯤 지나 하지 때 밤낮 길이가 동지 때의 정반대가 된 것이 불쑥 떠오른 것이다. 하지를 지나면서 낮은 조금씩 짧아지고 밤은 점점 길어지게 될 것이다.

잠시도 쉬지 않고 길어지고 짧아지는 변화 속에서 뭇 생명체가 태어나고, 성장하고, 쇠퇴하는 문화가 인간을 자연의 식구로서 살아가게 한다. 균형과 조화의 신비는 바로 밤과 낮 길이의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생기고 소멸한다. 순자는 예론에서 "너무 긴 것을 자르고, 너무 짧은 것을 늘이며, 남는 것을 덜어내고 모자란 것을 채우며, 사랑과 존경의 형식을 확대하고, 올바른 행동의 아름다움을 한 단계씩 완성시킨다"고 했다. 예(禮)의 개념을 참으로 절묘하게 설명했다.

'예'는 관념이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는 자연이며, 인간의 꿈을 향한 수행이며, 인간이 좋은 목표를 향하여 정진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너무 긴 것은 잘라내어 균형을 이루고, 너무 짧은 것은 안이나 바깥에서 더하여 적절한 길이로 만들고, 남는 것은 적당하게 덜어내고, 모자라는 것은 보태서 균형을 맞추어가는 행동을 '예의 실체'라고 한 것이다.

동지에서 하지로 옮겨오는 동안 길고, 짧고, 넘치고, 모자라는 밤과 낮의 분량과 밝음과 어둠의 농도를 조절하여 계절과 온도와 바람과 비로 생명을 잉태하고, 낳고, 기르고, 거두는 순환을 계속하는 자연의 신비와 순자의 '예론'은 어딘가 많이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여러 날을 떠나지 않았다. 이 같은 움직임과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자연 현상은 달(月)이다. 초승달에서 반달, 보름달, 그믐달 그리고 달이 사라져버린 사흘 동안의 어둠까지 모두가 우주의 변화하는 표정이자 숨결임을 알게 한다.

이런 아름다운 자연의 변화 속에서 2018년의 지난 여섯 달은 많이 고통스러웠다. 인간의 욕심 때문이었다. 숨 쉴 공기를 더럽혀 놓고, 마실 물도 병들여 놓고, 농사지을 흙도 오염시켜 놓고, 그 위에서 잘산다는 것이 과연 무슨 뜻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점점 낯설어지고, 두려워진다. 인권도 소중하고, 민주주의도 중요하고, 평화도 좋은 것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맑은 공기를 숨 쉬고, 깨끗한 물을 마시며, 밝은 햇살 쬐며, 사람과 동물이 먹고 살아야 할 식물이 자라는 흙의 건강도 인권, 민주주의, 평화만큼 아니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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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사람이 먼저가 아니고 사람이 문제가 되어버린 지금은 대부분이 뒤집혀진 상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동지에서 하지까지 보여준 저 다양하고, 깊고, 넓은 변화 속에서 항상 낮과 밤, 밝음과 어둠의 균형점을 이뤄내어 생명을 아름다운 동반자로 살게해 준 자연의 조화를 인간은 얼마만큼 흉내낼 수 있을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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