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콘크리트 벗고 푸른빛 되찾은 하천
장군동 아케이드 45년만에 철거되면서 생태하천으로
오랜 세월 빛 못 본 장군천 '이제 편하게 흐르는구나'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천(將軍川). 언젠가부터 이 주변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세월이 묻어나는 장군시장과 그 주변 주택가 풍경도 좋지만, 어느 순간 의식하기 시작한 물소리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산시청이 있던 시절, 장군천 주변은 마산 행정의 중심이었습니다. 법원, 세무서, 소방서, 마산의료원 등 대부분 행정기관이 다 있었으니까요. 그 시절에도 장군천을 수없이 지났지만 물소리를 의식한 적은 없습니다. 장군천이라 해봐야 장군동 아케이드에서 마산시청 앞 월포교까지 겨우 140m 남짓한 구간뿐이었으니까요. 나머지는 대부분 콘크리트 아래에 있었죠.

창원시 통합으로 마산시청이 구청이 되면서 주변 상권이 움츠러들기 시작했습니다. 무언가 쇠퇴하는 구도심 같은 느낌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오랜만에 가보니 하천 주변에 카페가 들어섰더군요. 장군천도 콘크리트가 걷히고 하천다운 모습으로 흐르고 있었고요. 찬찬히 걷다 보니 나름 매력있는 곳으로 변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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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장장군 무덤을 보셨소

장군천은 무학산과 대곡산 사이에서 시작해 마산 앞바다로 들어갑니다. 상류부터 거의 직선이라 하천 길이도 그리 길지 않습니다. 도심 구간은 성지여고 앞에서 시작해 잠시 도로 아래로 숨었다가 완월서광아파트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완곡한 곡선이었던 물길은 장군교를 지나며 곧아지는데 이때부터 물소리가 제법 콸콸하죠. 동네로 치면 완월동에서 시작해 장군동을 지나

중앙동으로 흐릅니다.

장군동, 장군천. 동네 이름이 무슨 장군과 관계 있다는 걸 얼핏 아시겠지요. 이 지역 전설로 내려오는 고려 시대 장 장군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광아파트에서 합포구청에 이르는 도로 이름이 장장군로입니다. 이 도로를 따라 마산합포구청 방향으로 가다 보면 왼쪽으로 중국요리점이 있고요. 그 반대편으로 난간이 있는 무덤이 보입니다. 그곳이 '장장군묘'입니다.

▲ 장군천 상류, 도시의 핏줄 같은하수관과 하천을 따라 벼랑을이룬 오랜 주택가 담벼락. / 이서후 기자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고려 공민왕 23년(1374년) 4월 350여 척 배를 끌고 왜구가 합포만을 침략하였다. 그러자 장 장군으로 불리던 사람이 관군과 합세하여 싸워 왜구를 격퇴하고 자신은 전사하였다. 비문에는 '장 장군, 왜구와 싸우다가 여기서 전사하다'라고만 되어 있을 뿐이어서 그의 내력을 알 길이 없다."

장장군묘에는 비석이 1기, 무덤이 2기 있습니다. 비문을 보니 1970년 4월 20일에 세운 거네요. 무덤이 2기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장군천 위로 흐른 역사들

장군천 주변은 최근 들어 변화가 많았습니다. 2014년 상반기 장군동 아케이드 철거는 그중 가장 큰 것이었지요. 장군동 아케이드는 1969년 장군천 위에 지어진 2층 상가건물입니다. 전성기 최대 90개 점포가 영업을 했었다고 합니다. 1974년 생긴 오동동 자유아케이드와 함께 지역 핵심 상권 노릇을 했었습니다.

○○상회, ○○양품 같은 이름을 지닌 가게들이 40여 년 영업을 했던 곳입니다. 하지만, 자유아케이드도 장군동 아케이드도 세월을 피해 갈 수는 없었습니다. 안전진단에서 붕괴 위험 등급을 받고 결국은 다 철거가 되었지요. 그리고 '생태하천 복원 사업'이란 이름으로 하천 정비 공사를 했죠.

▲ 마산 최초 보육원 인애원 옛 건물. 지금은 건설회사 사무실로 쓰인다. / 이서후 기자

지금도 장군천 주변에는 오랜 점포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케이드 상인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근처 점포에 둘러앉은 어머니들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옵니다.

"요 다 있다 아이가!" 자신들을 가리키며 하는 말입니다. 알고 보니 다들 아케이드 상인 출신이더군요. 나이도 많고, 새로 가게를 얻을 여력도 없고, 원래 살던 곳이 장군동이니 그냥 그대로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근처 점포 안에 조그만 공간을 얻어 노점처럼 채소 같은 것을 파시는 모양입니다.

마산 최초 보육원인 '인애원' 건물도 아직 장군천 주변에 살아 있습니다. 남양스튜디오라는 사진관 바로 뒤에 있는 2층 건물입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마산에 유독 보육원이 많았었지요. 그중 장군동에 있던 인애원은 1945년경에 설립, 1991년까지 1700여 명을 키워 사회로 내보냈습니다. 인애원은 1991년 팔룡동으로 옮겨가고 건물 자체는 한때 음식점이었다가 지금은 한 건설회사가 인수해 사무실로 쓰고 있습니다.

◇본래가 훌륭한 하천이었구나

장군천을 따라 상류까지 거슬러 갑니다. 하천 주변은 옛 도심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집을 지으면 거기에 잇대서 또 집을 지어 동네가 형성되었겠지요. 오래되었지만, 나름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페인트칠이 훤한 데다 날이 좋으니 마치 이국의 어느 골목을 거니는 기분입니다. 서광아파트를 지나 더욱 상류로 올라가 봅니다. 원래부터 드러나 있던 구간이죠. 하천을 따라 벼랑을 이룬 주택 담벼락이 이채롭습니다. 담벼락을 따라 가지런히 얽힌 하수관은 마치 도시의 핏줄 같아 보입니다.

▲ 장군천 주변 공원 쉼터 세 곳 중가장 상류에 있는 이곳은 할배 전용이다. /이서후 기자

다시 하천 반대편을 따라 합포구청 방향으로 내려옵니다. 하류까지는 공원이 몇 곳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늘과 앉을 자리가 있는 쉼터가 모두 세 곳인데요. 제일 상류에 있는 쉼터는 할배 전용이었고요. 중간에 있는 건 할매 전용, 젤 아래 시장 근처에 있는 건 공용이었습니다.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그리 쓰이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마산합포구청 직전 마지막 직선구간입니다. 계단을 따라 하천으로 내려갑니다. 시원한 물소리와 경쾌한 물살이 갑자기 다른 세상에 온 듯합니다. 한참을 서서 물 흐르는 것을 보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군천은 원래 좋은 하천이었구나. 오랜 세월 콘크리트 아래서 고생했겠구나. 이제야 좀 편하게 흐르는 거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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